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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의 역사(용욱이의 내면세계)/2005

20051205 한 줄을 쓰더라도 그 문장에 크라이막스가 있어야

by 굼벵이(조용욱) 2023. 8.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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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05

내년도 업무보고 준비에 정신없다.

덕분에 저녁 늦은 시간까지 야근했다.

내년도 업무계획을 위한 좋은 아이디어를 제안하지 않는다고 과장들을 들볶았다.

'평상시에 일하면서 늘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야 한다', '창의력이 없는 사람은 없고 단지 노력을 안 할 뿐'이라면서 적극적인 참여를 독려하였다.

 

KKB 원장에게 편지를 띄웠다.

엊그제 있었던 테니스대회와 그분이 내게 들려준 여러 가지 조언에 대한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서다.

그분은 진정 나를 자신의 mentee로 생각하고 계셨다.

힘 닿는데 까지 나를 지도해 주시겠다고 했다.

엊그제 테니스장에 모습을 보이신 것도 나를 위해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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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편지와 답장은 K원장님에게 보낸 글과 답장이다.

---------- Original Message ----------

From : 조용욱(wooks@kepco.co.kr)

To : KKB(kimkyb@kepco.co.kr)

Sent : Monday, Dec 05, 2005 04:16 PM

Subject : 테니스 대회를 마치고 나서...

대회 시작 시간이 오후 2시였으므로 1시 10분 쯤 집을 출발하였는데 토요일 오후라 차가 막히는 바람에 조금 늦어 1시 50분 즈음하여 테니스장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몸도 풀 겸 라켓을 들고 열심히 연습을 하고 있는 중에 원장님께서 들어오시더군요.

얼른 쫓아가 인사를 드리려는데 많은 사람들이 원장님께 몰려들었고 인사를 나누시느라 정신이 없어 보이기에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 그냥 구장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게임이 시작되자 모두들 이를 악물고 조금 더 잘해보려고 안간힘을 쓰더군요.

그래서 시합의 형식이 필요한 모양입니다.

저도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뛰었습니다.

 게임이 끝난 후 주거니 받거니 한바탕 술자리가 벌어지고 우루루 노래방 문을 들어서는가 싶더니 노래 가락에 율동까지 뒤섞여 왁자지껄 범벅을 이루다가 우루루 노래방을 나섰습니다.

저는 원장님과 함께 차를 세워둔 테니스장으로 향했습니다.

과음으로 벌겋게 달아오른 뺨 위로 올 겨울 들어 처음으로 내리는 서설이 사뭇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정말 기분 좋은 느낌이었습니다.

마신 술도 술이지만 아마도 원장님이 들려주시는 좋은 말씀에 취해서 더욱 그랬나봅니다.

원장님을 모셔드리고 집에 오니 집사람과 아이들이 식탁에서 삶은 새우를 까먹고 있었습니다.

저도 가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집사람은 말없이 냉장고에서 술 한 병을 꺼내왔습니다.

웬 술이냐고 물으니 지난번에 롯데마트에 갔는데 세일을 하기에 저를 생각해서 두병을 샀다는 것입니다.

장뇌산삼주라는데 산삼이 들어있는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 어쨌든 酒聖의 딸, 술꾼의 아내답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둘이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한 병을 비우고 두 병 째 비워 가는데 아내는 비실비실 제 옆에 와 쓰러지더니 더 이상 못하겠다며 방에 들어가 담요 하나 덮어 쓰고 곧바로 골아떨어지더군요.

집에만 가면 아이들 문제로 늘 투덕거립니다.

아내는 하기 싫어하는 공부를 학원에라도 보내서 공부를 시키려고 하고 저는 아이들이 공부하기를 원할 때에 학원에 보내겠다는 생각이다 보니 서로의 생각이 늘 팽팽하게 맞섭니다.

집사람과 저는 늘 그런 문제로 싸웁니다.

가끔 마시던 술을 아이들이 몰래 훔쳐 마시기에 모른 척 내버려두려다가 오늘은 마개를 닫아 냉장고에 넣어버렸습니다.

제가 어렸던 시절에 하던 행태를 아이들은 판에 밖은 듯이 그대로 따라하고 있습니다.

저도 제 행동을 보면서 어쩌면 왜 이렇게 우리 아버지하고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을까하고 놀라는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암튼 그렇게 하루를 접었습니다.

저는 이런 종류의 일상을 글로 적으면서 글쓰기 연습을 합니다.

어떤 날에는 독서한 내용을 중심으로 쓰기도 하고, 다른 날엔 갑자기 떠오른 좋은 생각을 글로 풀어가기도 합니다.

연이어 이어지는 폭음 뒤 아침 기상이 게을러지면 한꺼번에 일주일 치를 몰아서 쓰는 날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냥 그렇게 수 십 년 쌓이다 보면 나중에 제가 글을 쓰는데 좋은 영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 반, 글쓰기 연습 반으로 생각하고 글을 씁니 다.

 

오늘은 근무시간에 이 글을 썼습니다.

근무시간 중에 이러면 안 되는데 잠깐 안부 인사말만 쓴다는 것이 글연습으로 조금 길어졌습니다.

그럼 다음에 또 안부 여쭙겠습니다.

2005.12.5

조용욱 올림

 

KKB원장의 답신

둘째 놈이 스믈여덟인데, 이놈이 참 공부를 못했어요

쉰명 정원에 47등아니면49등 했지

그런데 늘 친구들을 달고다녀.

나는 그게 기특했다오

공부 잘해서 잘된 놈이 썩 만지않은 세상이니....

이놈이 어찌어찌 해서 성균관 대학을 나왔어요

미술이 전공이니 실기는 잘하나봐

대구에 있을 때. 이 놈이 친구를 몇 데려왔어요.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고.

이놈들 술을 사 줬지

아들놈이 술이 거나해서 한마디 합디다

아빠 존경하고 참 고맙다나?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아빠가 한번도 공부 못한다고 혼 낸 적이 없대나

그래서 내가 말해줬지

공부는 스스로 하는 거야

친구를 잘 사귀는 것도 공부란다.

[추신]

글을 쓰는 습관은 좋습니다

다만, 습관적으로 글을 쓰다보면 글에 생명이 없을 경우가 많아요

한 줄을 쓰더라도 그 문장에 크라이막스가 있어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