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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의 역사(용욱이의 내면세계)/2006

20060710 그 때 그시절, 화장실 변기통과 씨름하던 P국장

by 굼벵이(조용욱) 2023. 1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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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7.10(월)

P국장과 저녁식사를 같이 했다.

노사업무실장이 일부러 마련한 자리다.

Oakwood 호텔 3층에 있는 일식집에서 만났다.

식당 문을 들어서는데 종업원 예닐곱 명이 나란히 서서

“안녕하십니까?”를 합창하며 인사한다.

그런 환대에 나 같은 손님은 차라리 기가 죽는다.

1인분에 9 만원이나 하는 최고급 식당이다.

3인분을 시켜 셋이 소주를 들이키기 시작했다.

그 자리는 마치 나를 죽이기 위한 자리 같았다.

노사업무실장도 나를 공격하고 P도 나를 공격한다.

노사업무실장은 나를 공격하면 안 되는데 피아가 구분이 안 된다.

나는 양쪽에서 2:1 술잔 패스를 계속 받아가며 마셔야만 했다.

나는 일부러 이 회사의 주인은 사장이 아니라 노조라는 논리로 사장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노조가 제대로 주인행세를 해야 회사가 바로 선다는 논리다.

나야 이미 20년 넘게 직장 생활 했지만 새로 들어온 파릇파릇한 신입사원들은 앞으로 어떤 비전과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게 할 것이냐며 너스레를 떨었다.

노조가 두 눈 똑바로 뜨고 제대로 주인 행세하라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 회사는 심각한 어려움에 처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노사업무실장은 내 속도 모르고 오히려 나를 공격해온다.

사장이 이 회사 주인이 아니라는 내 말이 영 거슬렸던 모양이다.

내가 하는 말에는 나름의 목적을 담고 있다.

그걸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하면서 나랑 P국장 간에 나누는 대화에 계속 끼어들어 나에게 총구를 겨누고 있으니 부아가 끓어오른다.

나는 완강하게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오히려 P국장이 나서서 내 입장을 대변해 준다.

그런 사람이 노사업무실장이라고 앉아있으니 그것도 문제다.

앞으로는 노사업무실 빼고 교섭의 당사자인 나와 P국장 단둘이 맞붙어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겠다.

헤어져 나오는 길에 P국장이 나랑 단둘이 이야기하자며 실장을 따돌린다.

실장이 내게 법인카드를 준다.

P는 푸드코트에 가서 맥주 500CC 두 잔을 주문했다.

그가 담배를 피우고 싶어 해 지하까지 내려가 레종 담배 한 갑을 사가지고 왔다.

그는 맥주를 급하게 마셨다.

아마도 빨리 마시고 빨리 집에 들어가고 싶은 욕심에서 그러는 것 같다.

안주를 시키지 않았기에 내가 안주를 하나 시켰다.

생맥주집에서 안주없이 생맥주만 시키면 남는 게 별로 없어 주인이 싫어한다.

그는 안주를 먹지도 않았다.

맥주 한 컵을 부지런히 비우더니 나가자고 한다.

내가 계산을 했다.

술값으로 4만 3천원을 청구한다.

맥주 한 잔 마시는데 무슨 그리 큰 돈이 드나 영수증 살펴보고 따지려 했지만 내 카드도 아닌데다 P국장이 독촉하는 바람에 급하게 술집을 나왔다.

그런데 내가 술값을 계산하는 사이 P국장이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오줌도 마렵고 그가 혹 화장실에 있는지 확인도 할 겸해서 화장실에 갔다.

누군가 화장실 대변기에서 꺽꺽거리며 토하고 있었다.

혹 P국장이 아닌가 생각했는데 소변을 다 보고 뒤돌아서는데 내 생각대로 그가 화장실 문을 열고 나온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눈 밑에 눈물까지 흘리고 있다.

정말로 힘들게 토를 해댄 모양이다.

그의 고집스런 행태는 나를 마지막까지 힘들게 한다.

집에가는 택시도 결국 나 먼저 태운다.

에라 모르겠다 그가 태우는 차안 등받이에 철퍼덕 기댄채 집 앞으로 차를 몰게 했다.

실은 노사업무실장 지시로 KSA 과장에게서 그에게 줄 차비까지 받아왔었다.

 

집에 와 아이들에게 쓴 편지를 내어 놓았다.

절박한 감정으로 아이들에게 글을 썼는 데에도 아이들은 전혀 반응이 없다.

세상에 이런 철부지들이 없다.

어찌 보면 내가 죽어 없어져도 정신을 차리지 못할 녀석들이다.

오늘 편지의 주제는 선택과 집중이었다.

그런 주제로 이야기하면서 아이들의 태도 변화를 시도했지만 도대체 아무런 반응이 없다.

그 편지는 일부러 내가 얼마 못 살 것처럼 포장했다.

그런데도 녀석들은 그저 희희낙락이다.

내가 죽어도 웃을 녀석들이다.

모든걸 포기한 채 침대 위에 설치한 모기장 속으로 기어들어 잠을 청한다.

세상살이가 피곤하지만 아이들을 생각하면 머리카락이 곤두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