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8. 16 : 내친구 PMS과 LYS
테니스 하러 가자는 OIS 과장의 전화가 있었지만 전날 마신 술이 지나쳐 숙취 때문에 가지 못했다.
요즘은 주로 휴일에 출근해서 사업부제 관련 업무를 하다 보니 주말에도 쉴 여가가 없다.
아침부터 출근해 사업부제 관련 업무를 챙기는데 진도가 정말 더디다.
그런 속도 모르고 YSH 부장은 계속 자료를 독촉하고 있다.
내가 보기에 그 사람은 좀 이상한 사람이다.
지나치게 자기 우월주의에 빠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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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레 LYS가 온다고 해 MH와 통화를 했다.
MH가 MS이에게 전화해 약속장소를 정했는데 그녀석이 양재에서 만나자고 했던 모양이다.
전날 내가 MH랑 통화할 때에는 수서역 근처로 장소를 정했었는데 문석이가 양재로 바꾸었단다.
약속장소에 나갔더니 MH만 혼자 나와 있었다.
MS이란 녀석은 아예 핸드폰 전화기를 꺼놓은 상태였다.
YS이도 1시간 정도 연착할 것 같다고 해 둘이 근처 음식점에 가서 불낙을 안주 삼아 소주를 마셨다.
YS이가 도착하자 우리는 다시 동네 근처로 자리를 옮겼다.
가락동 금호아파트 인근에 있는 맥주집 인디안 존에서 맥주를 마셨다.
그 집은 맥주병으로 인테리어를 했는데 진열대는 물론 천장에 까지 온통 맥주병으로 가득 메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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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H가 많이 피곤해 하는 것 같다.
그 녀석도 전날 너무 많은 술을 마셔 아침 내내 숙취로 고생했단다.
맥주집에서 우리 집사람과 MH 와이프도 함께 불렀다.
당초 나의 생각은 YS이를 수서로 불러 우리 동네로 오게 한 후 집사람과 MH 와이프도 동반해 식사를 함께 할 계획이었다.
MS이란 녀석이 그런 나의 당초 계획을 무산시키며 엉뚱한 곳에 약속장소를 잡아놓고 정작 자기는 참석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MH도 그런 그의 행동을 괘씸하게 생각했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매사를 그런 식으로 살아온 녀석이라 이제는 미워할 가치조차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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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보면 남 쉬는 날 보고 싶다며 불쑥 서울로 찾아든 YS이가 더 문제인지도 모른다.
MH와 나는 그런 그녀를 이해하고 좀 힘들더라도 감내하며 자리를 함께 했는데 그 녀석은 그녀와 특별한 관계였음에도 끝까지 참석을 거부하며 냉철한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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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결국 새벽 두 시가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YS이도 그날 우리집에서 자는 수밖에 없었다.
MH와 MS이는 모두 내 고등학교 1학년 같은 반 친구다.
셋이 서로 한 교실의 앞, 뒤, 옆에 앉아 누구보다도 친하게 어울리며 지냈다.
세사람의 팔씨름 실력이 비슷해 서로 삼각관계로 이기고 지고 했다.
내가 MH를 이기는데 MH는 MS이를 이기고 MS이는 나를 이기는 그런 형국이어서 자주 팔씨름도 하며 재미있게 지냈다.
함께 의정부까지 영화도 보러 다녔다.
같은 영화라도 차비를 제하고도 남을 만큼 의정부와 서울 간 영화요금 차이가 많이 나기에 우리는 거기까지 가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자전거를 타고 문산까지 다녀오기도 하고 근육을 키운다며 덤벨 운동도 같이 했다.
내가 내 일생에 함박스테이크를 처음 먹은 것은 MS이를 따라 동대문시장에 가서였다.
당시 MS이 아버지는 동대문시장에서 트레이닝복을 만들어 도매하는 분이었다.
그 때 한참 전국적으로 트레이닝복이 유행이었고 덕분에 MS이네는 많은 돈을 벌어들였다고 한다.
아버지가 처음에는 이북에서 내려와 부산에서 엄마를 만났고 집도 절도 없이 서울 장위동 변두리에서 찰흙 집을 짓고 살았었단다.
그러다가 장위동 우리집 근처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왔고 더 많은 돈을 벌면서 고2 때인 1976년에는 여의도 고층아파트로 이사해 갔다.
아파트가 별로 없던 그 당시 여의도 아파트는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가장 고가의 주택이었다.
나는 거기 놀러 가서 MS이가 들려주는 LP판 팝송을 듣기도 했다.
MS이는 음악에 조예가 깊었다.
배터리를 넣어 사용하는 싸구려 야전(야외전축)을 들고 다니며 산이나 들에 나가 뜻도 모르는 팝송을 틀어놓고 논두렁 춤을 즐겼던 내게 그런 고급 전축에서 울려 퍼지는 환상적인 사운드는 그 녀석을 더욱 신비롭게 만들었었다.
그런데 그 집에 이사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MS이 누나가 거기서 투신자살을 했다.
