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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지혜를 찾아서/인문학 산책

라틴어 수업(한동일)

by 굼벵이(조용욱) 2017. 1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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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갓난아기가 엄마라는 단어를 인지하고 처음 발음하기까지

아기에게 그 단어를 1만번 이상 들려줘야 한다고 합니다
아기는 엄마의 말을 통해 내 용량을 늘려 나가고 세상을 이해 해 나가는 것이죠.
바로 공부하지 않고 흡수하는 겁니다


늘 고상한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고상한 사람이 됩니다


근데 겸손한 사람이 공부를 잘한다는 사실을 알고있나요

겸손은 자신이 할 수 있는것과 할 수 없는것을 정확히 아는 것입니다

한번의 실패는 나의 수많은 부분들 중 하나일 뿐입니다


모든 동물은 성교 후에 우울하다

인간은 스스로 인간이라고 자각하고 난 뒤부터 신을 경배하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신을 필요로 했다는 말입니다

여기에서 만들어진 신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게 됩니다
열정적으로 고대하던 순간이 격렬하게 지나가고 나면 인간은 허무함을 느낍니다


인간이란 존재는 영원으로부터 와서 유한을 살다 다시 영원으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숨이 한번 끊어지면 그만인데도 영원에서 와서 인지 인간은 영원을 사는것처럼 오늘을 삽니다
인간은 죽어서 그 육신으로 향기를 내지 못하는 대신

타인에 간직된 기억으로 향기를 내는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내가 이 세상 도처에서 쉴 곳을 찾아보았으되 마침내 찾아낸

책이 있는 구석방보다 더 나은 곳은 없더라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성경이 현실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수 없다는 걸 절감하기 시작했습니다

쉽게 말해 중세의 대학은 기존의 학교들이 지식과 의식이

급격히 성장하는 사람들의 욕구에 더 이상 부응하지 못하자 그 대안으로 설립된 셈입니다


 `Vulnerant omnes, ultima necat.`
(모든 사람은 상처만 주다가 종국에는 죽는다.)
이 문장은 프랑스 바스피레네 지방의 위류뉴 교회
한 편에 있는 해시계에 새겨진 문장이라고 합니다.
오늘 아침 한동일 교수님의 `라틴어 수업`을 읽다가
이 글에 밑줄을 그었습니다.
제가 살아온 삶을 반추해보니 제 인생도
상처로 점철된 삶이었습니다.
처음부터 인간은 존경의 대상이 아니라 연민과 사랑의 대상일 뿐이라는 신부님 결론에 순종합니다.

사랑합시다.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상처받은게 아니라 제 안에 감추고 싶은 어떤것이 타인에 의해 확인될 때마다 상처를 받았다고 여겼던거죠.
대부분 스스로 몸과 마음에 상처를 주다가 자기 자신이 죽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랑하라 그리고 네가 하고 싶은것을 하라
아우구스티누스의 '페르시아 사람들을 위한 요한 서간 강해' 나오는 말입니다


아니요 신은 저를 배신하지 않았어요

그저 그의 시간과 나의 시간이 달랐을 뿐입니다
신은 언제나 인간의 계획보다 더 오랜 시간을 두고 미래를 봅니다
'영원'이 신의 시간이라면 '유한'은 인간의 시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언제나 꿈꾸고 희망합니다
희망 참아름답고도 허망한 단어입니다
처음부터 인간은 존경의 대상이 아니라 연민과 사랑의 대상일 뿐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