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째날(10. 6)]
다음날 아침 일찍 식사를 마치고 Reliant 에너지 노조를 찾았다.
조정관 Garbrie Hage가 강연을 맡았는데 그는 사실 오늘의 행사를 바로 며칠 전에야 통보를 받아 준비를 제대로 못해 미안하다고 하면서 더듬더듬 설명을 시작하였다.
그의 설명을 들으면서 네덜란드의 노조는 우리나라의 노조와 큰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workers' union에서 선발된 조정관과 회사측 대표단이 하나의 council을 만들어(OR) 노사문제를 위임 처리하고 있었다.
산별노조랑 같은 성격이다.
네덜란드의 OR은 우리회사의 노사협의회와 매우 흡사한 기능을 수행한다.
보통 조정관 수는 법으로 정해져 있는데 조합원 수에 따라 다르다고 한다.
조합원 수 100인 이상이어야 구성이 가능하고 1500인 이상이면 15인 정도의 조정관이 구성된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노조전임자 수 제한 원칙과 유사하다.
네덜란드 노사문화의 가장 큰 특징은 모든 것을 법이나 규정으로 정하고 이를 상호 존중한다는 데 있다.
이와 같은 특징을 갖게 하는 가장 큰 문화적 배경은 그들의 토론문화이다.
이들은 노측이든 사측이든 모든 노사협상의 참여자가 상호 존중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문화가 형성된 데에는 많은 시행착오와 역사적 배경이 있겠지만 내 생각으로는 무엇보다도 경제적 풍요가 가장 큰 요인인 것 같다.
우리는 아직 충분한 정도의 경제적 풍요를 경험하지 못하였으므로 정신적으로 충분히 성장할 수 있는 기간이 부족하다.
더군다나 사회복지 제도가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나라들처럼 충분하지도 못하다.
군위신강(君爲臣綱) ·부위자강(父爲子綱) ·부위부강(夫爲婦綱)의 삼강과 부자유친(父子有親) ·군신유의(君臣有義) ·부부유별(夫婦有別) ·장유유서(長幼有序) ·붕우유신(朋友有信)의 오륜이 우리의 문화 속에 깊숙이 뿌리박혀있기 때문에 집단주의적 사고가 강하여 평생 고용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문화 속에 살고 있다.
그러니 회사를 그만둔다는 것은 자기 인생의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과 같아 목숨을 걸고 자기를 고집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상대방을 이해해 줄 만한 여유가 없어 남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도 전에 자기의 결론을 고집하며 목소리가 높아지고 주먹이 오고 가는 난장판이 생겨나는 것이다.
이는 노측이든 사측이든 마찬가지고 정치권은 더욱 심하다.
노르웨이 현지 가이더의 말에 의하면 그들은 절대로 화를 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일 먼저 화를 내면 아무리 잘했어도 소송에서 질 수밖에 없다고 한다.
차분하게 시시비비를 가려 문제를 해결해야지 목청을 높이거나 상대방에게 불쾌한 행동을 보이면 곧바로 소송으로 이어져 봉변을 당하기 십상이란다.
현지인과 결혼하여 그곳에서 살고있는 가이더 자신의 경우 부부싸움 조차도 한국의 현실과 매우 다르다고 말한다.
이와 같은 문화적 차이가 토론문화를 성숙시킬 수밖에 없었고 토론을 거쳐 합의된 내용을 법으로 만들어 노사 모두 이를 존중함으로써 합리적 노사관계를 만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나는 늘 어느 나라 제도가 좋으니 그것을 가져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해 왔다.
새로운 제도를 도입할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제도가 그 나라 또는 그 조직의 문화와 얼마나 잘 맞는가 하는 데 있다.
번역을 맡았던 가이더의 친구가 자기가 다니는 회사의 재미있는 예를 하나 들어주었다.
불경기로 인력을 감축하여야 하는데 해고를 하게 되면 노사 간에 많은 어려움이 따르므로 노동청에 가서 협상을 벌인 결과 회사가 근로자에게 일을 절반만 시키고 나머지 절반의 75%는 노동청이 지급하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는 것이다.
만일 그들을 해고했을 경우 그들에게 실업급여를 지급하여야 하는데 실업급여는 퇴직 직전 임금의 85%를 상당 기간 동안(40주) 지급하여야 하므로 그렇게 하는 것이(나머지 절반의 75%를 지급하는 것 = 임금의 1/2×75%=임금의 37.5%) 오히려 정부에게 이익이기 때문에 그런 결정에 노사정이 합의를 하였던 것이다.
