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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지혜를 찾아서/인문학 산책

폴리 매스(와카스 아메드)

by 굼벵이(조용욱) 2020. 1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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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화에 대한 비판서다.

인간 진화의 본질은 폴리매스인데 중세 이후 전문화가 진행되면서 인간이 제대로 진화하지 못했다는 가설이다.

원래 인간은 팔방미인이었는데 특정분야로만 전문화시키는 사회구조 속에서 오히려 퇴화되었다는 주장이다.

농촌에서 살다보면 맥가이버 폴리매스가 되어야 한다.

나도 초딩시절엔 설계도 제작부터 생물 표본은 물론 연날리기 대회, 붓글씨 대회, 웅변대회, 글짓기 대회, 자유교양 대회, 그림그리기 대회, 학교 대표 핸드볼 선수 등등 거의 전 분야에서 최고상을 받았던 폴리매스였다.

하지만 지금은 인사전문가 25년에 전문 경영인 10년을 마치고 텃밭이나 가꾸는 독거노인이다.

그래도 국내 최대 공기업에서 인사전문가라는 족적을 남긴게 나를 대변해주는 대명사다.

나는 그의 주장에 동조하지만 일면 그와 다른 부분도 있다.

한 분야에 전문화를 도모해보지 못한 사람은 절대 폴리매스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물은 한번 뚫어본 사람이 다른 우물도 뚫을 수 있지 여기 저기 땅만 파다 만 사람은 죽을 때까지 한우물도 팔 수 없다는 이론이다. 

그의 폴리매스 주장에 대한 판단은 오로지 독자의 몫이다.

그의 주장을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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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인체 비례도는 비트 루비우스가 쓴 건축십서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다빈치는 여기서 인간 세상 우주가 근본적으로 하나라는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표현했다.

​대체로 폴리매쓰는 우리같은 범인보다는 다양성 속에서 통일성을 통찰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어떤 관계나 유사점 공통점 연관성 적절성 기저의 인과관계 구조적 통일성을 읽어 내는 능력이 보통 사람보다 뛰어나다.

​내 관심사는 내게 맞는 최적의 인생을 사는 데 있다.

다시 말해 정신을 개발하고 가능한한 풍요로운 인생을 경험하는 것이다

​경험은 우리의 정체성을 규정 한다.

​폴리 매쓰란 말 그대로 서로 연관 없어 보이는 분야에서 적어도 세가지 일을 출중하게 하는 사람을 말한다.

​탁월한 지도자는 단순히 용단을 내리는 사람이 아니라 포괄적으로 정보를 파악하고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다.

맥락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전체를 꿰뚫어 보는 통찰력이 있어야 한다.

​매니저는 관리할 수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고 리더는 알려지지 않은 문제들을 해결한다.

​사회주의는 본래 각자 고유한 방식으로 꽃을 피울 수 있는 평등한 체제를 지향 했다.

​아이작 뉴턴은 실제로는 과학에 대한 글보다 신비주의 신학에 대한 글을 더 많이 썼다.

마르크스는 노동 분업을 가리켜 개개인을 하나의 소명에 옭아매는 짓이라고 비판했다.

​앉아서 일하는것은 또다른 흡연 습관이다.

앉아서 일하는 시간이 길수록 건강에 더 해롭다.

​항상 대기하고 있는 디지털 기술은 우리에게 더 많은 시간을 주는 게 아니라 시장의 이익을 위해 우리의 시간과 에너지를 더 많이 빼앗는다.

​데즈먼드 모리스는 '털 없는 원숭이'에서 특수한 생존 장치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한 아무 문제가 없지만 환경에 큰 변화가 생기면 전문가는 꼼짝도 못하게 된다.

예를 들어 코알라는 거의 전적으로 유칼립투스 잎에 의존 하며 살고 특정 기후대 안에서만 그것도 오스트레일리아 동부 산림 지대에서만 서식한다.

하루에 거의 20시간을 잠만 잔다.

코알라는 전문가 유형이다.

이와 반대로 너구리는 제너럴리스트 유형이다.

너구리는 북아메리카와 중앙 아메리카의 대부분을 포괄하는 지역을 자연서식 범위로 삼았고 잡식성 동물이어서 딸기도 먹고 곤충도 먹고 새의 알도 먹고 몸집이 작은 동물도 먹는다.

너구리는 문제없이 번식하는 반면 콜라는 멸종 위기에 놓여 있다.

