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농장은 실패한 혁명의 이면엔 언제나 권력투쟁이 내재하고 단지 권력의 주인만 바뀔 뿐이라는 사실을 폭로한 우화적 정치소설이다.
소련 공산당을 배경으로 한다지만 시대와 국가를 초월해 모든 집단에 적용되는 일반화된 사실인 듯싶다.
실패가 필연적이라면 혁명은 애당초 시도될 이유조차 없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촌 구석구석에서 대대손손 혁명이 이어지고 있는 것은 2600년 전 이솝우화를 아직도 읽고 있는 이유와 같지 않을까?
권력의 주인공만 바뀌게 할 것이 아니라 바른 사회로의 진화가 필요하다.
진화 없는 주인공 바꾸기식 혁명의 되풀이는 인간의 내면 깊숙히 존재하는 우월욕망의 산물 아닌가 싶다.
시대와 사회를 초월해 사랑이 필요한 이유다.
동물농장(조지오웰)에 이은 오웰의 산문 ‘나는 왜 쓰는가’에서
처음부터 문학에 대한 나의 포부는 내가 외톨이이고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과 뒤섞인 것이었다
나는 내게 말을 다루는 재주와 불쾌한 사실들을 직면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능력 덕분에 나는 나만의 비밀스런 사적 세계를 만들고 그 세계로 들어가 내가 일상의 삶에서 겪은 실패들에 보복 할 수 있었다
나는 15년 이상의 기간 동안 아주 다른 종류의 문학연습도 하고 있었다
그것은 나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계속 만들어 내는 일이었다
말하자면 마음속에만 존재하는 일종의 일기 같은 것이다
내가 하는 일이나 눈으로 본 것을 열심히 묘사해 보는 일에 점점 더 열중 하게 되었다
우리가 한 작가의 초기 발전 과정을 어느 정도 알지 못하고서는 후일 그를 지배하게 되는 이런 저런 동기들을 알 수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실제로 뭔가를 쓰기 시작하기 전에 이미 그는 자기 특유의 어떤 정서적 태도를 획득해 놓고 있고 그렇게 획득 된 태도로부터 아주 완전히는 벗어나지 못한다
자신의 기질을 길들이고 어떤 미숙한 단계나 괴팍한 기분에 매여 있지 않도록 자기를 훈련시키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작가의 할 일이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초기 영향들로부터 아주 벗어난다는 것은 글을 써야겠다는 충동 자체를 죽이는 일이다
작가들이 글을 쓰게 되는 데는 네 가지의 동기들이 있다
1 순전한 이기심
남들보다 똑똑해 보이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죽은 후에도 기억되고 어린 시절 자기를 무시했던 어른들에 대한 보복 하고 싶은 욕망
인류의 대다수는 그리 격렬할 정도로 이기적이지는 않다
대개 나이 서른쯤을 넘기면 사람들은 개인적 야심을 버리고 대체로 남을 위해 살거나 일상적 일에 짓눌려 살아 간다
끝까지 자기 자신의 삶을 살아 보려는 고집 센 인간들이 있고 작가는 이 부류에 속한다
진지한 작가들은 대체로 저널리스트보다 더한 허영과 자기 중심주의를 갖고 있다
2 미학적 열정
외부 세계의 아름다움 혹은 말의 아름다움과 말의 적절한 배열이 지니는 아름다움을 지각하기
하나의 소리가 다른 소리에 주는 영향을 인지하는 즐거움
좋은 산문의 단단함을 알아보고 좋은 이야기의 리듬을 인지하는 즐거움
가치 있다고 느껴지는 그래서 놓칠 수 없다고 생각되는 어떤 경험을 공유해 보려는 욕망
3 역사적 충동
사물 사건을 있는 그대로 보고 진실한 사실들을 발견하며 후대를 위해 이것들을 모아 두려는 욕망
4 정치적 목적
정치적이란 용어는 이 경우 가능한 넓은 의미의 것이다
세계를 특정 방향으로 밀고 가려는 욕망
성취 하고자 하는 사회가 어떤 사회여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놓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바꿔보려는 욕망
어떤 책도 정치적 편견으로부터 아주 자유롭지 않다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견해 자체도 하나의 정치적 태도이다
행복한 목사가 되었으리라
200년 전이었다면
영원한 운명에 대해 설교 하고
호두나무 자라는 것이나 지켜보는
하지만 사악한 시대에 태어나
나는 잃었네 그 행복한 천당을
내 코 밑에는 털이 자라는데
목사들은 털을 깨끗이 면도 한다
나중 시절이 좋았던 한때
우리는 아무 일에나 즐거웠고
우리의 심란한 생각들을 흔들어 잠재웠다
나무들의 가슴 위에
아무것도 모른 채 우리는 가지려했지
지금 우리가 숨기는 그 기쁨들을
그리고 믿었지
사과나무 가지의 방울새가 내 적들을 떨게 하리라고
그러나 처녀들의 배 살구들 응달 시냇물의 물고기들 말들
그리고 새벽에 날아오르는 오리떼
이 모든 것은 꿈이다
꿈을 다시 꾸는 일은 금지 되었다
우리는 기쁨을 흉내내거나 감춘다
말들은 크롬 강철로 만들어지고
작고 살찐 자들이 그 말들을 몬다
나는 꿈틀 거리지 않는 벌레
하렘 없는 환관
승려와 인민위원회 사이를 나는 유진 아람처럼 걷는다
라디오가 울리는 동안 인민 위원은 내 미래의 점괘를 봐주고 있다
그러나 승려는 내게 austin 7 차 한대를 약속했다
목사 일은 언제나 수지맞으니까
난 차가운 대리석 홀에 사는 꿈을 꾸었다 깨어 보니 그것은 진실
나는 이런 시대에 살려고 태어난 것이 아니다
스미스는? 존즈는? 그대는?
