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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의 역사(용욱이의 내면세계)/2003

20031016 일주일분 일기를 한방에

by 굼벵이(조용욱) 2022. 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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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10. 16()

오랫동안 일기를 쓰지 못했다.

그동안 밀린 일로 무척 바빴다.

더군다나 시차 적응에 애로가 있어 아침에 일찍 일어나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할 수 없었다.

우선 생각나는 것들 몇 가지를 적어본다.

 

10일은 구주전력 사람들과 저녁 회식이 있었다.

해마다 한 번씩 갖는 전력사 간 교류이다 보니 서로 존중하고 성심성의껏 돌볼 필요가 있다.

이번에는 우리가 그들을 접대하는 자리이고 우리 측 대표로 참석하다 보니 많은 술을 마셔야만 했다.

일본사람 중 젊은 두 사람은 해외 유학을 다녀왔기에 영어로 소통할 수 있어 나는 주로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이 원하는 페이스에 맞추다 보니 술을 너무 심하게 마셔 다음날 숙취로 고생을 많이 했다.

그날도 B는 그들을 접대하기 위하여 온 사람이라기보다는 마치 자기가 주빈인 것처럼 행동했다.

오만방자하게 행동하며 온갖 망신을 국제적으로 떤 듯하다.

일본사람에게는 잔이 넘치도록 이빠이 따라주고 자기는 병아리 오줌만큼만 받아먹는 다거나 한국말을 그들이 잘 알아듣지 못한다고 일본사람에게 경멸조의 말을 함부로 한다거나 온갖 남 부끄러운 추태를 부리더니 궁극에는 무대에 나가 혼자 마이크를 독점하며 노래를 부르겠다고 설쳐댔다.

정작 접대를 받는 일본사람들은 노래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뒷전으로 처져있자 K부처장이 내 앞으로 와서는 한심하다는 듯 쟤 왜 저러냐?” 한다.

화가 난 김처장은 그의 마이크를 빼앗아버렸다.

 

다음날인 11일은 출근하자마자 사무실 의자에 앉아 코를 골며 잠에 빠졌다.

온몸이 말이 아니다.

시차를 제대로 극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술을 너무 많이 마셔댔기 때문이다.

 

12일은 아버님 제사가 있어 시골을 다녀와야 했다.

그래도 운동으로 몸을 풀어야겠기에 아침에 일어나 잠실 테니스장에 나갔다.

사람들은 여전히 9시가 넘어서야 어슬렁어슬렁 나타났다.

나는 8시에 나가 티브이를 보며 한시간 가까이 함께 할 선수를 기다려야만 했다.

3게임 정도 한 뒤 집으로 돌아와 컴퓨터로 밀린 일을 조금 하고 오후 4시경에 시골집으로 향했다.

시차에 숙취 따위로 몸이 피곤하고 뒷머리가 많아 아팠다.

 

처장님은 신입사원 첫돌맞이 분임토의 행사를 내가 맡아서 해 주기를 바랐다.

유럽에서 돌아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그것부터 주문하셨다.

피곤한 몸으로 그걸 준비하느라 무척 바쁘다.

 

13일부터는 공정거래위원회 KHE사무관과 또다시 전쟁이 이어졌다.

K사무관이 요청한 자료는 우선 처장님 핑계를 대고 제출을 미루었다.

건강진단 결과를 보고 무척이나 실망스러웠다.

일단 재검사를 받을 때까지 술을 마시지 않기로 하였다.

최근 3년간의 간 수치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 표준치의 서너배를 초과하는 급커브를 그렸다.

특히 감마 지피티는 화면상으로 거의 J커브였다.

무언가 문제가 심각한 것 같아 우선 그 원인이 술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 알아보기 위하여 잠정기간 술을 마시지 않기로 하였다.

 

14일은 PDS과장과 저녁식사를 하기로 약속을 한 날이다.

조선에서 둘이 저녁을 같이했다.

