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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의 역사(용욱이의 내면세계)/2003

20031005 북유럽 여행기

by 굼벵이(조용욱) 2024. 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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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째날(10. 5)]

아침 5시에 잠에서 깨었다.

이제는 확실히 시차를 극복한 것 같다.

아침에 바라보는 호텔 주변의 자연경관은 정말 아름다웠다.

호텔 밑에는 커다란 호수가 있었고 저 멀리엔 굽이굽이 산등성이가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룸메이트 최부장님은 새벽같이 나가서 아침 운동을 했지만 나는 새벽공기가 입술을 트게 하고 내 건강에 별로 좋지 않을 것 같아 밖에 나가지 않았다.

아침 식사를 마친 후 솔베이지와 페르귄트의 고향을 뒤로하며 비행장 가는 길목에 있는 릴레함메르로 향했다.

전날까지만 해도 흐리던 날씨가 오늘 아침 유리알처럼 활짝 개었다.

이곳이 솔베이지와 페르귄트의 고향이므로 버스 안에서 가이더는 솔베이지의 노래를 들려주며 오페라의 줄거리를 이야기해 주었다.

페르귄트는 솔베이지의 사랑을 외면하고 젊음을 방랑으로 허송하고는 늘그막에 제정신이 돌아와 다시 고향을 찾았는데 열녀 솔베이지는 그때까지 끝까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덕분에 페르귄트는 결국 그녀의 무릎 위에서 영면할 수 있었다는 내용이다.

오페라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모양인데 나처럼 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저 돼지 목의 진주일 뿐이다.

사실 우리네한테는 감정표현이 확실하고 직설적인 트롯이 더 잘 어울린다.

표은복 가이더는 클래식 음악을 즐기는 듯했다.

산골짜기 결혼식이나 마왕의 궁전등 솔베이지 관련 음악들을 버스 안에 설치된 CD player를 이용하여 계속 내보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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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함메르로 가는 길에 그녀는 노르웨이의 복지제도에 대하여 설명해 주었다. 정년은 67세인데 연금혜택도 이 나이부터 받게 된다고 한다.

은행 등 특정 분야는 60세 정년도 있으며 본인이 원하면 70세 까지 현업에 종사하는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 67세에서 정년을 맞는다고 한다.

연금은 평생동안 가장 많이 번 기간이 포함되는 5년 동안의 평균임금의 64%를 사망 시까지 지급하며 남편(부인)이 죽을 경우 과부(홀아비)는 남편(부인)연금의 80% 수준을 받는다고 한다.

배우자라함은 5년 이상 동거하거나 쌍방 간에 자식이 있는 경우를 말하며 이혼하고 재혼을 하지 않은 경우에도 배우자로 인정되며 미성년자인 자식에게도 상속이 가능하다고 한다.

출산 및 육아휴직은 2년 정도이며 1년간은 월급의 80%가 지급되고 다음 1년간은 무급이지만 직장은 보장되며 출산 축하금으로 500만원 정도가 지급되고 아이를 낳는 비용 일체가 무료라고 한다.

하기야 병원부터 교회에 이르기까지 모두 정부가 운영하고 따라서 여기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공무원이므로 시골로 갈수록 공무원의 비율이 높아 심하게는 거주민의 50%이상이 공무원인 지방이 많다는 것이다.

출산장려정책을 쓰고 있는데 현재는 평균적으로 한 가정당 2인 정도의 출산율을 보이며 입양을 하더라도 출산에 준하여 모든 혜택을 부여한다고 한다.

우리나라 아이를 6000명 정도 입양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사실 창피스러운 우리나라의 수준을 말해 주는 지표라고 말할 수 있다.

미혼모나 동거의 경우에도 결혼한 사람과 동일하게 처우하며 오히려 single mothersingle father에게 더욱 큰 혜택을 부여한다고 한다.

초등학교부터 콘돔 사용법을 가르쳐 주는 등 성교육을 확실히 시켜 나름대로 자유에 따른 책임과 절제가 뒤따르는 성문화를 형성하기 위하여 노력한단다.

아이를 정말 사랑스럽게 키우고 인종차별이 거의 없는 나라라고 노르웨이를 추켜세웠다.

입양을 한 경우 어릴 때부터 입양 사실을 숨김없이 가르쳐주어 아이들이 성장한 후에도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한다고 한다.

간혹 생부모를 찾으려고 하는 입양아가 있으나 거의 90% 이상은 찾지 못한다고 한다.

