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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지혜를 찾아서/인문학 산책

그리스인 조르바(니코스 카잔차키스)

by 굼벵이(조용욱) 2020. 5.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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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게 감옥살이지.

암 그것도 종신형이고 말고 빌어먹을

자신을 구하는 유일한 길은 남을 구하려고 애쓰는 것이다

그토록 강렬하게 인생을 사랑한다면서 어떻게 책 나부랭이와 잉크로 더럽혀진 종이에다 자신을 그리도 오랫동안 내박쳐 둘 수 있단 말인가

이제껏 너는 그림자만 보고서도 만족하고 있었지

자 이제 내 너를 실체 앞으로 데려갈 테다

정신적인 낙태는 시기를 놓친 것이었다

왜요?가 없으면 아무짓도 못하는 건가요

가령 하고 싶어서 한다면 안 됩니까

당신 역시 저울 한 벌 가지고 다니는 거 아니오

매사를 정밀하게 달아보는 버릇 말이오.

자 젊은 양반 결정해 버리쇼

눈 꽉 감고 해 버리는 거요

해본 일만 해 가지고서야 어디 성이 차겠어

물레방앗간 집 마누라 궁둥짝 인간의 이성이란 그런거지 뭐

내가 산투르를 칠 때는 당신이 말을 걸 수도 있겠지만 내게 들리지는 않아요 들린다고 해도 대답을 못 해요

하려고 해도 안 돼

할 수가 없어

그 이유가 무엇이지요 조르바?

이런 모르시는군

정열이라는 것이지요

바로 그게 정열이라는 것이지요

결혼 했습니까?

나는 사내 아닌 줄 아슈?

그는 역정을 내며 말했다

나도 사내라고

즉 눈깔이 멀었다는 말이지

나보다 먼저 살고 간 사람들처럼 나도 개골창에 대가리를 쳐박고 떨어진 겁니다

결혼 했죠

그러고는 내리막길을 걸었어요

가장이 되고 집을 짓고 새끼들도 까고 골칫덩어리들 말이오

사람이란 젊을 동안은 아주 야수 같은 가봐요

그래요 두목 사람 잡아먹는 야수 말이오

식물이 똥과 진흙 속에서 어떻게 돋아나고 꽃으로 피어나지요 조르바,

그렇게 한 번 생각해봐요

똥과 진흙은 인간이고 꽃은 자유라고

내 언제면 혼자 친구도 없이 기쁨과 슬픔도 없이 오직 만사가 꿈이라는 신성한 확신 하나에만 의지한 채 고독에 들 수 있을까

언제면 욕망을 털고 누더기 하나만으로 산속에 묻힐 수가 있을까 언제면 내 육신은 단지 병이며 죄악이며 늙음이며 죽음이란 확신을 얻고 두려움 없이 숲으로 은거 할 수 있을까

