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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의 역사(용욱이의 내면세계)/2003

20030517 내 인생의 종착역

by 굼벵이(조용욱) 2022. 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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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5. 17()

아침 9:30분부터 윤리경영위원회가 개최된다.

따라서 토요일이지만 조금 일찍 출근하여 회의 준비를 했다.

예상한 대로 처장님이 일찍 출근하셔서 부사장님과 대화 중에 나온 이야기들을 중심으로 내게 이것저것 관련 사항을 물었다.

혹시나 위원회에서 발생할지 모르는 돌발질문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차라리 나에게 답변을 미루면 훨씬 더 정확히 설명하며 그들의 질문이 얼마나 무가치한지를 쉽게 증명해 보일 수 있을 텐데 그는 불완전하게 이해하고 있는 상태에서 자신이 직접 설명하려 한다.

그래서 결국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사항조차 수정하게 하는 일도 생겼다.

윤리경영위원회에 참석한 전무들도 사실 내용을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다.

전문적인 검토가 필요한 사항을 다수의 비전문가가 모여 회의로 결정하면 전문성이 사라지고 배가 산으로 간다.

그러니 내용도 제대로 모른 채 엉뚱한 질문들만 쏟아졌다.

대개 이러한 것들이 모여서 회사의 경영을 어렵게 한다.

전무 전결로 안을 확정해 주면 윤리경영위원회 의결을 거쳐 사장 결재를 받는 형식을 취하겠다는 Y부장의 의견을 받아들이며 위원회가 끝났다.

위원회 결의내용을 정리하여 먼저 전무님께 결재를 올렸더니 전무님이 엄청 화를 내셨다.

이 건과 관련하여 사장이 직접 전무님께 지시하셨기에 이를 다른 사람에게 맡길 경우 업무를 회피한다는 인상을 줄 우려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내가 다시 Y부장과 상의하여 그냥 우리 라인에서 직접 결재를 진행하기로 하고 서류를 다시 만들었다.

처장님이 전무님 방에 들어가더니 오랫동안 나오지 않아 실기하여 부사장님 결재를 놓치고 말았다.

결국 오후 4시쯤 되어서야 사장 결재를 위한 준비를 모두 마쳤다.

결재서류를 처장님께 인계하고 그동안 밀린 다른 일을 정리하는데 Y가 또 차를 태워달란다.

승진한 지금까지도 나를 자기 밑의 수하로 생각하는 듯해 기분 상한 얼굴로 마지 못해 승낙했다.

내가 기분 나빠 하는 모습을 아마 눈치챘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그도 더 이상 다른 사람들에 의존하지 말고 혼자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를 장미아파트 들어가는 도로와 잠실대교가 연결되는 지점에 내려주고 집으로 돌아와 테니스 복장으로 갈아입은 후 잠실테니스장으로 나갔다.

마침 C부장 내외가 운동을 준비하고 있었기에 뒤이어 도착한 O, K와 조를 이루어 3게임을 하고 생맥주 집에서 맥주 한 잔 씩 하고 들어왔다.

 

아내는 지난번 어린이날 이후 삐친 것이 풀어지지 않은 채 계속 부은 얼굴을 하고 있다.

말 한마디 없이 나를 대한다.

맥주를 가져다가 따라주기에 화해의 제스처로 생각해 밥상의 나물을 보며 무슨 나물이냐고 물었다.

그녀는 마지못해 모기만 한 소리로 모른다고 했다.

그리고는 말 한마디 없이 자기도 술 한 잔 따라서 마시더니 연속극을 보러 갔다.

갑자기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치미는 울화 속에서 나 스스로에 대한 반성을 해 보았다.

나는 천성적으로 사랑이 부족하다.

사랑을 주는 방법을 모른다.

오로지 자기만 아는 이기주의자로 비추어질 뿐이다.

가족에 대하여도 늘 무성의하다.

내겐 무엇보다도 아가페적 사랑이 필요하다.

나의 그런 단점을 보완해 줄 사람은 집사람 밖에 없다.

그런 그녀가 심통을 부리고 한 달이고 두 달이고 말없이 소 닭 보듯 나를 대하면 나는 무척 괴롭다.

그 괴로움은 종종 오기로 이어지며 분노로 쌓인다.

난 그녀를 사랑해야 한다.

내 인생의 궁극적 종착역은 이타적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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