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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의 역사(용욱이의 내면세계)/2003

20030221 누적되는 일상 속 스트레스들

by 굼벵이(조용욱) 2021. 1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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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2. 21()

 

아침부터 계속 감사실에서 불러댄다.

어제 일상감사를 의뢰한 OO제 관련 사항과 OO고시 OO승격제 때문이다.

OO제는 YT 과장이, OO고시는 YJ과장이 맡아 돌아가며 나를 불러댄다.

그들의 감사 수법을 나는 뻔히 알고 있다.

질문을 통하여 감사거리를 구하고 말꼬리를 잡아 감사의견을 만든다.

그래서 그들 앞에선 가급적 말을 삼가고 즉문즉답의 명확한 답변 외에 주변 배경 설명을 하지 않는다.

같은 직급이지만 선배인 나를 함부로 다룰 수 없어서인지 그들은 꼭 나를 일상감사팀장 앞으로 불러들인 후 취조하듯 질문공세를 퍼부어댄다.

사납게 으르렁거리며 짖어대는 개는 개 자신을 믿고 그런다기보다는 제 주인의 힘을 과신해서 그런다.

사람도 별반 다르지 않다.

사실 그들은 이론적인 측면에서 나랑 맞붙는 것을 힘들어한다.

오전 내내 감사실 설명을 마치고 OO직 관련 검토서를 OO관리팀 P과장에게 가져갔다.

P과장은 OO분야에 오랫동안 종사해왔기에 상당 부분 나와 일치된 견해를 갖고 있다.

P과장은 내 말을 쉽게 이해하고 공감해 주었다.

***************

 

점심을 먹고 나니 S가 또 나를 불렀다.

OO제와 관련해서 순환보직 대상자도 공모에 응모할 수 있는가를 물었다.

즉 자기가 공모에 응할 수 있는가를 돌려서 묻는 질문이다.

자기가 수도권 5년에 걸려 지방으로 나가야 하는데 공모에 응모하여 선발되면 지방에 내려가지 않고 계속 본사에 남아있을 수 있느냐는 이야기다.

그것은 순환보직 기준에서 정해야 할 사항이라고 몇 번이고 되풀이해 설명해주었는 데에도 그는 계속 묻는다.

그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내가 답해 주기를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순환보직 기준과 공모제는 완전히 별개의 것이어서 공모제에 순환보직 기준까지 설정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순환보직 대상자가 만일 공모제에 응할 수 없거나 선발된 경우에도 순환보직 기준에 따라 지방으로 내려가야 한다면 공모제의 의미가 퇴색된다며 내 동의를 강요하였다.

나는 본사 전체를 순환보직 대상에서 제외하면 모를까 국부적으로 공모 선발된 직원만 순환보직에서 제외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나를 한심한 외골수라고 생각하거나 자기를 몰라주는 멍청한 놈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도 난 모르는 척 원칙을 주장할 수밖에 없다.

정말 핏대가 머리 뚜껑을 깨고 나올 만큼 스트레스가 밀려온다.

*******************

 

YT과장이 또 보자고 한다.

아무리 설명해도 내 의견을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 앞에서 참으로 오랜 시간을 허비해야만 했다.

이어지는 스트레스가 말이 아니다.

YT과장과 YJ과장 그리고 L팀장에게 번갈아가며 설명해야 했기 때문이다.

결국 YT과장은 내 보고서에 감사의견서를 달았다.

그럴걸 무엇하러 사람을 오라가라하며 취조하듯 설명을 요구했는지 알 수가 없다.

의견서를 가지고 S에게 갔더니 S가 감사실 의견서를 수정하였다.

그가 수정한 의견을 다시 YT과장에게 가져가니 그들이 수정의견을 받아들이겠다고 한다.

처장님이 막 대구 지하철 사건 관련 성금을 전달하러 KBS에 갔다가 들어오셨길래 처장 방에 들어가 전말을 말씀드리니 처장님은 의견을 달았다고 펄쩍 뛰신다.

담당과장이 누구냐고 물으시고는 그 녀석 쓸데없이 그런 일 하느라고 야근한다고 하는 모양이라고 말한 뒤, ‘S에게 L부처장 만나 의견 달지 못하게 하라고 주문하셨다.

S에게 처장 지시사항을 전달하니 그는 그걸 다시 나보고 가서 말하란다.

너무 한심해서 한숨도 나오지 않았다.

내가 못하겠다고 했더니 직접 가지는 않고 전화를 들어 L팀장과 전화통화를 하였다.

그리고는 내게 YT과장과 통화하라고 한다.

그와 통화했다.

나는 그에게 우리 처장이 담당과장이 누구냐고 묻더라고 했더니 그는 대뜸 내게 지금 나를 협박하는 것이냐고 대들었다.

나는 내가 당신을 협박할 생각이었으면 그런 얘기를 했겠느냐고 말한 뒤 전화를 끊고 하던 일을 계속하였다.

KY가 차를 가져왔기에 모처럼 K과장 차를 타고 귀가했다.

심한 스트레스로 어깨가 축 쳐진 채 들어온 내게 아내는 왔냐는 인사도 없이 입이 댓발은 나온 채 쳐다보지도 않고 저녁 준비에만 몰두했다.

뭔가 불만이 심하게 있는 모양이다.

그녀는 내가 맛있는 것도 사주면서 같이 놀아주기를 원한다.

그러나 나는 그런 것들을 잘 못한다.

어쩔 수 없는 불협화음이다.

서로 마음 안에 심한 스트레스를 품고 말없이 꾸역꾸역 밥을 넘겨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