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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의 역사(용욱이의 내면세계)/2006

20060916 노일리 독립군 조행기

by 굼벵이(조용욱) 2023. 12.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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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짜의 외로움(굼벵이 노일리 조행기)

 

 

요즈음 자꾸만 나 자신에게 미안한 생각이 든다.

1년이면 적어도 100권의 책은 읽어야 한다며 때로는 독서실에 까지 가서 글을 읽었었는데 요즘은 통 글 읽기를 소홀히 하고 있다. 주중에는 직장 동료, 선후배들과 어울려 각종 핑계를 대고 소주잔을 기울이고 주말이면 기를 쓰며 강을 찾는다. 영화를 보아도 너 댓 편은 족히 보고 글을 읽어도 웬만한 책 한권은 읽어 정리까지 해 왔던 주말이었다.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아들 녀석에게도 미안하다. 내가 곁에 있어 봐야 잠만 자는 녀석 혼이나 내는 게 내 일이지만 어차피 공부는 혼자 하는 거라며 혼자 훌쩍 떠나버리는 아빠를 보고 서운하게 생각할 지도 모를 일이다.

어떻게 사는 것이 제대로 사는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강을 찾아, 멍을 찾아 혼자 떠돌다 돌아온 다음에는 늘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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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철저하게 홀로서기에 도전하기로 했다, 라면 다섯 개, 장조림, 참치 캔, 소주 3병, 맥주 2캔 그리고 빼 놓을 수 없는 매운탕거리를 챙겨 차에 싣고 서울을 출발한 시간이 4시 50분.

이번에는 틀림없이 광미낚시도 찾을 수 있었고 양평 가는 6번국도 진입에 착오도 없었다. 어제 저녁에 준비한 김밥을 달리는 차 안에서 우걱우걱 씹으며 아침을 때웠다. 정말 신기하게도 우리 집을 출발하여 딱 두시간만에 노일리 강변에 도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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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썰망을 이용해 보기로 했다. 아직 썰망 사용법도 모르면서 인터넷에서 읽어본 내용을 기억하며 썰망을 던졌다. 넣자마자 누치 두 마리와 피라미 한 마리가 달라붙더니 이후 영 소식이 없다.

그사이 ‘한여울’의 회장님과 장금이 일행이 도착해 함께 어울려 줄을 흘렸다. 줄이 자꾸만 돌에 걸려 세 번이나 바늘을 새로 갈아야 했다.

입질이 뜸 하자 한여울 일행은 석쇠에 장어와 돼지불고기를 구워놓고 한담을 즐기며 나를 불렀다. 함께 어울려 취기가 오를 때까지 술잔을 받았다.

여울에선 누구나 이렇게 자연스럽게 친구가 된다. 넓은 자연의 품에서 모두가 하나같이 가슴이 넓어지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답례로 매운탕을 끓였다. 어찌되었거나 이것저것 넣어서 푹 삶아내니 생선 냄새가 나는 게 그럴듯하다. 매운탕을 안주삼아 또 술 한 잔, 취기가 눈앞에 까지 차 오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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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그라니 블루스타에 먹다 남은 매운탕 냄비만 올려놓은 채 다시 입수. 물고기와 취중 씨름이 시작되었다. 몇 마리를 잡았는지 가물가물하다. 그리 많이 잡은 것 같지는 않다. 매운탕 조사가 나타났다니 모두들 거동을 조심하는지 뜸하게 달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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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울 회장님 일행이 낚시를 접고 철수했다. 이젠 그야말로 나 혼자 여울을 지킨다. 날이 어둑어둑해온다. 보아하니 멍을 기대하기는 틀린 것 같다.

저녁도 먹어야겠기에 살림망 뒷문을 열어 잡은 고기를 강에 풀고 점심에 먹다 남은 매운탕 냄비에 불을 붙였다.

매운탕은 나랑 비슷해서 초벌보다 재탕이 진국이다. 거기다가 라면사리 한 개를 털어 넣고 바글바글 끓였다. 구수한 냄새가 진동을 한다.