언제면 오 언제면

이따금 오르탕스 부인이 나타나면 마치 코앞에다 미장원 쓰레기통을 비운 듯이 냄새가 달라지곤 했다

구름은 바람에 끊임없이 그 모습을 바꾸어갔다

세상만사에는 숨은 뜻이 있다

사람 동물 나무 별 그 모든 것은 상형문자다

그 상형문자를 해독하여 의미를 짐작하려 드는 자에게는 비탄만 있을 뿐이다

누가 사랑한다 갖고 싶다고 해주지 않으면 여자는 울어 버립니다

젊은 것들이란 참 잔인한 짐승이에요

아니에요

사랑은 이 세상의 가장 강렬한 기쁨일 거예요

아마 그럴 거예요

하지만 저 청 동 손을 보니까 그냥 벗어나고 싶군요

자유가 더 좋다는 말씀이군요

그래요

두목 노새 뒷다리와 수도승 앞다리를 조심하시오

그는 남자나 꽃 핀 나무 냉수 한 컵을 보고도 똑같이 놀라며 의문을 갖는다

조르바는 모든 사물을 매일 처음 보는 듯이 대하는 것이다

두목 화내지 마쇼

나는 아무것도 믿지 않소

내가 사람을 믿는다면 하느님도 믿고 악마도 믿을 거예요

그럼 온통 그것밖에 없어요

두목 그렇게 되면 모든 게 뒤죽박죽이 되고 골치 아픈 문제가 무더기로 나한테 닥쳐요

두목 인간이란 짐승이에요

짐승은 사납게 대하면 당신을 존경하고 두려워해요

친절하게 대하면 눈이라도 뽑아 갈 거예요

별이 빛났고 바다는 한숨을 쉬며 조개를 핥았고 반딧불은 아랫배에다 에로틱한 꼬마 등불을 켜고 있었다

밤의 머리카락은 이슬로 축축했다

몸을 일으켰을 때의 내 마음엔 이 바닷가에서 이루어야 할 두 가지 과업이 새겨져 있었다

붓다에서 벗어나고 나의 모든 형이상학적인 관심을 언어로써 털어내 버리고 헛된 번뇌에서 내 마음을 해방시킬 것

지금 이 순간부터 인간과 직접적이고도 확실한 접촉을 가질 것

두목 사람들 좀 그대로 놔둬요

그 사람들 눈 뜨게 해주려고 하지 말아요

그래 눈을 띄워 놓았다고 칩시다

뭘 보겠어요

자기들 비참한 처지 밖에 더봐요

두목 눈 감은 놈은 눈 감은 대로 놔둬요

꿈꾸게 내버려 두란 말이오

만일 그 사람들이 눈을 떴을 때 당신이 지금의 암흑 세계보다 더 나은 세계를 보여줄 수 있다면 또 모르겠소

보여줄 수 있어요?

당신이 그들에게 보여 줄 게 기껏해야 더 많은 어둠밖에 더 있어요

하늘의 별은 수를 불려 나갔다

별들은 인간에게 무심하고 잔혹하고 냉소적이며 무자비했다

혹자는 먹은 음식으로 비계와 똥을 만들어 내고 혹자는 일과 좋은 기분을 만들어 내고 혹자는 신을 만들어 낸다나 어쩐다나 합디다

그러니 인간에게 3가지 부류가 있을 수밖에요

원래 까마귀는 까마귀답게 점잖고 당당하게 걸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어느날 이 까마귀에게 비둘기처럼 거들먹거려 보겠다는 생각이 난 거지요

그 이후로 이 가엾은 까마귀는 제 보법을 몽땅 까먹어 버렸다지 뭡니까

뒤죽박죽이 된 거예요

기껏해야 절뚝절뚝 걸을 수밖에 없었으니까 말이오

여자에게 뭘 기대할 수 있겠어요

한다는 짓이 처음 만난 사내와 붙어 새끼를 까는 게 고작이오.

사내에게서 뭘 기대할 수 있겠어요

사내들이란 그 덫에 걸리고 맙니다

내말 명심해 둬요 두목

어렸을 때 나는 내 상상을 마음대로 펼치다 나 자신까지도 믿게 된 허무맹랑한 거짓말들을 친구들에게 들려주곤 했다

나는 원래 중심을 못 잡는 놈입니다

악마는 이쪽에서 당기고 하느님은 저쪽에서 당기지요

내 영혼을 육신으로 채우리라

내 육신을 영혼으로 채우리라

그리하여 마침내 저 영원한 두 적대자가 내 안에서 화해 하게 만들리라

맹세코 말하지만 불끄고 그 짓 할 때 저 늙은 것은 영락없는 스무살이예요

옛날 애인은 하나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할 때마다 달라져요

절대 농담 아닙니다

할때마다 다정한 비둘기가 되었다가 순결한 백조가 되었다가 상큼한 종달새가 되었다가 그리고 낯빛을 붉혀요

그래요 정말 그런다고요

처음 하는 것인 양 낯빛을 붉히고 파르르 떨어요

천번을 깔려도 천번을 처녀로 다시 일어서는 겁니다

우리는 꽤 오랫동안 마시면서 큼직한 토끼 두 마리처럼 오독오독 밤을 씹어 먹었다

결혼은 맛 대가리가 없어요

후춧가루 안 친 음식 같은 거니까

여자는 맑은 샘물과 같습니다

거기 들여다보면 모습이 비칩니다

마시면 되는 겁니다

뼈마디가 녹신녹신 할 때까지 마시면 되는 겁니다

이윽고 목이 마른 다음 사람이 옵니다

그 사람도 자기 모습을 들여다보며 마시면 되는 겁니다

세 번째 사내가 오겠지요

맑은 샘물 소핑카도 바로 그것이었지요

슬라브 여자는 한 번에 한 방울씩 찔끔찔끔 사랑을 팔아먹고 값어치에 못 미치는 걸 주면서 그나마 저울 눈까지 속여 먹는 욕심쟁이에다 말라깽이 그리스 여자들과는 턱도 없이 달라요

슬라브 여자들은 짐승하고 아주 촌수가 가까워요

이 대지하고도 그렇고.