실업자에게는 정부가 마지막 퇴직 시 월급의 80% 수준의 보조금을 80주간 실업수당으로 지급하며 직업학교에 가는 경우 1일당 200크로나(34,000원 수준)씩 지급해 준다고 한다.

 

우리는 강을 따라 계속 길을 달려 11시 무렵에 릴레함메르에 닿았다.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이곳은 인구 5만의 아주 작은 도시이지만 무척 깨끗하고 예뻤다.

비행기 시간 때문에 조금 일찍 점심 식사를 해야 했으므로 곧바로 음식점을 찾았다.

예약된 현지 음식점에는 귀여운 아가씨가 음식을 서빙하고 있었다.

동양 남자들이 우루루 몰려오자 모두 남자들이라 좋다며 우리를 반가이 맞아 주었다.

식탁 위에는 언제든 마실 수 있도록 시원한 하이네켄 맥주를 미리 올려놓고 있었는데 가이더가 술값은 별도라고 하자 쓸데없이 돈 쓰는 것도 아깝고, 이른 시간인데다 어제 마신 술도 있고 해서 그런지 모두 맥주는 손도 대지 않고 오로지 식사에만 전념했다.

점심식사는 닭고기 스테이크가 나왔다.

짜지 않고 입맛에 맞아 배가 불러 별로 입맛이 별로였지만 맛있게 먹었다.

음식점 아가씨에게 극찬의 멘트를 날렸다.

This is the nicest meal that I have ever eaten

그녀는 수줍은 미소로 얼굴에 홍조를 띄우며 내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특히 여자일수록 더욱 칭찬을 좋아한다.

음식점은 대낮인데도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촛불을 켜 놓아 어두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어 왜 그런가를 물으니 가이더는 아마도 긴 겨울의 우울한 심리상태가 이들을 폐쇄적인 성향으로 만들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했다.

점심식사 후 우리는 비행기 시간에 늦지 않도록 계속 차를 달려 오슬로 인근에 위치한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서 가이더와 아쉬운 작별의 시간을 가졌다.

그녀와의 여행 내내 느낀 점이지만 밝게 웃는 그녀의 모습 뒤에는 언제나 아픔과 외로움이 역력히 서려있는 듯했다.

복지국가라고는 하지만 이민 생활의 또 다른 아픔이 서려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우리를 보내는 그녀의 눈가가 촉촉이 젖어있는 듯했다.

조금 일찍 탑승수속을 밟은 덕에 우리는 여유 있게 면세점을 들러볼 수 있었다. 물건도 별로 없었지만 값이 너무 비싼 편(다른 데 보다 거의 2배 수준이었음)이라 나는 아무것도 구매하지 않았다.

암스테르담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몸이 몹시 피곤하여 눈을 감고 막 잠이 들었는데 옆에 앉은 도정만 위원장이 나를 깨운다.

뒤에 앉은 서양사람 부부와 말을 걸었는데 말이 통하지 않는다며 나에게 통역을 해달라는 것이다.

얼떨결에 대화 내용을 물으니 히딩크에 관해서 물었는데 전혀 반응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네덜란드 사람이고 우리나라에서 히딩크가 국민적 영웅 대접을 받고 있으므로 상식적으로 그 사람들이 당연히 알아야 하는데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면서 상대편이 무언가 말을 했는데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면서 둘이 서로 눈만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었다.

사태를 인식한 내가 중간에 끼어들어 그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내가 아무리 설명해도 그는 히딩크에 대하여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나중에 그와 차근차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들은 네덜란드 사람이 아니고 우리처럼 잠시 여행차 암스테르담에 온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결국 내가 그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미안하게 됐다고 사과하고 좋은 여행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해 주었다.

암스테르담에 내려 가이더와 조인하였는데 그는 4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중년남성인데 거의 기계적인 동작으로 안내를 좔좔좔 매끄럽게 이어가는 것이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그 일을 해 온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는 이동 도중 네덜란드의 섹스 산업에 대하여 이야기를 해 주었다.

정부가 창녀제도를 승인하고 있으며 주식회사의 형태로 상장까지 되어있다고 한다.

하루에 이들이 벌어들이는 수익이 5억 유로라고 하니 가히 그 시장을 알만했다. 2000여명의 창녀가 암스테르담의 홍등가에서 남자들을 유혹하는데 그녀들은 절대로 쇼윈도우 밖으로 나와서 호객행위를 할 수 없으며 인종, 피부색, 머리색, 눈 색깔까지 모두 자기가 원하는 대로 선택할 수 있다고 했다.