그의 아파트는 9층에 위치했었는데 집 앞 복도 난간을 넘어 투신했다고 한다.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통 그 이유는 알 수가 없었다.
조용하면서도 우리를 매우 살갑게 맞이하고 같이 잘 놀아주었던 누나였기에 많이 안타까웠다.
그 누나는 직장에도 안 나가고 집에만 있었던 것으로 보아 돌이켜보건대 우울증 따위를 앓고 있었던 것 아닌가 싶다.
그런 측면에서 MS이에게도 평상인과 다른 편집적 생각 회로가 내재하고 있다는 생각을 불현듯 가지게 되었다.
내가 그런 생각을 더욱 굳히게 하는 사건이 그에게 계속 일어났다.
대학 시절 여름방학 때 나의 초대로 그는 시골 우리집에 방문했었다.
하지만 오자마자 잠깐 상황을 살펴보고는 그날로 다시 되돌아간 사건이 있었다.
그 때 마침 동네 집안 어르신 초상이 있었기에 나는 문상을 다녀와야 했었다.
또한 파리로 들끓는 시골 화장실도 문제였던 것 같다.
격의 없이 행동하는 동네 친구들도 문제가 아니었나 싶다.
이 모든 것들이 서울내기가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을지 모르겠지만 나이가 한 두 살도 아닌 놈이 이런 시골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 또한 비정상이다.
어쨌거나 친한 친구가 방문해 반가움에 한껏 부풀어 오른 내 가슴을 짓뭉개고 그는 홀연히 서울로 다시 올라갔었다.
나는 내가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혼자 토라져 다시 올라가는 그가 너무 섭섭하고 화가 나 버스정류장까지 동행해주지도 않았다.
그런 그가 서울 장위동 우리집에 올라와 매형회사에 다니고 있던 YS이를 처음 보는 순간 눈이 뒤집혀버렸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둘은 불꽃이 튈만큼 서로 좋아했었던 듯하다.
당시 YS이는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장위동 우리집에서 함께 기거하며 매형 회사에 나가고 있었다.
그랬던 MS이가 내게 실망을 주었던 사건은 내가 신입사원 시절에도 있었다.
내가 명동에서 근무하던 84년에 그가 갑자기 내 사무실을 찾아왔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바로 입사했지만 그는 아직 4학년 재학 중이었다.
어느 맥주집에서 그를 만났던 것 같다.
골뱅이 무침에 맥주를 한잔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불현듯 내게 돈을 빌려달라고 했다.
부산엘 내려가야 하는데 차비가 없다는 것이다.
나는 당시 5만원을 그에게 건넸다.
그 때 내 월급은 28만원 이었다.
이후 녀석은 나와 수년간 연락을 끊었다가 내가 결혼하고 큰애를 낳아 큰아이가 돌이 되었을 무렵에야 다시 나타났다.
당시 주식회사 OO에서 영업사원으로 근무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처럼 그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돌출행동으로 나를 여러번 실망시켰던 친구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제가 약속장소까지 잡아놓고는 나타나지도 않았으니 얼마나 실망스러웠겠는가!
그런 그를 못내 못잊어하는 YS이는 또 얼마나 바보같은 사람인가!
결국 그는 직장생활도 순탄하지 못했으며 처남과 사업을 한다고 했지만 순탄하지 않은 생활을 이어가다 이혼하고 부천에선가 방 하나 얻어 혼자 살며 매일 소주병과 씨름을 벌이고 있는 듯하다.
듣기로는 이를 고친다며 치과의사인 친구 NK네 병원에도 온 가족이 집단으로 들락거려놓고는 치료비를 지금까지 내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도 직장에 나가는 듯한데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알려주지 않았다.
그의 딸은 나랑 페이스북 친구다.
그녀의 주선으로 최근 매년 12월 크리스마스 무렵이면 MH랑 함께 만났었다.
그녀는 제 남자친구까지 함께 데려오고 아버지 친구들을 소집해 아버지를 위한 연회를 열어주었다.
요즘의 그는 나를 만날때마다 면목이 없다며 매우 미안해했다.
술값은 대개 나나 MH가 내었다.
얼마 전 식사 후 2차로 간 노래방에서 두꺼운 노래 선곡집을 MH 얼굴에 던지는 사고 후에 그나마 만남이 끊어졌다.
삶이 늘 그렇고 그런 자질구레한 일들로 서로 얽히고 섥히면서 이어진다.
뭐니뭐니 해도 내 주변에서 자주 만나며 얼굴 보는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일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
젊은 시절 능력을 넘어서서 일탈을 꿈꾸며 방황하지만 대차대조표를 계산해보면 한 우물을 파며 성실하게 살아간 사람들만이 늙어서 대체로 평온하게 완성된 삶을 살아간다.
그의 파란만장한 삶을 통해서도 농사를 짓는 사람이든 대기업 회장이든 공무원이든 매한가지로 성실성은 삶의 근본임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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