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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의 역사(용욱이의 내면세계)/2004

20041117 살얼음판 위의 우리들

by 굼벵이(조용욱) 2022. 1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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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17(수)

오늘 아침 처장이 KW부장과 OOOO팀 과장들 그리고 KY를 불러 학습조직에 관한 보고서를 보강하도록 지시한 모양이다.

회의를 다녀온 KY 말에 의하면 처장은 KW부장을 극찬하면서 사람의 마음을 읽는 귀재라며 명실공히 자신의 후계자로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그에게 전수할 것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천연덕스럽게 늘어놓는 처장의 생각을 되새겨 보았다.

무서우리만치 사람을 철저하게 이용할 줄 아는 사람이다.

나를 부려먹기 위해 두어달 전엔 온 천지에 나밖에 없다며 내게도 사랑을 고백했었다.

오늘은 학습조직 일거리를 맡기면서 K부장에게 사랑을 고백한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미운 놈 1번으로 K을 꼽았던 사람이 K부장이 곧 죽어도 그를 위해 충성을 다하겠다는 각오를 다질 만큼 큰 감동을 준거다.

그 말을 듣고 K부장은 황송해 어쩔줄을 모르며 이제 겨울은 완전히 갔다며 구름 위를 걸었을 것이다.

내가 그랬듯이.

안 봐도 그는 물불을 안 가리고 오로지 돌격앞으로를 외칠 것이다.

최근 신입사원 입사식과 관련하여 그가 보여준 추진력을 보면 알고도 남음이 있다.

 

OO지방노동사무소 사장 출석요구 서류와 어제 비서실장과 협의한 내용 그리고 신문기일 연기신청 공문을 만들어 함께 처장 방에 들어가 인사를 하니 그의 표정이 싸늘하다.

아마도 최근에 있었던 몇 가지 나의 실언에 대하여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조근조근 어제의 경과를 보고하니 그의 얼굴에 드리워진 냉기가 조금씩 풀려나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어떻게든 사장이 출두하는 일을 결단코 막아야 한다고 지시하기에 K노무사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 중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처장 성격에 부의금 들고 여기 와야 할 것이라고 했더니 K는 점점 내 성미가 처장을 닮아간다고 했다.

그러고보니 정말 내가 점점 처장을 닮아가고 있는 듯하다.

반면교사를 하지 않고 정면교사를 하는 모양새다.

점심시간에 식당에서 과장들과 점심을 같이 먹고 있는데 LJ과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지금 녹경에 있는데 빨리 거기로 오란다.

손도 안 댄 것이어서 그냥 버리기 무엇하여 식판에 있는 음식물 중 일부를 과장들에게 나누어주고 식판을 통째로 반납한 후 녹경에 가니 처장과 L과장만 앉아있었다.

그동안 내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였더니 그게 좀 걸렸던 모양이다.

처장은 밝은 얼굴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내게 자기가 무서워 보이느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했다.

사실대로 대답을 잘 한 것 같다.

직원 때부터 정말 오랜 시간 그를 모셨다.

그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안다.

점심을 먹고 나오면서 식사 중에 내가 제기한 인사관련 각종 문제점들에서 힌트를 얻어 그는 여러가지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러면서 그는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자랑스러운 듯 뿌듯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오늘 점심은 돈 한 푼 안 들이고 그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는데 성공했다.

K노무사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내일 노동사무소 H가 전화를 하면 모른 척하고 그가 하라는 대로 하면 된다고 했다.

아마도 OO노무법인에 근무 중인 H의 전임 상사가 무언가 영향력을 행사한 듯하다.

세상은 그렇게 돌아간다.

오늘도 일찍 귀가하여 아이들 영어 단어공부를 지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