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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의 역사(용욱이의 내면세계)/2003

20031017 감성에 호소한 공정거래위원회 감사

by 굼벵이(조용욱) 2022. 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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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금요일)

KHE 사무관이 아침부터 또 나를 소환했다.

파견자 임금 관련해 모자회사 간 격차분에 대한 부당지원 사항을 확인서로 써달라고 했다.

나는 지난번에 제출한 경위서가 확인서와 동일한 내용이고 우리에게도 그와 같은 사항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음을 소명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하면서 그냥 그 경위서로 확인서에 가름하자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는 나를 죽이러 온 저승사자이기에 막무가내로 집요하게 요청하였다.

나는 일단 감성적으로 그를 설득하기로 했다.

파견자가 발생하게 된 배경부터 설명했다.

 

'파견자들은 발전회사로의 전적을 거부하며 끝까지 모회사로의 복귀를 투쟁하는 사람들로 사무직들이 주를 이룬다.

선의의 피해자들이다.

어쩌다 국가시책의 희생물이 되었다.

생겨서는 안 될 일이 생긴 거다.

큰 수레바퀴가 굴러가는데 어쩔 수 없이 그 수레바퀴에 깔릴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다.

정작 당신 보다 내 가슴이 더 아프고 쓰리다.

그런다고 내가 태풍 같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멈추게 할 순 없다.'

 

먼저 나를 박살내라는 주문의 배경에 누군가가 있을 것임을 암시하는 말부터 시작했다.

말 안해도 네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는 투의 이야기다.

실은 그가 누구라는 것을 이미 마음 속에 파악하고 있다. 

 

'내가 관리하는 파견자가 318명이다.

그런데 그들 중에는 청와대, 국회, 산자부, 기획예산처, 공정거래위원회, 감사원, 인권위원회, 법원, 노동부 어디고 줄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달리 해마다 감사다, 청원이다, 투서 사건이다, 조사다 해서 나를 괴롭히는 바람에 나는 하루 한 날 편할 날이 없었다는 진실을 털어놓았다.

우리회사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6개 자회사를 돌아가며 연차적으로 감사를 나왔다가도 수시로 나를 소환하여 괴롭히니 내가 감당하기가 너무 어렵다고 했다.

당초에 경영진에서는 내게 정리해고를 지시하였으나 직원들의 행복한 삶과 생존권에 관한 사항이므로 그와 같은 극단적인 방법으로 가서는 안 된다고 내가 경영진을 설득했다는 이야기도 했다.

나름대로 그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실무 책임자인 나는 정말 눈물 나는 노력을 해왔고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지금까지 파견 상태로 남아 있게 되었다.

그런 나를 그렇게 심하게 몰아붙이고 괴롭혀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가 잠시 움찔하며 조금은 동요하는 듯한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어쨌든 그도 감사자의 입장이어서 내게 빠른 시간 내에 확인서를 제출해 줄 것을 요청했다.

감사장에서 돌아와 나는 곧바로 확인서를 작성했다.

하지만 처장님이 마침 OS부장 상가에 갔다가 늦게 돌아오는 바람에 다음 주 월요일에 제출하기로 하였다.

저녁 6시에 KS부장과 MY부장, LW부장이 함께 모여 KS부장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대전 OS부장 상가에 다녀왔다.

대전에서 KY부장과 합류 해 K부장이 사는 저녁을 얻어먹었다.

계속 술에 대한 유혹이 있었지만 우선 살아야겠기에 술을 삼갔다.

문상하고 돌아오니 새벽 1시가 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