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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지혜를 찾아서/인문학 산책

사랑과 인식의 출발(창전백삼)

by 굼벵이(조용욱) 2020. 1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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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70년대에 내게 많은 영향을 주었던 빛바랜 책을 꺼내들었다​.

가로줄에 익숙해진 터라 세로줄을 읽는데 조금 불편했다.

문체도 지나치게 현학적이어서 걸림이 많았다.

무릇 글은 읽기 쉬워야 한다.

그 시대엔 그런 자기만족적 표현들이 유행이었던가 보다.

남이 모르는 독일어나 영어도 함께 섞어가면서 현학적으로 표현하면 자기 스스로에겐 가장 정확한 의미전달이 가능할지 모르나 독자는 짜증나기 마련이다.

어쨌거나 그 어린 나이에 이렇게 훌륭한 생각들을 쏟아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천재였기 때문일 것이다.

투병생활이든 유배생활이든 비슷하게생각을 극단까지 몰아 천재성을 만드는 듯하다.

죽음을 넘나들다보면 치열하게 사고하게 되고 이를 각혈하듯 토해내고 싶은 욕망이 생기는가 보다.

실존주의에 빠진 그가 현상학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세상을 표현한 글들을 음미해보자.

 

철학가는 쓸쓸한 투구 벌레다

​자연에 반항할 때 죽음은 공포이지만 항복하고 말면 위안이 된다네

​쇼펜하우어는 '세계는 나의 관념에 지나지 않는다 주관을 떠나서 객관은 없다' 자연은 주관의 제약 밑에 있다라고 한 명제가 얼마나 강하게 나의 마음을 누려 왔던지 

그러나 또다시 '보이는 세계의 본체는 의욕이다 세계는 의지의 거울이요 또 그것의 투쟁 장소이다' 라고 들었을때 부르르 몸서리 쳤던 것이라네

​인성이 흐려지는 곳 거기에 우울이 있고 권태가 있네

​우주 만물은 모두 그 그림자를 우리들의 관능속에 짜 넣고 우리들 생명 깊숙이 도사리고 있는 충동은 이에 대해 능동적으로 활동을 인식하고 정감하며 의욕한다

이리하여 생명은 자기 스스로의 내면에 함축적으로 숨어 있는 내용을 점차로 분화 발전함으로써 나날이 우리들의 내부 경험은 복잡해 진다

이 복잡한 내부 생명은 자기 스스로의 존재를 완전하게 하고 또한 존재 의식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 표현의 길을 외부에서 구하고 내부에선 꿈틀 거린다

그러므로 예술과 철학과는 이 내부 생명의 표현적 노력의 두 갈래의 갈림길이다

다만 전자가 구체적 부분적으로 묘사해 내는 내부 경험을 후자는 개념의 양식을 가지고 전체로서 통일적으로 표현하는것이다

이리하여 얻어진 결과는 내부 생명의 투사이고 자기의 그림자이며 달성된 목적은 생명의 자기 인식이다

​(쉬운 말을 두고 참 어렵게도 표현한다)

사실상 시간은 의식으로써 가득 채워져 있다

​종교는 자기에 대한 요구이다

자기를 참으로 살리고자 하는 내부 생명의 노력이다

불완전한 자가 완전함을 구하는 사모이다

​그렇다면 그 사랑의 원류는 무엇일까

그것은 인식이다

인식을 통하여 승화된 사랑이야말로 생명의 참된 힘이요 열이요 빛이다

​인식의 궁극적 목적은 곧 사랑의 마지막 목적이다

우리는 사랑하기 위해서는 알아야만 하고 알기 위해서는 사랑해야만 한다

​사랑은 실재의 본체를 포착하는 마음이다

사랑은 앎의 극점이다

​참된 종교는 섹스에 숨어 있는 것이다

​연애는 여성의 영육에 참여 하려는 마음이다

그 넋의 사당에 순례하려는 마음이다

아아 온몸이 진동할 듯한 육정의 즐거움이여

눈물겨운 넋의 기꺼움이여

참으로 섹스에는 놀랄만한 신비가 숨어있다

자기의 영혼과 육신을 이끌고 그 신비를 움켜 쥐려고 함이 연애이다

가장 내면적이며 직관적으로 여성이라는 것을 포착하는 힘이 연애이다

​이웃의 사랑으로써 누군가를 사랑해 보라

거기에는 반드시 십자가가 앞선다

자기가 탐내는 무엇인가를 희생해야만 한다

​아무런 희생도 치르지 않았다면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해도 사실은 사랑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괴로워하며 이루어진 행위만 선이라고한 칸트의 말처럼 사랑의 증거는 오로지 희생이다

​그리스도도 본래 접촉한 사람들 밖에는 사랑하지 못하였다

접촉하지 않은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았음이 아니라 오직 자기 주위에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사랑했던 것이다

우리는 접촉한 개개인을 사랑하지 않으면 참으로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것이 된다

​오직 한 사람의 이웃이라도 철저히 사랑해 보라

​생명체와 생명체의 관계는 서로 축복 할 때에만 선이 된다

​오직 사랑이라고 하는 마음의 움직임만이 생명과 생명을 본질적으로 연결 짓는다

사랑했을 때만 본질과 본질의 관계가 생겨난다

​내가 사랑받고 있음은 거짓이요 우연이다

어머니의 인격은 뿌리를 갖지 않으며 자연력의 의지가 나타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세상 모든것은 사라진다

​우리는 선행으로서 구원 받지 못한다

구원은 다른 힘에 의한다

선행의 공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랑으로 말미암아 용서된다

종교의 본질은 그 용서함에 있다

​어떤 사람과도 사랑하여 사귀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