줄 때는 기분 좋게 줍니다

따지기 좋아하는 그리스 여자들처럼 깨죽거리는 법이 없어요

종교는 대중의 아편이오

두목 돌과 비와 꽃이 하는 말을 들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어쩌면 우리를 부르고 있는데 우리가 듣지 못하는 것일지도 몰라요

산다는 게 곧 말썽이예요

이것 보게,

여자와 잘 수 있는 사내가 자 주지 않으면 큰 죄를 짓는 거라네

여자가 잠자리를 함께 하려고 부르는데 안가면 자네 영혼은 파멸을 면하지 못해

심판의 날에 여자는 하느님 앞에서 한숨을 쉴 거고 그 한숨 하나면 자네가 아무리 대단하고 잘한 일이 많아도 바로 지옥행이라네

여자에 대한 봉사를 거절하고 도망간 놈은 이 땅에서 뭘로 태어날 것 같으세요

노새 노새가 되죠.

오늘날 우리가 보는 노새라는 노새는 모조리 전생에 봉사의 의무를 저버리고 도망친 남자와 여자들, 남자이면서 남자 노릇을 거절하고 여자이면서 여자 노릇을 거절한 것들인지?

그래서 이것들이 항상 뒷발길질을 하는 겁니다

물에는 맨눈으로 보이지 않는 쬐끄만 벌레가 우글거린답디다

보고는 못 마시지.

안 마시면 목이 마르지

두목 확대경을 부숴 버려요

그럼 벌레도 사라지고 물도 마실 수 있고 시원해지는 거지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행위가 얼마나 무서운 죄악인가를 깨닫는다

서둘지 말고 안달을 부리지도 말고 이 영원한 리듬에 충실하게 따라야 한다는 것을 안다

전에는 그토록 나를 매혹하던 이 모든 것들이 이날 아침에는 지적인 곡예 세련된 협잡에 불과한 것으로 보였다.

그것이 문명이 쇠퇴하는 모습이다

그것이 인간의 고뇌가 종말을 맞는 모습이다.

순수시며 순수 음악 순수 관념이라는 정교하게 짠 속임수.

최후의 인간 - 모든 믿음과 모든 환상에서 해방된, 그래서 기대할 것도 두려워할 것도 없어진 - 은 자신을 구성하는 진흙 덩어리가 정신으로 축소되어 버렸다는 것을, 그리고 그 정신에는 뿌리가 수액을 빨아올릴 흙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보는 사람이다,

최후의 인간은 자신을 비운 인간이다.

그 몸에는 씨앗도 배설물도 피도 없다.

모든 것은 언어가 되고, 언어의 집합은 음악적인 곡예가 된다.

최후의 인간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그는 전적인 고독 속에 들어앉아 다시 그 음악을 소리 없는 수학적 방정식으로 해체해 놓는다.

나는 소스라쳤다. 붓다가 그 최후의 인간이다. 나는 부르짖었다.

이것이 그의 비밀이며 엄청난 의미이다.

붓다는 스스로를 비운순수한영혼이었다

붓다의 내부는 공허하며 그 자신이 바로 공()이다

네 육신을 비워라, 네 정신을 비워라, 네 가슴을 비워라!

그는 외친다.

그에게 이미지의 그물을 던져 그를 잡고 나 자신을 놓아 주어야 한다

붓다에 대해 쓰는 일은 더 이상 문학적인 작업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 내부에 도사린 무서운 파괴력 과의 생사를 건 싸움이며 내 가슴을 고갈시키는 거대한 부정과의 결투였다

이 결투의 결과에 내 영혼의 구원이 걸려 있었다

우리는 아직 충분히 먹은 것도 마신 것도 사랑한 것도 아니였다

우리는 아직 채 살아 보지도 못했다

(내 해석: 여기서 붓다는 최후의 인간, 즉 마지막 리더를 말한다. 부정형 인간은 이성의 잣대를 들이대는 순수하지 못한 채운 인간을 말한다)

두목, 봤어요

사면에서 돌멩이는 다시 생명을 얻습니다

그는 이성의 방해를 받지 않고 땅이 되고 물이 되고 동물이 되고 신이 되어 살았다

카페만 카페라고 생각하지 말게 책도 그렇고 습관도 너의 그 고상한 이념도 그래 그 모든 게 카페야

이곳으로 오면서 나는 내 운명을 데려왔네

운명이 나를 데리고 온 것이 아니네

인간은 자기가 선택한대로만 행동하네

즐길 거리는 아무것도 없어

아니 딱 하나 있지

노동 정신 노동과 육체노동 나는 육체 쪽이 더 좋아

나는 사람들을 지켜 준다는 비밀스러운 힘은 전혀 믿지 않아

오히려 악의도 목적도 없이 좌충우돌하며 거치적거리는 사람은 모조리 죽여 버리는 맹목적인 힘을 믿네

가장 바보 같은 놈은 내 생각에는 바보 같은 구석이 전혀 없는 놈일 것입니다

인간은 짐승이요 짐승은 책 같은 걸 읽지 않소

시간은 결이 고운 따뜻한 모래 같은 것이었다

나는 내 손가락 사이로 부드럽게 빠져나가는 모래를 감촉할 수 있었다

조르바에게 복이 있을 진저

조르바는 내부에서 떨고 있는 모든 추상적인 관념에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살아 있는 하나의 육체를 부여했다