이와같이 노사관계에 관한 사항도 노사 쌍방 대표로 이루어진 worker's council(우리나라의 노사협의회와 유사한 기구로 그들은 이를 약어로 OR이라고 부름)에서 대부분의 분쟁이 원만히 해결되며 만일 OR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사항은 최고 의결기관인 노사정위원회에서 해결한다고 한다.
어쨌든 내가 내린 결론은 그들의 제도가 우리의 제도보다 우수하다기보다는 그들의 정치․ 경제․ 문화가 우리보다 앞섰기에 의식적인 측면에서 노사관계도 앞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인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김치찌개로 점심식사를 한 후 독일로 출발하기 전 잠깐 시간을 내어 시내 관광을 했다.
시내 관광 중에 버스 안에서 가이더는 네덜란드의 사회복지 제도에 대하여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주었다.
스칸디나비아 반도 국가들이 대부분 비슷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와 다르게 그들이 가진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암스테르담에서 EF소나타 자동차를 타는 정도의 사람이면 중상류층에 속하는 수준이라고 했다.
그들의 근면 성실한 생활태도에 비추어 충분히 짐작이 가는 이야기다.
미국의 경우에도 백인을 상대로는 장사를 할 수가 없다고 한다.
백인들은 사사건건 따지고 비교하고 제품의 역사까지 캐묻는 까다로운 습관에다 근면함이 몸에 배어있어 구매 결정에 오랜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흑인들이 충동구매도 잘하고 호화와 사치를 즐기기 때문에 그들을 상대로 한 장사가 훨씬 수월하다고 한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미국의 흑인과 비슷한 소비패턴을 보인다.
대학 진학률은 13% 정도 되는데 기술이나 기능을 우대하고 교수는 돈 보다는 명예를 존중하는 풍토라고 한다.
주로 모래톱이라 건축하기에는 부적합한 토지기반이어서 수백년 전부터 건축할 때에는 물에 강한 소나무 말뚝을 먼저 박고 그 위에 집을 지었다고 한다.
지금까지는 잘 버티어 왔으나 요즈음 밑에 박은 소나무가 점점 가라앉기 시작하여 어떤 집은 비스듬히 기운 경우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문화재보전을 위하여 정부의 허가가 없으면 집을 개조하거나 재건축할 수 없다고 한다.
주 5일 근무이면서 월요일은 오후 2시부터 일을 시작하는 주 37시간 근무체제이고 3년 이상 근속자에게는 32일의 휴가를 주어 언제든 분할 또는 적치사용이 가능하도록 되어있다고 한다.
자전거 전용도로에도 신호등이 설치되어 있어 만일 사람이 이를 무시하고 가다가 자전거와 부딪치는 사고가 발생하면 이는 보행자 책임이라고 한다.
이는 그만큼 자전거를 많이 이용한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는데 중앙역 옆에는 자전거 주차장이 엄청나게 넓었으며 자전거가 빼곡히 들어찬 것이 무슨 자전거 공장 같기도 했다.
개를 좋아해 개 보험은 물론 개 미장원 개 호텔 심지어는 개 양로원까지 성업 중이라고 하며 대마초 흡연자에 대하여는 일종의 환자로 취급하여 이를 허용하고 있으며 동성 간의 결혼을 인정한 최초의 국가라고 한다.
목욕도 남녀 혼탕 문화가 발달돼 있는데 이는 아주 어릴 때부터 그렇게 해 와 익숙해져 그리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교도소는 일반 교도소 외에 초범용 교도소를 별도로 운영 중인데 초범용 교도소는 회사에 출퇴근하면서 잠만 교도소에서 자는 형태로 운영함으로써 본인 스스로 교화하는 방법을 채택하고 있다고 한다.
국가가 토지의 60%이상을 소유하고 있어 건물을 짓고 싶은 사람은 정부로부터 토지를 임대하여 건축하며 아파트 가격은 36평짜리 기준으로 1억원 정도 하고 부동산 거래는 개인 간 거래가 불가능하단다.
반드시 부동산중개소를 거쳐야 하기에 부동산 소유에 대한 욕망이 별로 없어 가격상승 요인이 발생하지 않으므로 부동산투기 대신 그 돈으로 사업을 한다고 한다.
빈민층이 적고 중산층이 두꺼워 살기가 편하다고 한다.
