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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모임,취미생활/여행기

튀르키예 여행 D

by 굼벵이(조용욱) 2023. 3.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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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람이 싸놓은 이민가방 같은 여행가방에 짜증이 났다.
가방 하나에 23키로를 넘으면 안되는데 자칫 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너무 무겁다
공항버스에 가방을 싣는데 너무 힘들었다.
흑석동 정거장에서 마스크를 쓴 내외가 차를 타는데 KC 내외와 흡사했다.
그냥 버스 안 쪽으로 급하게 지나가기에 알은체를 못했다.
나중에 보니 KC 내외가 아니다.
하마터면 실수할 뻔했다.
세상에...
여행사는 9시 15분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무려 세시간 전인 6시 반까지 오게했다.
그 시간에 맞추기 위해서 우리는 새벽 네시 반에 교대앞에서 첫출발하는 공항 리무진을 이용해야 해서 잠도 제대로 못잤다.
많은 사람들이 그 시간에 맞추기 위해 택시를 타거나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왔을 것이다.
공항에서 KE 내외, KC내외를 만나 짐을 부치고 보안검사와 출국심사를 거쳐 출국장인 24번 게이트 옆에서 두시간 가까이 기다렸다가 비행기를 탔다.
기다리는 동안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했다.
출국 게이트 바로 맞은 편에 던킨도너츠가 있어 커피랑 샌드위치 빵을 먹고 아침을 대신했다.
커피가 4천원이 넘는다.
빵값까지 계산하면 지나치게 비싼편이다.
전에는 빵을 먹으며 마시는 커피이기에 2000원 내외의 저렴한 값에 커피를 제공했었는데 이젠 그게 아닌 듯하다.
다른 커피 전문점과 같은 값을 받는다.
나같은 체리피커를 방지하기 위해서 그런 듯하다.
아시아나 oz551편 논스톱 플라이트로 가니 비행시간이 10시간 정도 걸렸다.
시차는 6시간 정도 나서 마치 6시간만에 도착한 것처럼 오후 세시 반에 현지 가이더를 만났다. 
비행기 탈 때마다 기압차로 귀가 몹시 아팠으므로 하늘을 오르고 내리는 시간 동안엔 입과 코를 막고 날 숨을 세게 불어 귓속 기압차를 극복하니 예의 귀아픔 현상이 사라졌다.
집사람과 내가 멀리 떨어져 앉았는데 모두 복도측인 데에다 옆좌석이 비어있어 두사람 모두 비교적 편하게 왔다.
사실은 내 옆자리 사람이 샌드위치 좌석이 불편하다며 앞 좌석으로 자리를 옮기는 바람에 내 옆자리는 공석이 된거다.
그걸 놓고 내 앞 좌석의 외국인 부부가 심하게 항의해 그사람은 또다른 좌석으로 다시 옮겨가야만 했다.
그 외국인 내외 친구가 참 대단하다.
우리같으면 그러려니 했을 텐데 그는 자신들의 옆자리를 공석으로 만들려고 스튜어디스에게 심하게 항의했다.
이스탄불로 가는 내내 졸지도 않고 영화를 5편이나 봤다.
쉬지않고 온종일 영화를 본거다.
기내식은 두번의 정식과 한번의 피자 간식이 주어졌다.
난 반주로 포도주를 곁들였는데 KE친구 가족은 주구장창 맥주만 마시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참 대단한 맥주 애호가 부부다.
기내식은 한번은 닭고기 파스타를 다른 한번은 생선 파스타를 먹었는데 모두 맛이 그리 만족스럽지 못했다.
스튜어디스에게 포도주는 조금 더 따라달라고 해서 식사를 다할 때까지 포도주가 부족하지 않도록 했다.
예전엔 스튜어디스에게 그런걸 요구하면 조금 품위가 떨어진다고 생각했었는데 어차피 품위를 찾는 일이 인생에 그리 도움을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 자유를 속박한다고 느끼기에 때로는 품격이 떨어지고 조금 느려지더라도 원하는 것을 자유롭게 즐기며 살기로 했다.
공항에서 출국심사장까지 가는데 엄청 긴 거리를 걸어야 했다.
출국심사를 마치고 배기지 클레임으로 가 짐을 찾고 문을 나서 참좋은 여행사 가이더를 찾았다.