생명이란 모든 사람에게 오직 일회적인 것, 즐기려면 바로 이 세상에서 즐길 수밖에 없다는 경고였다

영원히 다른 기회는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토록 가차없는 경고, 동시에 연민으로 가득한 경고를 들은 정신은 자신의 나약함과 비열함 나태함과 헛된 희망을 극복하게 하고 전력을 기울여 영원히 사라져 버릴 순간 순간에 매달리겠노라고 결심한다

위대한 모범들을 떠올리면서 우리는 우리가 길 잃은 영혼이며 우리의 삶이 하찮은 쾌락과 고통과 헛소리로 소진되어 가는 중임을 깨닫는다

그러면 부끄러워하면서 입술을 깨무는 법이다

제 꼬리를 삼키는 신비스러운 뱀이 나를 그 원 속에다 가두었다

대지는 자신의 아기들을 삼킨다

다시 더 많이 낳아 삼킨다

(니체의 영원회귀를 설명하는 듯)

자라서는 영원이라는 단어에 거의 빠질 뻔했다

또 사랑 희망 국가 하느님 같은 숱한 단어들에도 빠질 뻔했다

그 단어 하나하나를 정복하고 지날 때면 나는 흡사 위험에서 빠져나와 전진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나는 겨우 단어를 바꾸어 놓고 그것을 구원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주교가 내게 말했다

당신은 배운 청년 같소.

여기에서는 말 상대할 사람이 없어

내게는 내 인생을 바람직한 것으로 만들기 위한 세가지 이론이 있소

첫번째 이론은 이러하오

꽃의 모양은 색깔에 영향을 미치고 색깔은 속성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각각의 꽃은 인간의 몸에 나아가 인간의 영혼에 저마다 다른 작용을 한다

꽃이 만발한 들을 지날 때 우리가 극히 주의를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오

나의 두번째 이유는 이러한 실제적인 영향력을 가진 관념은 실체가 있다

실제로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로 대기 속을 떠다니는 게 아니라 진짜 몸이 있다

눈 입 발 위가 있다는 것이다

그 몸은 남성이나 여성이 되어 서로를 뒤 쫓는다

그래서 복음서에 이르기를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 하는 것이오

나의 세번째 이론은 이러하오

우리의 덧없는 삶속에도 영원히 있다

우리로서는 혼자서 그걸 뚫어 볼 수 없을 뿐이다

우리는 나날의 걱정으로 길을 잃는 답니다

소수의 사람 인간성의 꽃 같은 사람만이 이 땅 위의 덧없는 삶을 영위하면서도 영원을 살지요

나머지는 길을 잃고 헤매니까 하느님께서 자비를 베푸시어 종교를 내려 주신 것이요

이렇게 해서 오합지졸도 영원 속에 살 수 있게 되는 거지요

나는 신이 떠나버린 시끄러운 저잣거리의 성당도 그런 빈 조개껍데기라고 생각했다

풍상에 절어 해골만 남은 선사 시대의 괴물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국 같은 게 있는 한 인간은 짐승 그것도 앞뒤 헤아릴 줄 모르는 짐승 신세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먹어 치운 새끼 양에게 미안하지도 않소?

그럭저럭 방귀로 빠지게 할 셈이오

갑시다 가요

가서 새끼양이 방귀가 아닌 노래나 춤이 되게 합시다

조르바는 부활 했도다

하느님도 신나게 놀고 죽이고 부당한 짓을 하고 사랑을 나누고 일을 하고 말도 안 되는 것들을 좋아합니다 나처럼요

하느님도 입맛 당기는 걸 먹고 끌리는 여자를 취해요

물찬 제비 같은 여자가 지나가는 걸 보면 당신 가슴도 뛸 겁니다

그런데 갑자기 땅이 갈라지고 이여자가 사라져 버립니다

어디로 갔을까요

누가 이여자를 데려 갔을까요

행실이 참한 여자라면 사람들이 하느님이 데려가셨다라고 할거고 행실이 걸레 같은 여자라면 사람들이 악마가 데려갔다고 할 겁니다

하지만 두목 몇 번이나 말했지만 다시 말하건대 하느님이나 악마는 하나고 똑같은 거예요

영혼이 육체이고 육체 또한 영혼이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조르바 우리는 구더기랍니다