지난 10년을 통틀어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정치적 글쓰기를 예술이 되게 하는 일이었다
나는 근년 들어 아름답게 쓰기보다는 더 정확하게 쓰려고 노력한다는 말만 해 두자
동물농장은 내가 정치적 목적과 예술적 목적을 하나로 융합해 보고자 한, 그래서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충분히 의식 하면서 쓴 첫 소설이었다
모든 작가는 허영심이 강하고 이기적이며 게으르다
그리고 그들이 지닌 동기의 밑바닥에는 어떤 미스터리 하나가 놓여 있다
책을 쓴다는 것은 마치 길고 고통스런 투병 과정처럼 끔찍하고 피곤한 작업이다
저항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어떤 마귀에 씌지 않고서는 아무도 그 피곤한 작업을 하겠다고 나서지 않는다
어쩌면 그 마귀는 어린 아기가 시선을 끌기 위해 소리를 내지를 때의 그 본능과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기 자신의 개성을 끊임없이 지워 없애려고 노력하지 않고서는 어떤 읽을 만한 책도 쓸 수 없다는 것 또한 진실이다
좋은 산문은 창유리와도 같다
정치적 목적이 결여 되었을 때 일수록 나는 어김없이 생명력 없는 책들을 썼고 분홍색의 화려한 단락과 의미 없는 문장과 수식형용사들 속으로 속아 넘어 갔으며 그래서 대체로 같은 소리들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
이솝 우화가 2천 600년 전의 산물이라 해서 지금 그 효력을 잃어버린 것은 아니다
이 의미의 알레고리는 어떤 것을 말하되 다 말하지 않는 여백의 전략 언제나 다른 의미와 해석의 여지를 열어 놓는 비소진의 수사법이다
오웰은 권력 자체만을 목표로 하는 혁명은 주인만 바꾸는 것으로 끝날 뿐이지 본질적으로 사회 변화를 가져오지는 못한다는 것
대중이 살아 깨어 있으면서 지도자들을 감시 비판하고 질타 할 수 있을 때만 혁명은 성공한다는 것 등이 그가 작품 동물농장에 싣고자 한 메시지라 말하고 있다
그가 평생 고수 한 명분과 신념 그의 작품들과 수많은 에세이들을 참고할 때 오웰을 괴롭힌 것은 사회주의 혁명 자체가 아니라 그 혁명의 배반이라는 문제이다
혁명이 반드시 스스로를 배반 하게 되어 있다면 어떤 혁명도 이미 가치가 아니며 애당초 시도될 이유도 없다
동물농장이 함축하는 메시지의 하나는 동물들의 무지와 무기력함이 권력의 타락을 방조한다는 것이다
권력에 맹종하고 아부 하는 순간 모든 사회는 파시즘과 전체주의로 돌입한다
'삶의 지혜를 찾아서 > 인문학 산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자 없는 남자들(무라카미 하루키 단편집) (0) | 2020.03.05 |
---|---|
글쓰기의 달인이 되려면 잘못된 문장부터 고쳐라(박찬영) (0) | 2020.03.05 |
행복에 목숨 걸지 마라 (리처드 칼슨) (0) | 2020.03.01 |
소리 내어 읽는 즐거움(정여울) (0) | 2020.03.01 |
엄마를 부탁해(신경숙) (0) | 2020.02.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