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지성의 대표이신 이어령 교수님이 여든의 나이에
모든 것을 내려놓는 마음으로 인생을 정의하셨다.
그런데 그분의 생각이 왜 내 생각이랑 이다지도 정확하게 일치한단 말인가!
그것은 아마도 그것이 진리여서 그럴거다.
설령 그것이 진리가 아니라도 좋다.
어쨌거나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본질은 사랑이다.
그렇지만 현실의 논리에 따라 인간의 실존이 본질에 앞서다보니
본질 즉 사랑이 퇴색하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아니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본질대로 살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신의 뜻이니까.
신이 곧 사랑이고 본질이니까.
오직 인간만이 알량한 전두엽으로 본질을 퇴색시킨다.
까불지 말고 더 늙기 전에 치열하게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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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길들여온 말들은 흰 머리카락처럼 빠져 사방에 흩어집니다.
내 삶 전체가 쓰레받기에 담기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파집니다.
동면은 작은 죽음이다. 모든 것을 수용하는 것. 복종하는 것이다.
추위를 맞는 모든 방법은 자연과 생명에 대한 믿음에서 오는 것이다.
겨울의 구근 속에서 잠들어 있다가 봄이 되어 꽃을 피울 때 비로소 그것은 꽃일 수 있다는 것이다.
호주의 선주민 aborigine는 추운 겨울이면 개들을 끌어안고 잔다.
한 마리로 견딜 수 없으면 두 마리로, 두 마리로 어려우면 3마리와 함께 잔다.
그래서 그들은 가장 추운 날을 three dog night 라고 한다.
몽골로이드는 유전적으로 알코올을 분해하는 유전자인 아세트알데히드가
시베리아 소빙하기에 추위로 돌연변이를 일으켜
아세트알데히드를 분해하는 ALDH-2를 갖고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한다.
유전자는 술에 강한 N형과 분해 능력이 저하된 D형의 두 가지가 있는데
유전자는 두 개가 한 쌍으로 붙어있으므로 술에 강한 NN형 중간인 ND형
마실 수 없는 DD형으로 구분된다. 몽골로이드의 대부분은 DD형이다.
플라톤은 레슬링 선수였었다.
물은 섭씨 4도일 때 가장 무겁다.
그래서 추운 겨울 강 밑바닥 물은 섭씨 4도이고 물고기는 얼어 죽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물의 비열은 1이어서 흙이나 공기 등(0.23~4) 다른 것보다 높아 쉽게 뜨거워지거나 차가워지지 않는다. 지구의 2/3가 높은 비열의 바닷물로 덮혀 있어 바다의 온도변화가 크지 않으며
인간 또한 70%가 수분이어서 온도를 보전할 수 있는 것이다.
철학자 탈레스가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고 한 것은
물이 없다면 생명이 탄생할 수 없다는 논거에 착안한 것이다.
물은 지구의 혈액인 것이다. 피가 양분을 실어 나르듯 물 안에는
이온성물질, 유기화합물, 기체 등을 녹여서 92종류의 원소를 용해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사람의 몸은 70%가 물이다. 2%만 잃어도 통증을 느끼며 5%를 잃으면 환각증상이 나타나고
12%를 잃으면 죽는다.
물에는 사용가치나 교환가치로는 따질 수 없는 생명가치가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스쿨이라는 말 역시 그리스 말의 스콜레에서 온 것으로 한가한 여가를 뜻한다.
노예가 주인을 만들어낸다는 뜻에서 주인은 노예의 노예다.
제사는 식구들이 음식을 나누며 조상을 기리는 일종의 만찬행사이다.
그래서 제수음식은 이승과 저승을 이어주는 상징적 기호이다.
전통적인 제수로 올리는 물고기는 송어처럼 바닷물과 냇물을 다 같이 넘나드는 것이라야 했다.
물고기 요리는 동쪽에 네발달린 짐승고기는 서쪽에 놓는다. (어동육서)
볼테르에 따르면 뉴턴은 죽을 때까지 동정이었고 남녀를 불문하고
그에겐 마음을 털어 놓을 만큼 가까이 지낼 수 있는 친구가 없었다고 한다.
그리스 철학자 엠페도클레스(empedocles)(BC 490? ~ BC 430?)
