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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의 역사(용욱이의 내면세계)/2002

20020824 OPC 설명회 출장

by 굼벵이(조용욱) 2021. 4.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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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8. 24 : OPC 설명회 출장

 

Outplacement 설명회와 관련하여 이틀간의 출장을 다녀왔다.

20일은 대전 OO지사에서 열렸고 21일은 OO지사에서 열렸다.

참석한 대부분의 직원들이 OPC 서비스의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문용어를 섞어 이야기하는 컨설턴트의 설명을 어려워했다.

컨설턴트의 설명이 있은 뒤 질의응답 시간에 내가 부연설명해 주면 직원들은 그때서야 무언가를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참으로 좋은 제도라며 참여할 의사를 밝혀왔다.

OO지사 AYK 과장은 잠시 비어있는 나의 스케줄을 채우기 위해 대청댐을 관광시켜 주었고 저녁에는 LIK부장과 LHJ 부장이 함께 한정식 집에서 저녁식사를 대접해 주었다.

이어서 카페에서 2차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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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에 나는 더 이상 폐를 끼치기가 무엇해서 일찌감치 호텔 문을 나서 기차역으로 향했다.

그런데 내가 탄 택시운전기사가 좀 이상해 보였다.

나를 속이려고 하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내가 OO행 열차를 타야 한다며 OOO역에 가자고 했을 때 그는 OO역으로 가야 OO행 열차를 탈 수 있다며 나를 OO역에 내려주었다.

그러나 막상 표를 사려 하니 매표원은 OO행 열차는 OOO역에서만 탈 수 있다고 했다.

부랴부랴 그곳을 나와 다시 택시를 타고 OOO역으로 향했지만 OOO역 매표원은 방금 열차가 출발했으며 다음 열차는 1120분이 되어야 온다고 했다.

허탈한 마음으로 다시 고속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고속버스는 마침 25분 후에 출발하는 10시 발 OO행 버스가 있었다.

복잡한 기차놀이에 허기진 배를 간단하게 우동으로 채웠다.

광주에는 1210분쯤 되어서야 도착하였다.

OO지사 SSY총무과장이 마중을 나와 점심식사를 하러 복어 요리집으로 나를 데려갔다.

소문난 복요리집인데 거긴 먼저 삶은 콩나물을 양념에 버무려 준다.

간단하지만 색다른 방식이고 그런대로 맛도 괜찮아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다.

식사 후 문을 나서려고 신발을 찾는데 내 구두가 온데간데없다.

누군가가 자기 구두 대신 내 구두를 신고 가버린 것이다.

그 구두는 얼마 전 백화점에서 새로 산 비싼 구두다.

결국 나는 누군가가 남긴 헌 구두 한 켤레를 신고 지사로 향했다.

BSC 지사장은 OPC에 대하여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설명회에 함께 참석하여 내게 질문까지 하는 열성을 보여주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OPC 제도에 대하여 반신반의하는 모습으로 왔다가 내 설명을 듣고 나서는 흡족한 표정으로 내게 고마움을 표시하며 언제부터 신청을 해야 되는지를 물어왔다.

S과장은 함께 저녁을 먹고 가야 한다며 완강하게 나를 붙잡았다.

나이가 50이 다 되었는데도 그의 눈빛은 참으로 순수하게 빛났다.

그의 눈이 보내는 순수한 마음을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우선 현대백화점에 가서 새 구두를 한 켤레 샀다.

그는 나중에 복요리집에서 환불받으면 된다며 내가 구두값을 지불하지 못하게 했다.

S과장은 참치횟집으로 나를 인도했고 CJW 총무부장과 건축과장 NMC 과장 인사담당이 자리를 함께 했다.

CJW 부장은 정년에 가까운 나이인데 오히려 총무과장보다 훨씬 젊어 보였다.

술과 참치로 저녁식사를 대신한 뒤 심야우등 버스에 올랐다.

저녁 105분에 출발한 버스는 두 시간여 만에 화장실이 급한 승객들을 위해 휴게소에 정차하고는 계속 달려 새벽 2시 즈음 동서울 터미널에 도착하였다.

그런데 택시를 타고 집에 도착해 보니 이상한 일이 벌어져 있었다.

결혼 후 내게 한번도 신발을 사준 적이 없는 아내가 회사로 찾아온 행상으로부터 구두를 한 켤레 사 가지고 온 것이다.

광주에서 구두를 잃어버려 새로 구두를 사 신고 왔는데 아내가 또 구두를 사가지고 온 것이다.

졸지에 새 구두가 하루에 두 켤레가 생긴 것이다.

인생살이가 우연인지 필연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하지만 특정한 날에 비슷한 유형의 사건들이 끊임없이 이어짐을 그냥 우연으로 돌리기엔 무언가 여운이 남는다.

그 안에서 종교가 태동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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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22) 아침부터 나는 머리가 터지는 줄 알았다.

LTK의 끈질긴 5-4 요구와 국회 답변자료, CTC, 파견자 문제, Y부장의 다양한 주문 등이 한꺼번에 밀려왔기 때문이다.

나는 견딜 수가 없어서 휴게실에 잠깐 나가 머리를 식혀야만 했다.

저녁에는 OOOO팀과 회식이 있었다.

OOOO팀은 술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만 모아놓은 듯하다.

Y팀장은 여기저기서 건네는 술잔을 홀짝홀짝 받아먹더니 많이 취해있었다.

회식이 끝나자 나는 Y팀장을 모시고 집으로 향했다.

그는 아무리 취해도 집 앞에서 술 한 잔 더하는 걸 무척 좋아한다.

그걸 소홀히 하면 점수가 깎인다.

승진을 눈앞에 둔 내 입장에선 어떻게든 그의 비위를 맞추지 않으면 안된다.

나도 많이 취해 힘들어하면서도 달리는 택시 안에서 그에게 집 앞에서 한잔 더하자고 했다.

그는 많이 취했으면서도 집 근처 술집 앞에 내려 진토닉 한 잔씩을 주문했다.

그러나 그는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하고 부대끼는 속을 움켜 안으며 자리를 뜨자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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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아침에 OIS 과장이 PNC 부장 부친상을 알려왔다.

파견직원이 사장에게 보낸 진정서에 대한 답신의 글을 써 먼저 전무님까지 보고한 뒤 비서실에 인계하고 OPC 신청 접수를 받는 공문을 하달하였다.

국회 산자위 보좌관 회의 자료를 작성해 처장님께 보고를 마친 뒤 기획처와 LSK 총무과장에게 이메일 송신하였다.

저녁 7시쯤에 Y팀장과 RHR부장을 모시고 P부장 상가로 향했다.

동부간선도로로 빠지는 길을 잘못 들어 결국 마포까지 강변북로를 달려야 했고 결국 서울 시내를 관통하며 2시간여 만에야 OO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2~30여년 만에 본 서울 시내 강북 길은 많이 변해 옛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웠고 교통이 너무 혼잡하고 운전자의 행태도 무척 위험하고 난폭하였다.

문상을 마친 뒤 R부장의 친구가 경영하는 매물도 활어횟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그 친구는 대학 동창인 여자친구라고 하는데 젊었을 때 한 미모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초면인 Y부장에게 유자 선물셋트를 안겨줄 정도로 적극적인 경영마인드를 가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