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생활의 역사(용욱이의 내면세계)/2009

20090312 잘못된 정책이 어떻게 회사를 망치나

by 굼벵이(조용욱) 2024. 6. 19.
728x90

20090312()

전날의 과음이 하루 온종일을 나를 힘들게 했다.

아침 출근과 더불어 과음이 부르는 갈증으로 마셔댄 물이 족히 2~3리터는 될 듯싶다.

찬 물을 그렇게 들이 부었더니 그게 탈을 일으켜 급기야 설사를 가져왔다.

전날 지나친 과음을 하면 아침에 찬 물을 엄청 마셔대고 그러고 나서는 그게 설사로 이어지는 것이 내 습관화된 내장 패턴이다.

점심엔 백재현 부처장이 점심식사를 같이 하잔다.

박원형 부처장과 식사약속을 했던 모양이다.

석산집에서 생태탕을 먹었는데 밥에 넣은 콩이 설익어 비릿한 냄새를 풍겼다.

기분이 조금 이상했지만 무시하고 그냥 씹어 삼키니 참아 넘길만 했다.

그 자리에서 난 또 정부를 비판했다.

정부의 유전자를 바꿔라라는 김태유 박사의 책 이야기가 나와 그동안 정부가 공기업을 대상으로 행했던 수많은 경영학 실험에 대하여 열변을 토했다.

정부는 경영학의 개념도 모르면서 정부조직과 공기업을 대상으로 새로운 경영이론을 시험대에 올린다.

딴에는 잘 해보자고 시도된 것들이지만 내가 보기에는 시중에 떠돌며 일시적으로 유행하는 경영학 이론에 대한 시험적용만 거듭하면서 정부와 공기업을 망치게 할 뿐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기업은 시장에 맡겨야 한다.

정부조직은 절대 기업조직이 될 수 없다.

목적이 다르니 운영방식도 정부와 기업은 비교되어질 수 없을 만큼 다른 것이다.

경영학의 조직 이론이라고 해서 아무 조직에나 적용할 수 있고 부합하는 것은 아니다.

경영학이란 개별 기업의 경영 과정 속에서 성공한 사례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그것은 특정한 나라의 특정한 기업에서 성공한 것일 뿐 모든 나라의 모든 기업에 보편적 타당성을 가질 수 없다.

반드시 자국의 문화나 자기 기업의 문화, 조직 구성원의 정서에 맞아야 한다.

우리 한전의 문화나 직원들 정서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팀 제를 정부가 억지로 도입하여 시행하게 하다보니 많은 문제에 봉착돼 있는 것이 사실이다.

차장급들이 힘들게 공부해서 초급간부임용고시에 합격했는데 하위직 직원이 수행하는 직무 만도 못한 직무를 수행하게 하며 하위직 직원들에게 조롱의 대상이 되게 해서야 되겠는가!

그래 놓고서는 너희는 간부니 노조에 가입하지 말라는 것은 또 말이 되는가 말이다.

오히려 간부가 노조에 가입할 명분을 주는 것이다.

근로자를 관리하는 관리자가 아니라 개별적 업무를 수행하는 근로자이기에 노조가입의 명분을 제공하기에 충분하고도 남는다.

내가 설정한 가상의 시나리오에 의한다면 만일 내년에 복수직급제가 도입될 경우 차장급들은 별개의 노조를 결성할 것이고 상급단체를 민노총으로 가져갈 것이다.

그러면서 기존의 전력노조 맹원을 받아들이면 한전은 자연히 민노총으로 넘어가게 된다.

결국 김쌍수 사장의 잘못된 정책이 차장급들을 그렇게 내 몬 결과가 되고 마는 것이다.

점심식사 중에 누군가가 내 주변에서 같이 식사를 하게 됐고 내가 하는 소릴 들었을 것 같다.

내 말이 잘못된 말은 아니지만 조심스럽다.

 

최준원 과장의 보고서를 세 번에 걸쳐 수정해 주었다.

간단한 것 같지만 자신의 생각에만 치우쳐서 만든 보고서는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상의 대화도 상대방의 입장에서 해야 하듯 보고서도 보고를 받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써야 한다.

처음에 가져온 보고서의 제목부터 시작해 틀 자체를 완전히 다른 시각에서 접근하도록 했고 두 세 번의 손질과정을 거쳐 보고서를 완성하여 처장 결재를 득하도록 했다.

처음에는 그게 싫고 거부감을 느끼겠지만 한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왜 그랬는지 알게 될 것이다.

나도 그렇게 훈련 받았으니까.

 

War Room은 조용했다.

어제보다 나아진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갔지만 열심히 해서 조기에 끝내겠다는 결의만 받아왔다.

나오면서 언제 날 잡아서 함께 식사를 하자고 제안했다.

모두들 조용하기만 하다.

저녁 7시 즈음하여 이명환 차장이 책상 앞에 와서는 저녁식사 약속 여부를 묻는다.

윗사람은 누구나 그런 행동이 밉지 않다.

오히려 은근히 기다린다.

그렇다면 나도 가끔씩은 처장님에게 가서 저녁식사 약속 여부를 물어야 할 것 같다.

오랜만에 횡성한우를 가잔다.

적당히 시켜 소주 몇 잔씩 나누고는 된장찌개에 밥을 말아 조금 먹고 퇴근했다.

 

아내는 오늘도 내가 누운 침대에 들지 않았다.

침대 맡 의자에 앉아 TV만 조금 보다가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