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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의 역사(용욱이의 내면세계)/2003

20030615 고향여행 그리고 부모님 용돈

by 굼벵이(조용욱) 2022. 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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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6. 15()

아침 일찍 일어나 평택 고향에 내려갔다.

엊그제 지붕 배수구 때문에 어머니의 하소연도 있었고 마침 고향친구 규연이 할머님이 돌아가셨다는 통보도 있었기에 아침 일찍 길을 나선 것이다.

새벽 620분 쯤에 출발했는데 예상대로 길이 별로 막히지 않아 7시 반 경에 봄무들기 옆 백병원에 도착하였다.

아침부터 비가 오다 말다를 반복해 조금 불편했지만 그래서 그런지 나다니는 차가 적어 별 어려움 없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문상을 마치고 장의차량이 장지로 떠날 때까지 시골 친구들과 함께 담소를 나누다가 집으로 들어갔다.

시골 친구들간 사심 없이 이어지는 대화를 들으면 태고적 냄새가 난다.

아무리 자존심을 건드리는 이야기도 웃어넘긴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그렇다.

하지만 그 안에도 상처 속에서 아프게 우러나오는 자기애가 도사리고 있다.

공부를 못한 손문수에게 전문대학을 나온 이형구가 빈정거리며 공부를 못했던 어린시절을 재미 삼아 이야기했다.

바짝 독이 오른 손문수가

넌 전문대학 나온 주제에 니 아들한테 서울대학 나왔다고 속였다가 아들한테 뒈지게 터졌대매?

아들이 성용이는 서울대학을 안 나와도 국회의원에 출마하는데 왜 아부지는 서울대학을 나와서두 그런 것도 못 해본대유?’ 하고 묻는 바람에 개챙피를 당해놓고도 저지랄이여

하고 응수했다.

이 말을 듣고 형구가 잠시 주춤 했지만 둘 간의 공방은 계속 이어졌다.

누가 듣건 안 듣건 그들은 그들만의 세상 속에서 거리낌 없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었다.

러시아 여자 이야기를 비롯해서 끈적끈적한 언어들을 토해내는데 고향 사투리여서 더욱 정겹고 구수했다.

형구는 러시아 여자랑 춤을 추다가 자기 물건을 여자 거시기에 한번 맞추어 보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다리 사이즈가 맞지 않아 허공에다 대고 허리를 휘돌려 댔다는 이야기를 아주 능글맞게 엮어나갔다.

장의차를 보내고 시골집으로 들어갔다.

사다리를 놓고 옥상으로 올라가 어머니가 힘들어 하는 막힌 지붕 배수구를 뚫었다.

마침 형도 집에 와 있었다.

형은 자기 집이면서도 배수구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거실에서 빈둥거린다.

어머니에게 10만원을 드렸다.

아버지 돌아가신 후 10년 가까이 생활비로 매달 10만원씩 자동이체 해 드리고 있지만 이런저런 일들로 시골에 들를 때마다 용돈 하시라며 몇 푼씩 그렇게 어머니 손에 쥐어드린다.

나는 842월 입사 후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아버지에게 매달 용돈을 보내드렸었다.

당시 내 월급은 28만원 정도였는데 세금 제하면 24만원 정도가 가처분 소득이다.

그 중 5만원을 매월 꼬박꼬박 아버지께 보내다가 나중에 10만원으로 인상한 거다.

아버지 돌아가시고는 어머니 계좌로 자동이체를 옮겨 드렸다.

 

옆집 사시면서 우리 일을 적극적으로 도와주셨던 성철 할아버지가 식도암 진단을 받았단다.

마땅한 농토가 없어 우리 텃밭에 하우스를 설치해 농사도 짓고 큰매형이 시골에서 단추 가공공장을 운영할 때에는 그 일도 도맡아 하셨던 분이다.

'오늘 마침 시골에 내려와 계신데 내일이면 서울로 올라가시니 한번 뵙고 올라가는 것이 좋겠다'는 어머니 말씀을 듣고 봉투에 30000원을 넣어 할아버지를 찾아뵈었다.

사는 게 다 그런 모양이다.

고생고생하며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밖에 모르시던 전형적인 농사꾼에게도 운명처럼 죽음이 다가온 거다.

나는 그에게 아무런 할 말이 없었다.

그렇다고 빈말하기도 그렇고 해서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앉아 있다가

어서 회복하고 일어나셔야지요?”

라고 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할머니가 내게 술 한 병을 담아주셨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정성 가득한 술이다.

****************

 

엄마는 오늘 우리가 올 줄 아시고 미리 김치를 담가놓으셨다.

엊그제 배수구 때문에 전화로 내게 한바탕 하시고는 그래도 내려오면 주려고 김치를 담가놓으신 모양이다.

배추김치와 며느리 좋아하는 달랑무 김치, 마늘쫑 그리고 고추장까지 바리바리 싸 주셨다.

아내는 마침 김치가 떨어져 막 담그려던 찰나였다며 좋아했다.

좋아하는 아내의 모습을 보니 내 마음도 기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