요컨대 환경이 바뀌면 다양한 능력과 융통성이 좋은 종은 적응 할 수 있지만 특정한 세부 조건에만 주력 하던 종은 다른 선택지가 거의 혹은 전무 하기에 멸종위기에 직면한다.

모리스가 주장한 대로 털없는 원숭이 즉 인간은 실제로 가장 전문화 되지 않고 적응력이 뛰어나며 기회 주의적인 동물이다.

생존을 위해서 전문화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오해가 오늘날 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이는 투쟁과 경쟁이 인간의 본성이라는 의심스러운 전제 위에 세워진 가설이다.

근대 서구 사회에서 이와 같은 패러다임이 형성 되기 전에는 여러세계관에서 일례로 우리가 있기에 내가 있다는 아프리카에 우분투 철학을 비롯해 인간은 서로 협력하고 화합하는 존재라고 강조했다.

​경제학자 에드 그레이저는 도시 노동자들의 업무 전문화와 다각화를 비교 연구한 결과 경제 성장을 이끄는 요소는 업무 전문화보다는 다각화라고 결론 지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각 산업 간에 보다 많은 정보와 기술이 유통 되어 긍정적 파급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자연은 오직 곡선을 그릴 뿐이다.

인간은 직선을 그린다.

학문을 여러 분야로 쪼개고 쪼개 파편화 된 지식과 이분법적 사고는 복잡한 세상을 지나치게 단순화 한다.

이러한 사고 방식은 현실을 온전히 이해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한다.

​기계로 대체 가능한 무능하고 값비싼 존재가 되는 대신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고유한 가치를 개발하는 데 집중 할 때 인간은 삶에서 의미를 찾을 것이다.

(그 고유한 가치는 나 스스로 찾아야 한다)

 

간단히 말해 폴리 매쓰를 길잡이 삼아 정신을 재구성하고 목적의식을 찾지 않는 호모사피엔스는 향후 200년 내 사라질 위험을 각오해야 한다.

전문화는 당연히 마땅한것이 아니다.

전문화로 이득을 보는 극소수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든 시스템일 뿐이며 나머지 사람들은 그것이 미래를 발전시킬 길이라고 믿었다.

(전문화는 마땅한 것은 아니지만 융합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꼭 필요하다고 본다,

전문화를 통해 깊이를 더하고 인근 영역으로 범위를 확장하는 것이 수반되야 할 뿐이다.

어느 하나의 전문에 이르지 못하면 다른 어느 것도 심도있는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고 수박 겉핥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 전문화 시스템은 인간의 정신을 좀먹고 인간의 경험을 제약 한다.

이 불행한 현실에서 벗어나려면 사고방식을 재구성 해야 한다.

원래의 자아 즉 잠들어 있는 폴리 매쓰 기질을 찾아 자신을 개발하고 성장시킬 대안을 찾아야 한다.

(난 좀 생각이 다르다,

특정분야의 전문화에 이르지 못한 사람은 그 어떤 분야도 깊게 파고들지 못한다.

여기저기 삽질만 하지 정작 필요로 하는 우물은 발견하지 못해 결국 인생을 낭비하고 만다)

 

​다방면의 소질과 흥미를 지닌 사람이라면 폴리 매쓰가 되는것이 자신에게 진실한 태도이다.

​개성을 찾는 것은 곧 자유의지를 인정하는 것이고 인간의 위엄을 긍정하고 회복하고 실현하는 문제이다.

​호기심이야말로 폴리 매스의 특징이라고 단언 한다.

​진정으로 배운 자는 자신이 아는것보다 모르는 게 훨씬 많다는 사실을 아는 자이다.

​다른 동물들은 인간이 보지 못하는 실제를 볼 수 있다.

일례로 뱀은 적외선을 보고 꿀벌은 자외선을 본다.

​몽 떼뉴는 이런말을 했다.

소크라테스처럼 말하고 소크라테스처럼 사는것보다 아리스토텔레스처럼 말하고 caesar처럼 사는쪽이 훨씬 쉽다.

​다시말해 영원히 구도자로 남아 끈질기게 진리를 추구하는 삶에 비하면 이미 진리를 소유한 사람으로서 기쁨을 누리며 도도하게 사는쪽이 훨씬 쉽다.

​몽테뉴는 내가 공부하는 이유는 오로지 나 자신을 알기 위함이며 잘 사는 법과 잘 죽는 법을 배우기 위함이다라고 말했다.

​폴리 매쓰가 되려면 사람은 호기심과 지능의 다재다능성을 더 해야 한다.

