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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지혜를 찾아서/자기계발 산책(2011이전)

머물지 말고 흘러라(안젤름 그륀)

by 굼벵이(조용욱) 2020. 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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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다(biginnen)란 말은 원래 황무지를 일구다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시작은 수고로운 일입니다. 시작의 순간은 황무지 앞에 서는 것입니다.

삶이란 돌과 잡목 그리고 엉겅퀴로 뒤덮인 땅과 같이 무질서합니다. 삶은 우리에게 호의적이지 않습니다. 인생의 넓은 황무지 중에 올해는 어느 부분을 먼저 일굴 것인지를 결정하십시오.

 

결코 다른 사람의 길을 따라가지 마세요. 물론 자신만의 길을 가는 것은 무척 외로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자신의 길을 혼자 개척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는 그 길에서 성장할 수 있고 진실한 삶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단념을 배워야 합니다. 단념은 내면의 자유로 가기 위한 금욕을 말합니다.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지는 사람만이 환희를 맛봅니다.

 

인생을 사는 즐거움을 느끼려면 죽음을 연습하십시오.

 

스스로를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는 소중한 존재라고 생각하십시오.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는 스스로를 제대로 알기 힘듭니다.

사랑에 빠진 연인은 주변의 모든 것을 사랑합니다.

사랑은 헌신입니다. 놓아주고 존중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여는 데는 성실함과 솔직함만한 것이 없습니다.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남에게 기대하지 마십시오.

 

상대를 변화시키려고 하지 말고 다르게 보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그것은 당신을 먼저 변화시킬 것입니다. 수많은 우정과 사랑이 실패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고집하고 양보하기를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은 누구에게나 마음이 찢어질 듯 아픈 상처입니다. 그러나 이별은 꼭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 떠나야 할 사람에게 집착하지 마십시오. 누구나 자신의 길을 가야 합니다. 인생의 성공을 위해서 말입니다.

 

결국 인생이란 영원한 고향을 찾아 떠나는 길입니다. 진정한 인간은 방랑을 통해 변화합니다. 인간은 집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집을 향해 가고 있는 중입니다.

 

신중하다는 것은 자신의 행위에 대하여 잘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행동을 할 때 모든 감각을 집중하십시오. 신중함은 바로 육체와 정신이 동일하게 활동하는 걸 말합니다. 따라서 신중함이란 매 순간마다 온전히 현재에 있음을 의미합니다. 신중함을 통해 당신은 순간의 비밀과 시간의 비밀을 그리고 삶의 비밀을 느낄 수 있습니다. 신중함의 또 다른 표현은 정신집중입니다.

 

더욱 높은 동기를 위해 성욕을 포기할 때 우리는 이를 승화의 단계라 이야기하곤 합니다. 통합은 승화보다 더 높은 단계의 것입니다. 통합이란 내가 하는 모든 것 즉 일과 육체 기도와 관계 등이 내 영혼에 유입됨을 의미합니다. 내면에서 발견한 모든 열정을 자신의 영혼에 통합하는 이는 정말로 완벽하고 완전한 사람입니다.

힐데가르트 폰 빙엔은 인간의 과제를 “자신의 상처를 진주로 만드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천사는 벼랑 끝에 서있는 자에게 하늘을 열어줍니다.

육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할 때만 육체는 아름다워집니다.

 

천천히 걷는 사람. 오직 동작에만 집중하십시오. 그러면 내면의 모든 불안도 사라집니다.

 

우리가 떠나는 길에는 약속이 숨어져 있습니다. 그 약속은 지금까지 한번도 마주친 적이 없었던 새로운 것과의 만남입니다. 자주 길을 떠나지 않는 사람은 결코 만날 수 없습니다.

 

새로움은 오래된 무엇인가가 죽을 때만 태어나지요.

 

이별은 적절한 시기에 꼭 거쳐야 할 성장통입니다.

 

자신을 더욱 잘 알기 위해서는 자신의 육체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 때 자기 인식을 위한 네 가지 근원이 있습니다.

첫째는 생각과 감정이며,

둘째는 우리의 이며,

셋째는 영혼을 표현하는 우리의 육체이며,

넷째는 태도와 습관 그리고 일을 나타내는 행동영역입니다.

이 네가지 영역을 모두 직관할 수 있을 때 우리가 처한 상황이 어떤지 실제로 인식할 수 있습니다.

진실한 사람은 언제나 자유롭습니다. 왜냐하면 진실만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기 때문입니다.

자유의 진정한 의미는 자신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타인을 위해 노력하고 일에 몰두하며 인간에 대한 봉사를 통해 자신을 잊어버리지 않고서는 자유를 이해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바꿀 수 없다면 사랑하라.(Change it or love it!)

 

죽음이란 것은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고, 선 그 자체를 원하며, 동경에 충실하고자 할 때 예감하게 됩니다. 사랑과 환희, 희망과 동경은 이 세상에서는 결코 이루어지지 않지만 죽을 때에 비로소 완전해질 수 있습니다.

 

한 성직자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왜 당신은 두려워하지 않습니까?”

그는 대답하였지요.

“저는 매일 죽음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죽음에 대한 생각이 온갖 불안을 없애준 것입니다. 너무나도 많은 불안이 죽음과 연관되어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길까 두려워하고, 아프다가 죽게 될까봐 두려워합니다. 창피를 당하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거부당할까 봐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실제 죽음에 직면했을 때는 타인의 생각 따위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습니다. 인생에서 성공했는지의 여부도 관심이 없습니다. 죽음 앞에선 위대한 무언가를 성취해야 한다는 명예심은 결국 위선일 수 있습니다.

 

내 결론 : 어떤 상황이나 문제에 직면했을 때 모든 생각과 판단의 기준은 죽음을 전제로 하라! 내가 지금 죽는다면 현재의 내 생각과 판단이 정말 가치 있는 일일까를 물어서 판단의 기준으로 삼으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