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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지혜를 찾아서/인문학 산책

구운몽(최인훈)

by 굼벵이(조용욱) 2021. 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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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진 이념의 틈바구니에서 생존을 위해 발악하는 지식인의 아픔을 읽는 듯하다.

광장과 비슷한 류의 방황이지만 광장은 남과 북의 갈등상황인 반면

구운몽은 혁명으로 들끓는 남한 내 불안한 정치현실을 풍자한 듯하다.

작가 자신의 명확한 의도가 드러나지 않게 일부러 난해하게 쓰고 꿈의 형식을 빌었다.

불의의 사태가 생겨도 빠져나갈 수 있기 위해서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인데 세상에 이를 잘못 알렸다간 임금님하테 능지처참 당할 것 같아

산속에서 혼자 알아듣지 못하는 동물들에게 부르짖는 '당나귀 귀'다.

그래서 처음부터 읽는 내내 답답하다.

알송달송하게 얼버무리는 혁명가 이야기들은 체제비판범으로 몰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에둘러 표현한 것들로 여겨지며 그렇게라도 발버둥쳐보려는 작가의 고통마저 느끼게 한다. 

하지만 결론은 사랑이다.

태고적 원시인이나 현대인이나 그 결론은 똑같다.

공부의 끝이 사랑이듯.

**********************

 

​이탈리아인 감옥제도 연구가인 단테와 그의 저서 신곡을 떠올리셨을 것입니다

감옥 제도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로서는 그의 신곡이 효시라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처벌 법규는 십계명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과 그 율법에 반응하는 것 이것이 단테 시대의 죄였던 것입니다

 

이 시대 다음에 소위 형법 시대라는것이 있습니다

국가가 제정 공포한 형법에 저촉 되는 행위는 다 죄다 하는 사상입니다

 

감옥이란 이 죄인에 대한 응징이며 사회가 가하는 처벌이라고는 거죠

​오늘날에 있어서 죄란 심리적인 조화를 가지지 못한 것일 터입니다

옛날에 탈난 사람은 부락민들에게 뭇매를 맞아 죽지 않았습니까

병이란 마귀와 결혼한 상태이며 따라서 죄이지요

​이제는 감옥의 관리권을 신부나 권력자에게서 우리 정신의 들의 손으로 빼앗아오자는 말입니다

​사실 감옥이 정신병원이라는 명목으로 세워 졌습니다만

권력자란 어리석은 것이어서

정신병원을 묵인 하는것이 자기들의 권력에 위협이 된다고까지는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 모양입니다만,

하긴 중 세기 끝판에 귀족들이 도시 장사치들에게 차용 증서를 써주면서 권력을 넘겨 주고 있다고는 생각지 않았으니, 확실히 역사는 되풀이 하는 모양이죠

물론 제가 정신의라고 했을때 저는 넓은 뜻에서 이말을 쓰는 것입니다

작가 시인 철학자 과학자를 두루 가리킨 것입니다.

플라톤은 공화국에서 마지막 정치 형태는 철학자에 의한 다스림이라고 까 놓았습니다

철학자들을 정신의로 풀이해도 어긋나지 않을 것입니다

나를 배반 하는 혀 내 

말을 듣지 않는 혀 이 

비뚤어진 노래를 그만 

부를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나님 우리 입술에서

​검은 낱말들을 거두어 주십시오 

우리의 혀를 바로잡아 주십시오 

될 수 있으면 우리만 말고 

저 나쁜 자식들도 한번더 타일러 주십시오

서로 제가 더 고생 했다는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넘실거리는 물 위에 떠 오르는 데 어찌 어지러운지 속이 울렁거리고 정신이 떠날 지경이었어

내가 제일 고생 했지 

토끼의 말 

 

뒷다리는 강바닥을 밟고 앞다리만 쳐들었으니 그 불안스럽기란 이루 말할 수 없었지 내가 제일이야.

말이 하는 말 

 

코끼리는 말이 없었다 

 

웬걸 강물 위로만 헤엄쳐 왔으니 내가 제일 깨끗하게 왔지 뭐야 내가 제일 순수해 

토끼의 말 

 

그런 소리 말어 나는 물 위의 경치만 아니고 강 밑바닥까지 내 이 두발로 확실히 짚어봤단 말이야

내가 더 풍부한 경험을 했어 내가 제일이야.

말이 하는 말 

 

코끼리는 눈만 껌뻑거릴 뿐

이렇게 끝 없는 싸움을 벌이고 있는데 저편 숲속에서 관세음보살이 걸어나오신다

소풍 나온 걸음인 모양이다

왼쪽 뺨에 까만 점이 있다

보살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설레설레 했다

안 될 말

여러분들이 고생해서 고해를 건너온 보람도 없이 그게 무슨 겸손치 못한 말이람 

 

토끼는 몸집이 작아서 헤엄쳐 건너고 말은 선 키가 높아 서서 건너고 코끼리는 덩치가 크니 걸어서 건넜으되 극락의 땅을 밟기는 매한가지

여기 이렇게 셋이 다 서 있지 않는가

누가 높고 누가 낮으며 누가 높았고 누가 낮았으면 어떻단 말인가

세 짐승은 문득 깨달았다

인간의 의식은 바다 위에 솟은 빙산의 꼭대기 같은 것이며 그 거대한 뿌리는 물밑 깊이 묻혀 있다는 학설 이를테면 토끼가 빙산의 꼭대기 말이 중턱 코끼리 다리가 뿌리라는식으로 풀이 할 수 있다 누가 더 고생 했든 탈 없이 모두 강을 건넜다는 얘기다

 

코끼리는 그만인가

아니다

그는 자신의 병신스럽게 육중한 물체성에 구역질이 난다

토끼 같은 깨끗한 가벼움이 부럽고 말의 비할 수 없이 멋진 우아함에 대한 부러움으로

그의 기둥다리는 짊어진 자학 때문에 오히려 무겁다

무자각한 인간이란 원리적으로는 현대와 가장 먼 것이다

​그런 시대에도 사람들은 사랑했을까

​남자는 그 물음에도 여전히 대답은 없이 우뚝 걸음을 멈춘다

여자도 선다

남자가 두 손으로 여자의 팔을 잡는다

그녀의 눈동자를 들여다본다

신기한 보물을 유심히 사랑스럽게 즐기듯 

"깡통, 말이라고 해? 끔찍한 소릴, 부지런히 사랑 했을꺼야. 미치도록. 그밖에 뭘 할 수 있었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