만일 이곳에서 사업을 시작하고 싶다면 반드시 명심해야 할 사항은 마인드 컨트롤을 잘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화가 난다고 해서 owner가 “너 내일 당장 그만둬!” 따위의 말을 하게 되면 그는 그 자리에서 회사를 그만둬 버린다는 것이다.
대신 그는 본인은 근로의 의사가 있었는데 사업주가 일방적으로 해고를 했다고 소송을 제기하여 잘못하면 정년인 65세까지 그를 먹여 살려야 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직원이 사표를 냈는데 이를 수리하지 않아도 안 된다고 한다.
장관이든 우체부든 청소부든 매월 150만원 수준의 연금이 지급되며 죽으면 정부에서 유가족에게 200만원 정도의 장례비가 지급된다고 한다.
우리나라처럼 요란스러운 장례식이 아니어서 대부분 커피와 케익 한 조각으로 장례를 치르기 때문에 마치 파티와 흡사하다고 한다.
아마도 기독교가 영생을 믿는 종교이고 국민 대다수가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이다 보니 죽음을 축복으로 맞아서 그런 것 같다.
죽으면 80% 정도는 화장을 하며 20% 정도만 매장을 하는데 매장하는 경우에도 15년까지만 매장지를 사용하고 15년 후에는 납골당으로 안치하여야 하며 만일 15년 이후에도 계속 사용을 희망할 경우에는 별도의 사용료를 내야 한다고 한다.
또한 만과 만 사이 둑을 쌓고 그 밑을 파서 20년간 담수를 퍼내어 만든 나라이다 보니 기념품으로 가져갈 돌 하나 없다고 한다.
시내 왕궁 앞 광장에서 사진 한 컷 찍었고 공항으로 가는 길에 풍차 앞에서도 증명사진 하나 더 박고 schipol 공항으로 향했다.
독일 함부르크 공항에서 독일 가이더와 미팅을 해야 하는데 가이더의 타임 스케쥴이 잘못되어 잠시 기다려야 했다.
그사이를 참지 못하고 김훈민 위원장이 공중전화를 걸다가 카메라가 든 가방을 도난당하고 말았다.
잠깐 한눈파는 사이에 누가 슬쩍 해가 버린 것이다.
보험처리를 위하여 가이더를 만나 현지 경찰에 신고를 마치고 버스에 올랐다.
함부르크는 항구도시로 예부터 선원들이 오랜 항해 끝에 돌아와 회포를 풀게 되면서 발달한 유흥도시란다.
공항에서 숙소로 가는 길에 아이러니하게도 아우토반에서 traffic jam에 걸렸다.
그사이 버스 뒤 칸에서는 술판을 벌어졌다.
소변이 마려워 버스 안에 비치된 화장실에 잠시 용변을 보러 갔다가 남부산 옥정석위원장이 잡아끄는 바람에 거기 술판에 어울렸다.
버스 안에서 보드카에 양주에 소주에 잡탕으로 꽤나 많이 마신 듯하다.
저녁 9시경이 되어서야 목적지인 메벤피크 호텔(Mo''venpick)에 도착할 수 있었고 시간이 없었으므로 짐을 객실에 넣고 곧바로 저녁 식사에 들어갔다.
저녁은 밥과 생선튀김이 나왔다.
우리나라 밥처럼 끈적끈적한(sticky) 밥이 아니고 끈기가 전혀 없는 쌀밥과 생선 튀김 위에 카레 비슷한 종류의 소스를 얹어 놓은 것이었다.
저녁 식사 후 장익상씨가 술 한 잔 더하러 가자며 잡아끌었다.
그는 정말 술을 즐기고 좋아하는 사람이다.
호텔을 나와 술집을 찾아 어슬렁거리던 우리는 맥주를 파는 어떤 멕시칸 푸드점에 들어갔다.
안경을 낀 자그마한 아가씨가 장사를 하고 있었는데 무척 귀엽고 예뻤다.
장익상, 허충범, 도정만, 김훈민위원장이 자리를 함께 했다.
나는 그동안 외국을 다니면서 느꼈던 외국여행에서의 에티켓 몇 가지를 이야기 해 주었는데 갑자기 도정만 위원장이 내 말에 정색을 하며 이의를 제기했다.
별다른 뜻을 가지고 한 말은 아니고 내가 외국 여행 중 느꼈던 몇 가지를 혹시라도 처음 여행하시는 분들에게 작은 도움이 될까 해서 이야기해 주었는데 그 말이 자격지심에 자신을 폄하하는 것처럼 들렸던 듯하다.
나는 거기서 흑맥주를 두 잔 마시고 돌아와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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