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8. 19 : 나의 아내
8. 17일은 처가가 이사를 하는 날이다.
먼저 살았던 조흥 샛별아파트가 수명 다하자 주식회사 우방에서 재건축을 수주했다.
부도와 워크아웃의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다시 일어나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 재건축을 완수했다.
그동안 사업부제준비팀에서 내게 부여한 과제가 너무 많아 시간에 쫓기며 주말인 토요일과 일요일까지 몽땅 거기에 할당하다 보니 집안의 대소사를 챙기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장인 장모 모두 새로운 집에 흡족해 하시는 것 같았다.
그날 저녁 나는 거기서 자지 않고 바로 돌아오고 싶었다.
밀려있는 일들에 대한 걱정 때문이다.
하지만 아내가 처남의 댁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더 있고 싶어 하는 것 같아 하룻밤을 거기서 자기로 하였다.
하지만 처가에서 잠을 이루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침대가 아닌 방바닥에 얇은 요를 깔고 자니 바닥이 딱딱해 허리도 아프고 온 몸이 배겼다.
내 집도 아닌 남의 집 그것도 새 집 안방에서 이사 첫날밤을 잔다는 것 또한 심리적으로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다음날 마음이 조급하여 계속 아내를 깨웠지만 아내는 일어나려 하지 않았다.
아내가 늙으신 어머니를 도와 아침을 대신 준비해 주었으면 했지만 두 며느리들을 포함하여 어느 한 사람도 일어나 장모를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
미안한 마음에 장모님이 어렵게 차린 아침밥을 두 공기나 먹었다.
눈치 없는 아내는 그런 나를 이해해 주지 못하고 계속 뭉그적대고 있었다.
처남의 댁이 눈치를 채고 갈 것을 권하자 그제야 일어섰다.
이사 첫날인데 아무것도 준비해 가지 않았으므로 하다못해 돈 봉투라도 남겨야 하는데 그녀는 아무런 생각 없이 계속 모른 체를 한다.
짜증이 밀려왔다.
안방에 들어가 지갑을 털어 5만원을 꺼내주었다.
그렇게 처가를 나서 집으로 돌아왔다.
일이 너무 많이 밀려있으니 매사가 불안하다.
컴퓨터에 앞에 앉아 일을 하기 시작했다.
아침 열 시 반 즈음부터 시작했기에 오전 내 상당히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다.
아내는 휴일에 식사 준비하는 것을 매우 싫어했다.
점심도 고구마로 때우려 하였다.
나와 아이들은 고구마를 점심으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쥐어짜듯 억지로 점심을 얻어먹고 또 오후 일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사업부제 관련 승진제도까지 검토하고 나니 불안한 마음이 조금씩 유연해지기 시작했다.
YS이 방문 건을 놓고 아내와 말다툼이 있었다.
아내는 내가 그 모임을 처음부터 거절하며 잘라주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아내와 생각이 좀 다르다.
내가 조금 힘겹더라도 YS이의 마음을 이해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면에서 MH도 나와 생각을 같이 했다.
잠자리에 누웠는데 아내는 또 내게 상처를 주었다.
시트콤 여고시절을 보며 즐겁게 웃어대는 내게 수준 낮게 뭘 그런 걸 보면서 웃어 대냐며 비아냥거렸다.
나는 그녀가 남편인 나를 우습게 보고 있다는 생각에서 화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그녀는 이어서 다시
“하긴 오줌 안 싸는 것만 해도 다행이지”하면서 수치심까지 건드렸다.
분노가 거세게 밀려와 분출 직전인 상태에서 단단히 눌러 참았다.
덕분에 가슴이 답답하고 마음이 괴로워 잠이 오지 않았다.
그래도 아무 말 없이 잠을 자는 척했다.
요즘 아내가 조금씩 이상한 방향으로 바뀌어 가는 듯하다.
관계를 새로이 정립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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