엄청나게 큰 나무의 조그만 잎사귀에 붙은 아주 작은 구더기 지요

이 조그만 잎이 바로 지굽니다

다른 잎들은 밤이면 가슴 설레며 바라보는 별 들이고요

우리는 이 조그만 잎 위에서 우리의 길을 조심스럽게 시험해 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불멸에 대해 꺼지지 않는 갈망을 품는 것은 우리가 불멸의 존재여서가 아니라 살아있는 잠깐의 시간 동안 그 어떤 불멸의 존재를 섬겨서가 아닐까

부불리나가 살아 있을 동안 말입니다

그 어떤 카나바로도 나만큼 그 여자를 기쁘게 해준 사람은 없습니다

이 쪼그랑망태기 같은 조르바 만큼 말입니다

이유를 알고싶어요?

이 세상의 모든 카나바로는 그 여자에게 키스하면서도 자기 함대나 왕이나 크레타나 훈장이나 마누라나 이런 걸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런 걸 깡그리 잊어버립니다

그리고 이 할망구도 그걸 알고 있었어요

유식한 양반한테 하나 가르쳐 드리는 데 여자에게 그 이상의 기쁨은 없는 법입니다

진짜 여자는 잘 들으시오

도움이 될 테니까

진짜 여자는 남자에게서 기쁨을 받는 것보다 자기가 기쁨을 주고 있다는 데서 더 큰 기쁨을 느끼는 법이예요

아직 완전히 우주에서 분리되지 않은 그래서 왜곡하는 이성의 개입 없이 우주의 진리를 직접 느낄 수 있었던 지상 최초의 인간이 가졌던 그런 영혼이 깨어 나고 있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작고 초라한 자신의 삶 둘레에 난공불락이라고 믿는 방벽을 쌓아 올린다

그 안을 피난처로 삼아 삶의 미미한 질서와 안정을 부여하려 애쓴다

미미한 행복을 말이다

거기에서는 모든 것이 밟아 다져진 길들을 신성불가침의 반복적 일상을 따라야 하며 안전하고 단순한 규칙을 지켜야 한다

알 수 없는 것들의 무서운 침범을 막으려 요새처럼 방비한 그 테두리 안에서 자잘한 확신들이 지네처럼 꼬물꼬물 기어 다니며 누구의 도전도 받지 않는다

하지만 무시무시한 적이 딱 하나 있다

모두가 죽을 듯이 두려워하고 증오하는 그 적의 이름은 거대한 확신이다

지금 이 거대한 확신이 내 존재의 장벽을 뚫고 들어와 내 영혼을 덮치려 한 것이다

이 모든 메시지는 우리의 내적 불안에서 태어나 우리가 자는 동안 상징이라는 화려한 의상을 걸치고 나타난다

하지만 그 메세지를 만들어 내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내 생각 : 거대한 확신은 하느님 즉 종교를 말하는 것 같다)

당신은 버찌를 잔뜩 먹어 버찌를 정복했으니 나는 책으로 책을 정복할 참이예요

종이를 잔뜩 먹으면 언젠가는 구역질이 날 테지요

구역질이 나면 확 토해 버리고 영원히 손 끊는 거지요

우리만의 수도원을 지읍시다

신도 없고 악마도 없고 오직 자유로운 인간만 있는 수도원

아니요

당신은 자유롭지 않아요

당신이 묶인 줄은 다른 사람들이 묶인 줄보다 좀 길 거예요

그것 뿐이오 두목

당신은 긴 줄 끝에 매달려 있으니까 이리저리 다니고 그리고 그걸 자유라고 생각하겠지요

그러나 당신은 그 줄을 잘라 버리지 못해요

인간의 머리란 구멍가게 주인과 같은 거예요

계속 장부에 적으며 계산을 해요

머리란 아주 좀상스러운 소매상이지요.

가진 걸 몽땅 거는 일은 절대 없고 꼭 예비로 뭘 남겨 둬요

머리는 줄을 자르지 않아요

아니 아니지 오히려 더 단단히 매달려요

붙잡고 있던 줄을 놓치기라도 하면 머리라는 이 병신은 그만 허둥지둥 하다가 완전 끝장나 버려요.

그런데 사람이 줄을 끊어 버리지 않으면 산다는 게 무슨 맛이겠어요

구멍가게 주인인 이성이 영혼을 비웃고 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신을 통하여 구원을 받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신을 구원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니체와 맥을 같이하며 이 책의 많은 부분에서 니체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