하사관 생활을 오래 하다가 조그만 사업을 하신다는 분이 루어대로 빠가사리를 잡다말고 나의 권유에 따라 술친구가 되어주었다. 둘이 물가에 쪼그리고 앉아 매운탕을 안주삼아 주거니 받거니를 여러 배 한 것 같다. 잠자다가 중간에 깨지 않으려면 소주 한 병은 마셔야겠다는 생각에 둘이서 가져간 술을 몽땅 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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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떠난 어둠의 빈자리는 술김인데도 허전하다. 어둠 속에 짐 보따리를 잔뜩 지고 들고 래프팅장 마당 둔덕을 오르다 자빠져 무릎이 까졌다. 누군가 고마운 사람이 플래시를 비추어 주는 바람에 쉽게 마당으로 올라설 수 있었다.

마당 앞에 빼곡히 들어찼던 차들은 모두 떠나고 내차와 젊은 총각들을 싣고 온 차 두 대만 덩그라니 남아있다. 서울서 중학교 동창들 셋이 놀러왔다는 그들은 자동차 헤드라이트 불빛 아래에서 라면을 끓여 먹으며 내게 술 한 잔 권한다. 술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는 내가 마다할 리 없다. 박스를 뒤져보니 캔 맥주만 남았다. 그걸 꺼내어 가져다주니 무척 좋아했다. 거기 어울려 라면 국물에 소주를 두어 잔 얻어 마시고 자동차 중간시트를 펴서 침대 형으로 바꾸고 마누라가 덮고 자던 모포를 뒤집어쓰고 빨리 아침이 오기를 기대하면서 차박을 시작했다. 중간에 두 번이나 잠이 깨었지만 어둠이 깔린 강변의 고요만 있을 뿐 아침은 아직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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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시 50분에 잠자리를 털고 일어나 가슴 가득 멍짜의 꿈을 담고 어제의 그 자리로 입수했다. 피라미조차 영 입질이 없다. 자리를 옮겨 초짜의 눈에도 포인트라 생각되는 곳에서 줄을 흘렸다. 피라미 입질이 시작되더니 덜커덕 큰 놈이 물더니 힘을 쓰기 시작한다. 이정도면 멍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홍천강 끄리는 길이가 30센티가 넘어가고 몸집도 좋은 것이 깡패처럼 생겼다.

또 한 놈이 달려든다. 힘들게 끌어올렸는데 바로 코앞에서 푸더덕 하더니 팅하고 낚시 줄이 힘없이 끌려온다. 참 허전하고 아쉬웠다. 하다못해 피라미를 놓쳐도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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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마음속에 자기 것에 대한 집착이 지나쳐 불필요한 아픔을 만든다. 모두가 살아있는 동안 잠시 빌려 쓰고 가는 것인데도 기를 쓰고 자기 것에 집착을 한다.

잡았다가 돌려보낼 고기이면서도 그렇게 집착하는 것을 보면서 무언가를 들킨 듯 수줍어한다.

11시까지 끄리 4마리와 피라미 20수 정도 한 것 같다.

길이 막히므로 점심은 가는 길에 사먹기로 하고 강을 나섰다. 어제 저녁에 쓰다 남은 덕이 통을 차 트렁크 안에다 들여놓는 실수를 하는 바람에 트렁크 바닥에 덕이가 즐비하다. 이놈들 언젠가 날개를 달고 훨훨 자유로운 세상을 날아가겠지.

내 차는 트렁크 칸막이가 없어 자동차 문을 모두 열고 달리니 그 바람에 시트에 걸쳐놓은 바지장화가 금방 말라버렸다.(다른 사람들 참조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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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서기는 외로움을 즐기는 사람들이나 할 일이다. 내가 홀로서기를 생각한 것은 누구나 언젠가는 홀로서야 하기 때문에 한번쯤은 연습해 둘 필요가 있기 때문이었다.

사람은 서로 마주 비비며 즐거움도 슬픔도 함께 주고받아야 기쁨은 여러 배가 되고 슬픔은 더욱 가벼워진다. 수 천 수 만 년의 역사를 살아온 인간들이 모두 그렇게 옹기종기 모여서 살아왔다는 것을 보면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명백한 증거다.

즐거움에 지쳐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을 때 까지 서로 등 비비며 살 일이다.

언젠가 홀로설 수밖에 없는 날이 올 때까지 ......

그 때 가서 홀로서기를 즐겨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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