"이 세상은 물질로 되어있는데 서로 끌어당기는 힘과 내뱉는 힘이 있다, 그로서 움직인다.
그것이 먼지의 자유, 인력과 척력이다. 이 때 인력이 사랑이며 척력이 곧 증오다.“
라고 말한바 있다.
끌어당기는 힘은 가까이 가고 싶은 감정, 사랑이며 멀어지려는 힘은 증오다.
사랑에 의해서 결합하고 증오에 의해서 분리되는 끝없는 순환 속에서
우주는 거대한 순환 고리를 이룬다는 것이다.
(세상만물이 동등한 근원물질인 4원소(물, 공기, 불, 흙)의
사랑과 다툼 속에서 생겨났다[네이버 지식백과] (두산백과)
물리학의 모든 법칙은 죽음으로 향한다.
뉴턴이 제시한 운동의 3법칙 즉 관성의 법칙, 가속도의 법칙, 작용/반작용의 법칙도 그렇다.
끓던 것이 식고 움직이던 것이 정지한다. 모든 것이 죽는다.
실로 엔트로피라는 것은 죽음의 구조를 함유하기 마련인가.
그러나 생명에는 또한 정반대의 요소가 함께 있지 않은가.
다시 말해 역 엔트로피를 낳는 것이 생명인 것이다. 그래서 끝없이 돌아간다.
적을 뜻하는 enemy는 무시무시한 말이 아니다.
꼭 죽여야 할 대상이 아니고 어원적으로는 단지 사랑이 없는 남, 친구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적을 사랑하면 친구가 될 수 있다.
평등하다. 생명가치가 똑같다는 것이다.
생명의 위기 속에서 서로의 시선이 마주치는 그 때 거기에는 모든 위계가 사라지고 종과 유도 사라진다. 이렇게 평등이란 개념은 생명력, 사랑으로부터 태어난다.
인간과 짐승, 식물과 인간, 심지어 물건까지도 사랑하게 되면 살아있는 것처럼 존중하게 된다.
아무리 흉맹한 호랑이라도 서로 눈을 봤을 땐 사랑을 느낀다. 눈을 마주치면 아름답다.
생떽쥐베리는 서로의 눈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 그것이 사랑이라고 했다.
가축은 애완동물이 아니다. 그러나 이름을 붙이게 되면 애완동물이 된다.(관심과 관계)
이해관계가 선행되는 행동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
영어 square 라고 하면 융통성도 없고 아주 꽉 막힌 규격그대로인 것을 의미
인간이 자연의 마음을 품고 하늘의 마음을 품을 때,
네모꼴은 동그라미로 변해서 사람은 사랑 사랑으로 변한다.
사람은 살다 라는 동사에서 나온 동사형 파생어다. 살아 있는 것은 전부 사람이다.
모든 생명 존재가 사람인 것이다.
반대로 죽음은 살아있음의 정지를 의미한다.
인간은 완성체가 아니라 죽을 때까지 되어가는 과정의 존재 즉 being 인 것만 아니라
becoming 이기도 하다.
live의 철자를 거꾸로 바꾸면 evil이 된다.
치자형 물고기는 활동성이 좋아 양식이 불가능하며 비늘을 지니지 않는 종이라는 것입니다.
넙치는 토포필리아 장소애의 상징으로 정주형 문화를 말함. 풍경론, 풍토론
넙치처럼 움직임이 적은 어종은 흰살 생선으로 그 몸 속에 산도가 낮은 편이다.
참치처럼 선홍색 빛을 띄는 것은 운동량이 많아 산소 함유율이 높기 때문이다.
참치는 노마드형으로 네오필리아에 해당한다.
새 것 새 장소를 찾아다니는 타입의 생명자본이다.
날치는 최장 45초에 이르며 최고 400미터까지 날아서 갈 수가 있다고 한다.
살아서 바다를 관찰 할 수 있는 대표적인 어종이다. 할 수 없음을 뛰어넘는 어종이다.
날고자 하는 간절한 욕망 때문에 뛰어오르는 것이지요.
참치 같은 포식자들에게 쫓기어 죽기 살기로 뛰어오르는 것이지요.
더 이상 도망칠 수 없는 한계에 부딪히면 이러한 비약초월, 뛰어넘기가 생깁니다.
그래서 다음의 시대는 날치의 바이오필리아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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