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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의 역사(용욱이의 내면세계)/2007

2007 찬숙이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by 굼벵이(조용욱) 2024.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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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3.3

비가 왔고 테니스도 못하니 아무데도 나갈 수가 없었다.

컴으로 르네 젤위거의 Nurse Betty를 보았다.

사이버 대학 강의도 들었다.

사이버대학 강의는 정막 유익하다.

대학 강의실에서 하는 강의보다 훨씬 콤팩트하고 내용이 알차다.

 

찬숙이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어제 죽다가 살아났다.

아침 열시부터 단체교섭 회의가 있었는데 그동안 진행됐던 협의내용들을 마무리하는 자리라서 그리 큰 어려움은 없었다.

그래도 앞으로 헤쳐가야 할 숙제가 너무 많아 어깨가 무겁다.

회의를 마치고 자리에 돌아오니 네 편지가 와 있더구나.

네 편지를 읽는 순간 모든 피로가 날아가 버렸다.

한동안 멍한 상태에서 환상 속 어린 날의 네 모습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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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쏟아져 내리는 스트레스를 감당하기 어려워 상사 사무실에 가 대책을 논의했다.

상사가 내게 스트레스 받지 말라고 격려를 해 주었지만 그래도 마음이 무겁다.

퇴근시간 조금 넘어 상사가 내 자리로 와서는 술 한 잔 하잔다.

그래서 우리 팀 식구들을 몽땅 데리고 장충족발집에 가 술판을 벌였지.

거기서 또 이리저리 선배, 후배를 만나 술자리가 길어졌는데

모두들 나를 죽이지 못해 안달이더구나.

그동안 술 마시고 떨어지는 꼴을 못 봤다고 나를 집중 공격해 결국 난 그들 앞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신입사원 때나 학교 다닐 때 술 마시고 토악질 한 이후로 거의 그런 일이 없었는데

어제는 자다가 일어나 화장실 변기를 잡고 통사정을 할 정도로 많이 마셨다.

원수 같은 사람들....

그 바람에 답장이 늦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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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차분히 내 책상에 앉아 네게 글을 쓰고 있다.

쉰 살이 넘은 지금에도 너의 작은 사랑이야기를 들으며 어린 시절의 너를 기억하는 것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애틋함으로 다가온다.

학교 교문을 나서 덕우리 길로 들어서는 국민학교 5학년짜리 예쁜 계집애가 보인다.

대학 1학년 때 막차에서 내려 너희 집으로 가는 깜깜한 산길을 걸으며

네게 다가가 손잡고 뽀뽀하고 싶은 마음을 잘도 참아냈던 기억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우린 그 때 왜 그랬을까?

그 때 네게 뽀뽀했으면 우린 지금 아마도 한 지붕에서 살고 있을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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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이 쓰리다.

어제 마신 술을 고스란히 반납하면서 뒤집힌 속이 아직 가라앉지 않은 모양이다.

그럼 담에 또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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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그렇게 소중하게 생각해줘서 고마워.

너도 내게 무척이나 소중한 사람이야.

오늘은 봄바람 실은 냉이 캐다가 국 끓여 먹어보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