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402(목)
오늘 있을 리포팅을 위해 TDR 룸에서 발표준비를 했다.
적어도 하루에 한번씩은 준비를 해야 될 것 같아서 벽에 붙여놓은 보고서의 내용들을 보면서 어느 것과 서로 연결지으면서 논리를 전개할까를 고민해 보았다.
한참 생각에 빠져있는 내게 한수원의 KH처장이 전화를 했다.
지금 진행 중인 TDR 관련 리포트를 달라고 한다.
어떤 특정의 주제를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모든 것을 다 달라고 한다.
자회사들이 같은 인사구조로 가는 것을 한전에서 희망하니 주어야 하는 것 아니며 당연한 듯 부탁도 아닌 요구를 한다.
K처장은 내 선배지만 한번도 날 위해서 무엇인가를 배려해 준 적이 없다.
내가 후배라는 이유로 늘 내게 희생만 강요해 왔었다.
내가 아무리 설명해도 그는 막무가내로 생각 없이 자료를 달라고 보챈다.
사장이 보안을 지시했기에 우리 회사 직원들에게도 철저하게 보안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더군다나 자회사에 비밀문서를 유포시키는 것은 어렵지 않겠느냐고 말해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달라고 난리가 아니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는 남이 희생돼도 좋다는 논리인 듯하다.
도통 내 말을 듣지 않고 끈질기게 자료를 요구한다.
울화통이 치밀어 올랐지만 잘 참아내었다.
인생살이에 그런 불합리가 수두룩 빡빡한데 하찮은 일로 나 자신을 괴롭히지 않는 게 좋다는 생각으로 그냥 웃어넘겼다.
삶은 미시적인 일상이 늘 그렇게 불합리로 잔뜩 메워져 있다.
하지만 거시적으로 보면 합리적이라는 모순이 있다.
나도 K처장처럼 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남의 삶에 본의 아닌 희생을 강요하고 있지 않는지 되돌아 보아야겠다.
기획전무님 실 비서 PM에게 전무님 편한 시간대에 전화를 해달라고 어제부터 주문을 해 놓았건만 영 전화가 없기에 이번에는 내가 직접 전화를 걸었더니 시간이 괜찮다고 한다.
가끔 보면 P나 관리전무실의 JK도 깜빡깜빡 주변 상사의 전화 부탁을 까먹는 경우가 많다.
우리 인사처장실 이원미는 다르다.
이원미는 자신의 직분에 그렇게 충실할 수가 없다.
이것이 바로 적재적소의 중요성이다.
원미는 J에 비하여 학력은 떨어지지만 비서업무로는 J보다 훨씬 더 적합하다.
원미는 자신보다 오로지 모시는 상사와 상사주변 사람들 관리에 정성을 다하기 때문이다.
정전무 방에 가서 어제 이명환 차장과 최준원 차장이 나 대신 골라준 넥타이를 건네 드렸다.
무슨 요란한 영어로 표기된 상표인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혹 페라가모 아닌가 싶다)
내가 모신 분이 전무로 승진하신 것을 축하하기 위해 기념으로 하나 샀는데 기회를 보다가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 의미가 조금 퇴색하긴 했다.
승진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선물을 전해 드리니 그 자리에서 뜯어보시고는 칼라가 맘에 든다고 무척 좋아하신다.
가뜩이나 많은 사람들이 들락거리는 데 더 오래 있으면 업무에 방해가 될 것 같아 얼른 자리에서 일어섰다.
정전무님이 처음 인사처장으로 부임했을 때에는 날 그리 신뢰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를 직접 경험하며 내 진심과 사람됨을 알게 되었고 떠날 때는 날 누구보다도 신뢰했다.
마지막 인사처장을 그만두시면서 자신이 한 약속대로 나와 이명환이에게 코칭리더십 교육 관련 유공으로 사장상을 만들어 주었었다.
내가 개발하고 직접 출연해 만든 코칭리더십 인테넷 교육으로 노동부로부터 환급받은 교육비가 8억원이 넘는다.
전직원 의무교육으로 실시해서 지금까지 있어왔던 교육과는 차원이 다른 일종의 혁명이었다.
자회사까지 내 코칭리더십 교육 프로그램이 전파되어 자회사 인력까지 수강하게 됨으로써 8억원을 벌어들인 것이다.
이를 계기로 회사에 다양한 인터넷 교육이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사장상 1등급에 포상금으로 상여금을 80만원 정도 받았으니 14만원 짜리 넥타이야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작은 정성으로라도 그 고마움을 표현해야할 것 같아 넥타이 하나 산거다.
난 지금껏 그런걸 잘 못 했는데 앞으로는 크고 작은 도움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에 소홀함이 없어야 할 것 같다.
현대백화점에서 인터넷으로 주문해 장명철 전무에게도 20만원자리 갈비 한 상자를 보내드렸다.
내가 모셨던 상사가 나팔수가 되어 여기저기 다니시면서 날 위해 좋은 말씀 전하고 다니신다고 하니 그 정도 인사치레는 진작에 했어야 했다.
다음에 임부장과 같이 저녁식사라도 한번 모실 계획이다.
정전무와의 저녁식사는 전 인사처 팀장들이 모여 한강 장어집에서 하기로 했다.
권태호, 권춘택 부장과 백재현 처장, 윤재경팀장, 손순애 차장이 함께 모여 장어 안주에 소주를 마시다가 된장국에 밥으로 저녁식사를 했다.
소주는 각1병 정도로 적당히 마신 듯하다.
윤재경이가 본인이 이번에 꼭 승진을 해야 한다고 입에 거품을 물었다.
정전무님도 윤재경과 백재현의 승진을 위해 모두가 도와주어야 한다며 맞장구를 쳤다.
권태호부장 차를 타고 삼성 전철역까지 온 후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KBS에서 환경 스페샬로 사람에 의해 죽어가는 멧돼지의 생태를 그렸다.
총과 개를 이용해 사람들이 수없이 잡아들이는 멧돼지로 인하여 호랑이나 표범의 먹이사슬이 끊어진 것 같다고 한다.
죽어가는 멧돼지를 보면서 우리 아이들 얼굴이 떠올랐다.
아비 말을 그토록 거부하며 제멋대로 살다가 생존경쟁에서 밀려나 처절한 인생을 살아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떄문이다.
일지매를 잠깐 보다가 잠을 청했다.
요즘 계속 자다가 중간에 잠을 꺤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사장 앞에서 할 TDR 브리핑 때문이거나 술이 덜 들어간 때문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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