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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의 역사(용욱이의 내면세계)/2003

20031008 북유럽 여행기

by 굼벵이(조용욱) 2024. 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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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째날(10.8)]

다음 날 아침 우리는 내가 가져간 마지막 컵라면을 들고 호텔 식당으로 가 아침식사를 했다.

작년 미국 여행 때 햇반을 다섯 개나 가져갔는데 그걸 희망하는 사람이 없어 고스란히 다시 들고 들어와야 했던 기억이 있어 컵라면을 가져왔다.

모두들 외국 음식에 질려있는 터라 컵라면을 맛나게 먹고 하노버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 검색대를 통과하는데 나를 검색하던 아가씨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잠깐 짐을 보자고 했다.

지퍼를 열어 짐을 보여주니 그는 내 가방 속에 들어 있던 햇반을 보고는 이해한 듯 다시 닫으라고 했다.

아마도 검색대 투시경에는 그것이 무슨 도시락 폭탄처럼 오인되었던 모양이다.

하노버에서 비행기가 1시간 연착되는 바람에 우리는 암스테르담에서 제시간에 transfer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무척 염려스러웠다.

주머니에 남아 있는 모든 지폐나 동전을 없애야겠다는 생각에 하노버 면세점에서 아내가 몰고 다니는 차에 넣고 다니면서 먹으라고 사탕을 세 통 샀다.

귀국할 땐 남아 있던 잔돈을 모두 없애야 하는데 그게 최선의 방법이다.

한 시간 늦게 출발한 암스테르담행 비행기는 암스테르담에서 서울로 가는 KLM 비행기 boarding 시간이 지나서야 도착했다.

따라서 우리는 거의 뛰다시피 탑승구로 달려가야만 했다.

암스테르담 공항은 domestic line에서 international line으로 가는 길목에 면세점이 위치하고 있었는데 문 총무가 잽싸게 면세점에 들러 필요한 물건을 사 오는 동안 우리는 먼저 가서 비행기가 출발하지 못하도록 사정을 이야기하기로 했다. 나는 먼저 헐레벌떡 탑승구로 뛰어가서는 현지인 안내 아가씨에게 두서없이 어색한 영어로 비행기 연착 소식과 우리 동료 몇몇이 지금 계속 걸어오고 있는 중이므로 조금만 기다려 줄 수 있겠느냐고 말하자 그 아가씨는 괜찮다면서 오렌지색 카드를 나누어 주었다.

카드에 적혀있는 내용을 보니 그 카드는 비행기 탑승 순서를 나타내는 것이었다.

비행기가 워낙 크다 보니 혼잡을 피하기 위하여 좌석별로 색깔을 정하여 전광판에 나타나는 색깔 순서대로 방송이 나오면서 탑승을 하도록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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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으로 돌아오는 마음이 무겁다.

업무에서 해방되어 아무런 부담 없이 놀기는 잘 놀았는데 그동안 산적해 있을 일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불안하다.

하노버부터 계산하면 16시간을 비행기 안에서 보내야만 했는데 돌아오는 길은 유난히 힘들고 지루하고 피곤했다.

양돈장의 돼지처럼 움직이지도 못하고 자리에 앉아 끼니때마다 날라다 주는 식사를 거르지 않고 꼬박꼬박 먹어서인지 집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설사가 시작되었다.

쌓인 피로에 마음의 부담까지 더해져 탈이 나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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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연수 여행은 특별한 부담이 있는 것이 아니어서 홀가분한 마음으로 즐길 수 있어 좋았다.

나는 3년 전부터 일기를 쓰기로 작정하고 아침 6시에 일어나 40분 동안 일기를 쓴 후 샤워와 아침 식사를 하고 출근하는 것을 습관화했다.

그 나이에 무슨 일기냐고 할지 모르지만 글을 쓰는 것만큼 자기계발에 도움을 주는 것도 없다.

구본형씨의 익숙한 것과의 이별이란 책을 읽은 후부터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를 시작한 것이다.

이번 여행 기간 중에도 버스를 타고 이동할 때나 여유가 있는 시간에는 작은 메모지 안에 이것저것 적어 넣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 그걸 정리하는 방식으로 하나하나 모아두었는데 이 여행기는 바로 그 일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김명수 처장님이 여행 후기를 써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하셔서 그냥 이 일기를 여행 후기로 공개하기로 하였다.

이것저것 좋은 말만 골라 아름답게 미화시키는 것보다는 보고 듣고 느낀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좋은 연수기가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혹시 이로 인하여 기분 나쁜 분이 계실지 모르나 한때의 작은 감정들은 커다란 세월의 수레바퀴 속에 모두 묻히는 것이니 괘념하지 마시고 소주 한잔에 다 웃어넘겨 버리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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