섹스는 늘 범죄와 연계되어있어 범죄의 개연성이 높다 보니 국가가 치안에 무척이나 신경을 써 매일 정사복 경찰관이 순찰을 돈다고 했다.

저녁식사는 원래 한국음식점에서 하기로 하였으나 마침 한국식당이 문을 닫는 바람에 중국음식점에서 먹게 되었다.

계란 탕수에 닭고기를 다져 넣은 계란탕과 돼지고기 스테이크가 나오고 말린 생선 비슷한 것으로 만든 탕수육, 야채 무침이 나왔는데 모두 우리 입맛에 익숙한 것이어서 대부분 잘들 먹은 것 같다.

호텔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가이더는 암스테르담의 라이브 쇼를 구경하러 갈 것인지를 물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에 동조했다.

그거야 말로 이문화 체험의 진수니 꼭 보아야 한다는 사람까지 있었다.

나는 94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연수하던 시절에 topless bar에 한두 번 다녀온 경험이 있고 별로 좋은 인상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내키지 않았으나 룸메이트 최부장님이 그것도 이문화 체험코스중 하나라며 극구 가봐야 한다고 잡아끄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같이 가기로 하였다.

우리는 쇼를 보면서 맥주 두 잔을 마시기로 하고 45유로씩 갹출하여 가이더에게 전달하고 우리가 기거하는 암스테르담 외곽의 crowne 호텔 셔틀버스를 이용하여 역전까지 간 다음 역에서 기차를 타고 두 정거장 정도 더 가 암스테르담 역에서 내린 후 시간에 맞추기 위해 뛰다시피 걸어 홍등가를 찾았다.

우리나라 미아리나 천호동 또는 지방 도시 역전 주변에 있는 홍등가와 유사하게 쇼윈도우에 비키니 차림의 여성들이 들어있다.

정말 뚱뚱한 사람, 마른 사람, 젊은 사람, 조금 나이든 사람, 흑인, 백인, 황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집집이 쇼윈도우 칸마다 전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문 위에는 항상 빨간 전등이 달려있었는데 그 등에 불이 들어와 있으면 지금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는 표시이고 그렇지 않으면 available 하다는 표시라고 했다.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좁은 골목이라는 골목길을 지나 라이브 쇼를 하는 장소를 찾아갔는데 쇼장 바로 앞에는 남자 성기 모양의 분수대가 설치되어 있고 양쪽 불알이 분수에 뱅글뱅글 돌아가고 있는 모습이 너무 재미있었다.

우리는 가이더가 끊어 주는 티켓을 받아 쥐고 공연장 안으로 들어갔다.

안내를 맡는 녀석이 우리를 맨 뒷자리에 앉혔다.

거기다가 맥주를 마시기로 했음에도 안내인은 우리에게 콜라를 가져다주었다.

우리가 이의를 제기하자 그는 단호하게 No를 연발했다.

내키지 않은 걸음이었는데 영 속은 기분이다.

우리는 콜라를 마시며 쇼를 감상할 수 밖에 없었다.

술을 마시면 이성을 잃고 엉뚱한 짓거리를 할 수 있으니 아마도 술을 금하도록 정책을 변경했을지도 모른다.

포르노 비디오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내용을 실제로 백인 남녀가 나와 연출하고 있었다.

여러 가지 부류의 쇼를 섞어 한 시간 가량 이어진다.

공연장 안에서 사람들이 어찌나 담배를 피워대던지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한가지 쇼가 끝날 때마다 사람들이 조금씩 빠져나갔으므로 우리는 빠져나간 자리를 채워가며 점차 앞으로 나아가며 관람하였다.

차라리 포르노 영화를 보는 게 훨씬 낫다.

한 시간 정도 지나니 우리가 처음 들어올 때 하던 쇼가 다시 진행되어서 우리는 열차 시간에 맞출 수 있도록 부지런히 공연장을 나왔다.

마침 schipol 공항으로 가는 열차가 있어 그걸 타고 공항에 내리니 출발할 때 예약해둔 셔틀버스 운전사가 미리 나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그의 성의에 감사하는 뜻으로 10유로를 주고 호텔로 들어와 잠을 청했다.

Crowne 호텔 역시 별 다섯 개짜리 호텔인데 미국식 스타일이어서 깨끗하고 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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