​다른 일로 집중력을 전환 할때 가장 회복력이 좋다.

너무 분석적인 얘기만 하고 너무 영적인 얘기만 하면 그 부분을 담당하는 뇌 신경이 피로해 진다.

테드 컨퍼런스가 성공을 거둔 이유는 다양한 주제를 혼합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고정된 존재가 아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우리는 미완성 작품이다.

​전통적인 힌두교 철학에 따르면 자아를 실현하는 방법은 4가지다.

지식(즈나나 요가)과 노동(카르마 요가) 사랑(박티요가) 심신 훈련(라자요가)이 있다

​지식이 얕아도 넓게 알면 폴리 매쓰가 되기에 부족하지 않다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깊은 지식을 하나씩 확장해나가야 한다)

 

경험을 다각화 할 때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세상이 어떻게 서로 연결되어 있는지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이 이론이 아니라 활동이라고 주장 했으며 학계에서 물러나 현실세계로 돌아가야 한다는 강박감을 자주 느꼈다.

​세상의 모든 창의적 산물은 잡종이다.

​잡종이란 교차수분 혹은 이종교배를 말한다.

창의성이란 서로 연결하는 능력이다.

​한 분야에서 탁월한 성과를 이룬 이가 다른 분야에서 평균 이상의 능력을 드러내지 않은 경우는 거의 없다.
(이는 내 이론을 필자 스스로 입증하는 것이다)

 

​에드윈 허블은 지식을 세분화해서 인식하는것은 인위적인 절차에 불과하고 실상은 하나로 통합된 전체라고 판단했다.

​체계적 사상가인 폴리 매쓰들의  핵심적 깨달음 즉 모든 현상을 우주적이고 본질적인 상호 연관성으로 보는 시각은 힌두교와 불교 도교에 이르는 동양의 영적 전통에서도 중심 사상이었다.

​생존 한다는 것은 이해한다는 것이고 제대로 이해하려면 맥락을 고려해 해당 주제나 상황을 종합적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사실을 폴리 매스 들은 잘 알고 있다.

​야생동물은 먹을 때 먹이에 집중하면서 동시에 주변을 경계해야 한다.

이때 뇌의 좌반구는 먹이에 집중하는 일을 담당하고 우반구는 보다 폭 넓은 범위로 주의를 기울이며 포식자나 짝이 접근하는지 살핀다.

그러니 생존을 위해서는 협소한 영역에 집중하는것과 폭넓은 맥락을 살피는 사고가 모두 필요하다.

​모든 것을 똑같이 사랑하라 우주는 하나이다(혜사)

​모든것은 다른 모든것과 서로 연결되어 있다.

​과거에는 정보를 주지 않는 형태로 사람들을 통제했다면 오늘날에는 단절된 정보를 무작위로 쏟아 내는 방식으로 통제 한다.

​교육은 여러 현상 사이에 숨은 연관성을 알아보는 능력을 길러 주는 것이다.

​최근들어 신경과학자들은 뇌가 평생에 걸쳐 가소성을 어느정도 유지하고 나이가 많아도 자신의 부족한 점을 극복하는 방법을 새로 배울 수 있음을 발견했다.

​몇년마다 자신을 재규정 하는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될 것이다.

아직 85세가 되지 않은 사람이 자신을 스스로 제약하는것은 제가 보기에 참으로 어리석은 짓입니다.

​폴리 매쓰 철학자 레이먼드 탤리스는 이렇게 말했다.

철학이 존재하는 유일한 이유는 그것이 최고의 보편성을 띄기 때문이다.

따라서 초기의 폴리 매스들 가운데 다수가 철학자였다는 사실은 그리 놀랍지 않다.

과거에는 철학을 함으로써 폴리 매스 자질을 개발했다고 치면 요즘에는 폴리 매스 이기에 철학을 하는 경우가 생겨나고 있다.

​우리의 미래에 영향을 미칠 기계를 프로그래밍 할 사람들보다 더 중요한 사람은 인간의 정신을 프로그래밍 할 사람들이다.

그리고 나는 인간이 스스로 자신의 의식을 개조 해야 한다고 제안하는 바이다.

​수면은 맨처음 90분을 제외하고 나머지 주기는 반복에 지나지 않아요.

나머지 수면시간이 무슨 기능을 하는지에 관해 우리 의사들은 아는바가 없습니다.

그는 수면이 지닌 유일한 기능은 수면 욕구를 충족하는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