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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의 역사(용욱이의 내면세계)/2002

20020820 참을 수 없는 아내의 잠 고문

by 굼벵이(조용욱) 2021. 4.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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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8. 20() : 참을 수 없는 아내의 잠 고문

 

아침 출근부터 호떡집에 불난 듯 사무실 일이 바쁘고 어수선하다.

토요일을 쉬고 나니 토요일에 접수된 여러 가지 요구사항들이 누적된 탓일 것이다.

우선 국회 답변 자료부터 준비했다.

이어서 해외사업처와 파견 관련 협의가 있었는데 꽤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다.

부랴부랴 남은 일처리를 하고

OOO사 상무와 함께 아웃플레이스먼트 서비스 관련 사항을 설명해 주기 위해 중앙교육원으로 향했다.

매번 가던 길을 잘못 들어 한참을 돌아가야 했다.

나는 공간지각 능력이 많이 부족한 길치임에 틀림 없는 듯하다.

 

중앙교육원은 내가 그동안 요구해 왔던 사항들을 못 알아들었는지 전혀 서비스를 위한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사무실에 낯선 사람이 찾아와도 어느 누구 하나 아는 척 하는 사람이 없이 컴퓨터 화면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인터넷을 서핑하거나 딴 짓 하기에 바빠 있었다.

이런 모든 모습들이 회사를 망쳤고 결국 구조조정의 회오리에 휩싸이게 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올라와 울화가 치밀었고 참으로 한심했다.

빔프로젝터도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고 아무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채 모든 것이 엉망이었다.

이 설명회 업무도 당초 내가 지시했던 총무과장이 아니고 경리과장이 담당하고 있었다.

대충 일을 마치고 급하게 다시 사무실로 돌아왔다.

전무님 결재를 맡아 국회 답변자료를 기획처 국회담당에게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부지런히 자료를 작성하여 일을 마친 시각은 대략 7시가 넘어서였다.

오늘은 부서 회식 대신에 영화를 한편 보기로 하였으므로 미리 정해진 스케줄에 따라 영화관으로 향했다.

영화관람 전에 저녁식사를 먼저 했는데 나는 요즘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퓨젼 요리를 선택했다.

소시지에 두터운 햄 조각 그리고 스파게티와 볶음밥, 갈아 만든 감자튀김 류가 나왔다.

그런저런 내 취향에 맞았고 양도 많아 밥을 조금 남겼다.

영화 제목은 'Insomnia'였다.

알파치노 주연의 스릴러물인데 시종일관 끊임없이 흥미를 자아내는 좋은 작품이다.

메가박스 영화관 스케일도 남달라서 모처럼 만에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늘 무시당하는 남편.

아들 공부를 가르치는 것도 좋지만 하고많은 날 남편이 곤히 잠든 줄 알면서 자정이 넘어서까지 꼭 그시간에 아이들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아내가 정말 밉다.

그것도 내가 자는 방문을 활짝 열어놓은 채 말이다.

네 따위는 안중에 없다는 듯 나에 대한 스트레스를 내가 잠을 못 자게 고문하며 그런 방식으로 푸는 것 아닌가 모르겠다.

아내가 마음 상해할까 보아서 그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나는 또다시 잠자다 말고 잠에서 깨어 이를 갈며 마음속깊이 상처로 남겨놓아야 했다.

이럴 때마다 늘 비교되는 사람이 있다.

매형이 잠자는 것을 알면 큰누나는 혹 잠에서 깨일까 보아 언제나 살금살금 까치발로 걸어 다니며 아이들과 문단속을 했었다.

한 참 재잘거리며 놀 어린아이들이지만 그런 누나 덕에 집안은 쥐죽은 듯 조용했고 덕분에 매형은 달콤한 잠을 이룰 수 있었다.

큰누나 집에 동거하며 늘 그런 모습들을 보아왔던 내가 밤늦도록 악을 쓰는 아내의 괴성을 견디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아마 부처님이나 예수님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지 말아 달라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소귀에 경읽기다.

나는 자다 깨다를 수차례 반복하다가 일어나 신경질적으로 방문을 쾅 닫고 나서야 잠을 청할 수 있었다.

못된 경찰이나 검찰이 죄적을 캐묻기 위해 잠을 안재우며 고문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어도 아내가 남편이 잠을 못자도록 고문한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이 생활이 정말 지겹고 더이상 견디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