가이더의 첫인상은 조금 무성의하고 성실성이 많이 결여되어 교만한 듯한 느낌마저 주었다. 
왜냐하면 일반적인 여느 여행사와 달리 그는 여행사 이름이 적힌 피켓을 내려 여행사 이름이 자신의 가슴 쪽을 향하도록 하고 있어 누구도 처음에 그가 우리 가이더라는 것을 알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도 두리번거리며 물어물어 그를 찾아내야만 했다.
더군다나 우리와 함께 할 여행객 중 모자지간에 온 두 여행객이 박스를 비행기에 실었는데 보안검색에 걸려 그 박스를 찾을 때까지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 28명의 일행 모두가 불편을 겪으며 기다려야 했다. 
먼저 블루모스크 방문이 계획되어 있었지만 공사중이어서  대신 베아지트 모스크를 들렀다.
이슬람 사원은 태어나 처음 들어가 보았다.
모두 아치형 천장이고 성당과 달리 의자가 없다.
예배형식으로 절을 해야 해서이기 때문일 거다.
모스크  입구 작은 구조물에 빙 둘러 손발을 닦는 수도꼭지를 달아놓았다.
입실 전에 반드시 손발을 닦게 하고 여자들에게 히잡이나 긴 치마를 입게 한 것도 절을 하는 예절의 편의를 도모하고 청결 또는 성적 호기심을 자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나아가 기도실이 방바닥 형식이어서 자칫 불미스런 일이 생길지도 모르기에 그러지 않았나 싶다. 
이어서 그랜드바자르에 들렀다.
5분이면 끝까지 갈 수있는 시장거리에 40분의 쇼핑타임을 배정했다.
그냥 구경만 할 뿐 물건을 사는 사람은 드문 듯하다.
추적추적 비바람이 계속되고 아직 한기가 남아있어 불편한 가운데 오도 가도 못하며 불편을 겪었다.
1461년도에 오픈한 시장으로 지리적으로 동서양이 만나는 길목에 위치해 동서양의 문물이 교환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고 세계에서 가장 큰 재래시장이란다.
하지만 특별히 살만한 물건도 없고 모두 짝퉁들이니 조심하란 가이더의 안내를 명심해 모두들 아이쇼핑만 하는 것 같았다.
하릴없이 시간을 때우며 장시간 기다리다 다시 나타난 가이더의 안내를 받아 아야소피아 사원으로 갔다.
1700년전 동로마제국 시절에 지어진 성당을 오스만 제국이 점령하면서 이슬람 사원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래도 성당을 파괴하지 않고 잘 보존하는 대신 성당의 흔적을 지우고 꾸란 문자로 덮어 사용했다.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점령해 제국을 이루려면 반드시 피지배민족을  정치적 종교적 문화적으로 어느정도 수용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피지배국의 문화나 전통을 어느정도 수용하고 포용할 수 있어야 반란을 막고 장기간 지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로마의 성당은 이슬람 사원보다 정교하고 웅장하다.
어둡고 좁은 길을 따라 우리릴 태워갈 관광버스를 타기 위해 걸어가는 길에 젖지 않을 만큼 조금씩 비가 뿌려대고 가끔은 무례한 차들이 흙탕물을 튀겨대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저녁식사는 현지식 케밥이 제공되었는데 내게 맞지 않는 맛과 향 때문에 도저히 음식을 목에 넘기기가 어렵다.
가이더 말로는 그걸 여행이 끝날 때까지 매일 점심에 먹어야 한단다.
그게 진실이라면 그건 내게 거의 고문 수준일 듯하다.
Clarion 호텔에 투숙하며 KE가 소주 한 잔하며 첫날 세레모니를 제안했지만 KC 내외가 피곤하다며 반대해 그냥 쉬기로 했다.
난 내방에서 나홀로 소주 한잔 들이키고 잠을 청했다.

베아지트 모스크 내부

베아지트 모스크 외경

전통시장 가는 길
동서양이 만나는 그랜드바자르 전통시장

그랜드바자르 시장 내부

시장 밖 노점
1461년 개업
시장도 모두 내부가 모스크 천장과 비슷하다

성소피아 사원 외형

로마시대 건축물 성소피아 사원 내부 천장화

기독교 성당을 이슬람 모스크로 사용하기 위해 성당벽화를 지우고 개칠한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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