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423(목)
마음이 무겁다.
어제 권태호 부장이 정면으로 공격을 가했기 때문이다.
지난번 TDR에서 결정한 승진제도 개선과 관련하여 현재 규정화 작업이 진행 중인데 이에 권부장이 반기를 들고 전무님에게 반대의견을 제시하려 한다는 이야기를 김병옥 차장을 통해 들었기 때문이다.
권부장은 그런 행동을 취하기 전에 구체적인 문제점에 대하여 나와 먼저 상의하고 그가 생각하는 보다 나은 대안에 관하여 심도 있는 토론을 제안 했어야 한다.
이런 사태가 생길 때까지 내가 어떤 아픔을 그 친구에게 주었는지 모르겠다.
내가 기억도 못하는 보이지 않는 상처들이 쌓여서 내게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리라.
결국 모든 것은 나로부터 기인한다.
사막여행이 어려운 것은 지나온 자국을 확인 할 수 없기 때문이란다.
지나온 자국을 확인할 수 없으니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제대로 알 수가 없어 방황할 수밖에 없다.
온종일 돌아봐야 제자리다.
지난번 임진강에서 길을 잃고 헤맬 때도 갑자기 몰려오는 큰 두려움을 경험했었다.
내가 나도 모르게 남에게 준 상처를 기억해 낼 수가 없으니 답답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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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주어진 짐의 무게가 너무 힘겹다.
누구든 하기 싫어하고 비켜가고 싶은 주제들은 모두 내게로 귀속되고 나를 내세워 해결하려 든다.
나도 솔직히 머리가 아프고 하기 싫어 도망가고 싶다.
처음 승진제도를 처음 검토할 때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검토해야 할지 몰라 얼마나 애를 먹었던가!
그래도 몇 가지 기발한 생각들이 떠올라 주었고 그로 인하여 사장님의 생각을 돌릴 수 있었다.
그 때는 아무 말 없다가 지금에 와서 갑자기 입에 거품을 물고 달려드는 후배가 야속하다.
한 두 해도 아니고 다섯 살이나 아래인 고등학교 후배 친구에게 수모를 겪는 내 모습이 한없이 처량하다.
아무리 내가 잘못해서 생긴 일이라 해도 이친구의 그런 행동은 이해할 수 없다.
툭하면 안하무인 격으로 지나치게 나를 무시하는 성향도 보인다.
내가 그동안 선배로서 제대로 역할을 못했던 것도 한 원인이고 몇 안 되는 동문들이 제대로 결속되어질 수 없는 환경도 한몫 한 것 같다.
더군다나 그는 K대학 동문회 총무 일을 보고 있는데 대학 동문회 만큼 고교 동문회를 중시하지 않는 듯하다.
고교 평준화 이후 소위 신설 명문으로 떠오른 고등학교여서 우리 이전의 선배 동문은 회사에 한명도 없고 내가 최 고참이다.
그런 것들이 무슨 대수인가!
나이만 먹었지 머리에 들은 것도 없고 생각이 어리다면 오히려 선배가 후배가 되는 것이다.
인생은 크게 보면 공평하다.
내가 누리는 즐거움의 대가에 상응하는 어려움의 시간을 예상해야 한다.
그래서 인생은 교만을 버리고 겸손하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남의 눈에 눈물나게 하는 사람은 언젠간 반드시 제 눈에 피눈물 나게 돼 있다.
태호가 보다 성숙한 생각을 가지고 주변을 배려해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난번 Draft 방식 공모에서도 지나치게 흥분하는 모습을 보면서 많이 안타까웠었는데 계속 그런 모습을 보이고 있다.
뒤에 감추어진 백그라운드를 은근히 드러내면서 유아독존적 교만을 즐긴다.
태호가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된 데에는 아마도 지난번 TDR 발표 때 자신의 생각이 사장으로부터 묵사발을 당한데 기인하는 듯하다.
그렇게 된 원인이 나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사람들은 어떤 문제가 닥쳤을 때 그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서 찾으려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
가끔 어디엔가 자신이 놓아둔 물건을 찾지 못할 때 누군가가 그걸 감추었거나 가져갔을 것이라고 의심하는 생각이 나타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인 것 같다.
거기서 마녀사냥 현상이 나타난다.
나는 인사제도를 담당하는 사람이다 보니 늘 그런 마녀사냥의 희생물이 될 수밖에 없다.
태호에게 화해의 메시지를 보내야겠다.
오늘 점심이나 같이 하자고 해야겠다.
이 친구가 그동안 줄곧 내게 승격 최저소요연한을 1년 앞당겨달라고 주문했었는데 내가 그걸 들어주지 않아서 문제가 생겼는지도 모른다.
가뜩이나 승진경쟁이 치열한데 그걸 알면서 최저 소요년수를 앞당겨줄 수는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내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부분인데 내가 직접 개입하여 규정을 바꾼다면 누가 나를 올바른 사람으로 보겠는가!
화장실에 갔더니 'NQ로 살아라' 라는 책이 꽂혀있어 서문을 읽다가 너무 내용이 좋아 그냥 들고 나왔다.
서문 나타난 내용은 대충 이렇다.
지위나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를 만나든 나누어 주려하고 상대방을 위해 헌신했던 사나이 예수가 쓴 책은 그 어떤 후세사람도 능가할 수 없는 것이라면서 남과의 관계를 중시하며 살아가는 삶을 예찬하고 있다.
내게 특히 부족한 부분이 NQ가 아닌가 싶어서 그 책을 마져 읽으려 들고 나온 거다.
사실 나는 NQ가 대단한 사람이었다.
어릴 때부터 친구란 친구는 모두 우리 집으로 데려와 함께 놀며 지냈었다.
그런데 서울로 전학 온 이후 전셋방에 살면서 그런 생활을 못하게 되었다.
앞으론 그걸 다시 꺼내어 보석처럼 닦아 광을 내 봐야 할 것 같다.
까짓 돈이야 벌면 되고 없으면 적게 쓰면 되는 것이니 때론 멋진 잔치도 벌이자!
아이들에게 물려줄 유산도 아니고 내가 번 것은 내가 쓰고 가면 그만이다.
다만 조상에게 물려받은 토지는 내 것이 아니니 대를 이어 아이들에게 물려주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물려주더라도 얽히고 설키어 너저분한 집터는 깨끗이 정리한 상태에서 물려주어야 한다.
태호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까 보냈던 메시지에 대한 답신이다.
내가 먼저 태호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면서 오늘 점심 사겠다고 했더니 마음을 열고 전화를 한 것이다.
내일 점심을 같이 하기로 했다.
그래서 다시 사람이다.
그렇게 서슬 퍼렇게 날뛰다가도 글 한 줄 말 한마디에 서로 스르르 마음이 녹아 따뜻한 전화 한 통 나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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