왜 그가 내게 술대접을 하고 싶어 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승진과 관련해서 무언가 도움을 받고 싶은 마음에서 그런 듯하다.

나는 나의 건강에 대하여 설명하고 정중히 술을 거절하였다.

그리고 그와 사회현상을 포함하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주장하기 보다는 주로 나의 이야기를 듣는 자세를 견지하였다.

그것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도 주면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매우 좋은 대화기술 중 하나이다.

그는 마지막까지 나를 편하게 해 주기 위해 택시를 태워 보내려 하였으나 내가 극구 거절하자 함께 전철을 타고 가는 방식을 택했다.

 

15일은 처장님이 일본사람들을 보내고 경주 출장에서 돌아와 처음 출근하는 날이다.

먼저 감사자료를 처장님께 보고하고 S과장과 함께 공정거래위 KHE사무관에게 가서 파견자 임금 부당지원 관련 여부에 대하여 수감했다.

그 친구는 내게 전화를 걸어 왜 윗사람들에게 자꾸 이야기를 하느냐, 정 그러면 안 볼 것도 더 보겠다는 둥 협박을 서슴지 않았다.

나는 내가 윗 선에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

감사자료에 대해 계통을 따라 보고하는 과정에서 생긴 일이 아닐까 싶다고 사실대로 이야기했다.

우리가 기획한 것도 아니고 국가가 우리 의사에 반해 추진한 일이니만큼 상사들이 나름대로 신경을 많이 쓰고 있는 사안이고 그분들이 어찌어찌 아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그런 일이 생긴 듯하다고 답변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는 파견자 중 가장 저항이 심한 CSJ과장과 고등학교(군산제일고) 동기동창이었고 아마도 계속 그의 사주를 받아왔던 것 같은 느낌이다.

그의 말투는 파견자가 하는 말씨와 처음부터 똑같았고 마음 씀씀이나 언행이 공격적이고 매우 왜곡되어 있었다.

더군다나 범죄인을 취조하는 듯한 어투로 내게 온갖 거만을 부리며 조사를 시작했기 때문에 당연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괴롭힐 거리가 없자 그는 모자회사간 파견 발령한 발령지 사본 모두를 요구해 왔다.

그것은 조사를 이유로 나를 엿 먹이자는 수작임을 알고 있다.

수백 수천의 발령지를 가져다가 어디에다 쓸지 모르겠다.

아마도 청와대나 기타 권력기관의 압박으로 원칙에서 벗어난 인사를 조사하려는 모양인데 미안하지만 그런 인사는 단언컨대 찾기 쉬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 업무와 관계없는 사항들에 대한 조사에 대하여는 자연스럽게 빠져나갈 것이다.

 

16일은 OO실 L부처장이 내게 부탁한 사항을 처장님께 보고하였다.

감사가 이번에는 3직급을 시험으로 선발하자는 안을 L부처장에게 검토 지시했다는 것이다.

L부처장은 처음에는 그 안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지만 감사의 의지가 너무 강해 도저히 어쩔 수 없다며 자기 부서에서는 스스로 검토할 수 있는 능력이 안되니 내게 검토를 의뢰하였다.

나는 그 일을 KM과장에게 맡기었다.

하지만 그는 이번에도 예외없이 내게 실망을 안겨주었다.

무엇 하나 제대로 하는 일이 없다.

정말이지 한심할 정도의 엉터리 보고서를 만들어 왔기에 내가 밤 열시까지 야근하면서 다시 새로운 보고서를 만들어 아침에 처장님께 보고를 드린 후 L부처장에게 가져다주었다.

나중에 처장님이 그 사항을 전무님께도 보고를 드리라고 해 기다렸다가 전무님께 보고드린 후 파일을 YJ과장에게 건네주었다.

처장님은 마침 우리 사무실로 온 YJ과장에게 자기 일을 자기가 알아서 해야지 남한테 미루어서야 되겠는가 하고 호통을 치셨다.

오늘도 신입사원 행사계획을 손보느라 밤늦게까지 야근하고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