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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의 역사(용욱이의 내면세계)/2008

20080604 속으로 삭히는 정처장과의 불화

by 굼벵이(조용욱) 2024. 4.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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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6.4(수)

하고 싶은 말을 참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요즘 직급별 호칭 개선사항이 노사간 쟁점사항이므로 협상안을 만들어 현재 공석중인 관리본부장 직무대행 장명철 전무에게 내려갔다.

오랜만에 자신을 찾아준 나를 붙잡아 두고 오랫동안 붙잡아두고 이런 저런 말씀을 하시는데 주된 내용인 즉 경영진이 바뀔 때마다 공든 탑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탑을 쌓아야 하는 우리에게 주는 조언이다.

최선의 방어책은 최대의 공격이라는 바둑의 기본이론을 내게 제시하신다.

말씀 중에 변명이나 그와 다른 내 생각을 이야기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지만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소리를 참느라 애를 먹었다.

'공격앞으로' 하고 싶어도 장애물들이 너무 많고 벽이 높아 어찌 해볼 도리가 없다는 이야기를 하려다 말았다.

이야기를 하다보면 지나치게 독선이 강한 정처장에 대한 푸념으로 밖에 표현되지 않을 거란 생각 때문이다.

그동안 일을 하다가도 의기소침 해져서 늘 어깨를 늘어뜨리고 뒤로 물러서 일할 의욕을 상실했었다.

상사들이 모두 잘 난 사람들이어서 오로지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고 주장하니 나도 영 일할 의욕을 상실한다.

지난번에는 정처장이 말끝에 경영평가와 관련하여 나만 높은 보너스를 받았다며 다음 번에는 조정을 하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지금까지 정부 경영평가 담당자는 최우선으로 배려를 해 왔었다.

어느 처실장이든, 사업소장이든 경영평가 담당자는 평가결과를 통해 자신의 위신이나 명예를 드높여주는 평가담당자에게 높은 보너스를 유인책으로 보장해 왔었다.

지금까지 전임 인사처장들이 모두 내게 경영평가 태스크 포스 팀장을 맡겨놓고 본업 외에 부가적으로 이리저리 고생을 시키면서 평가 결과로 받은 보너스라도 다른 팀장보다 높은 등급을 부여했었다.

높아 보아야 몇 십 만원 더 높은 수준이다.

그런데 나만 매년 그렇게 높은 수준을 받는 것은 불합리하니 그걸 조정하겠단다.

말로는 그러시라고 답했지만 영 기분이 씁쓸하다.

돈 때문이 아니고 그가 내게 갖는 불신 때문에 기분 나쁜 것이다.

만일 내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걸 당연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지난 수개월 동안 내가 많이 받아왔다는 것을 캐내어 기억하고 있는 것도 기분 나쁘다.

내게 특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런 걸 다 기억할 이유가 없다.

다음번에도 정처장이 계속 인사처장 직위를 이어간다면 평가를 잘 받기 위해 노력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억지로 맡은 태스크포스 팀장이야 어쩔 수 없이 수행하지만 어차피 좋은 소리 못 듣고 좋은 대접 못 받을 바에야 설렁설렁 놀면서 이름만 내걸 생각이다.

그는 인사관리는 자신의 생각을 실현하는 것이 아니고 상대방의 생각을 실현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것이라는 기본 이념을 모르는 사람이다.

사람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 상처를 받는다.

장전무님에게 한전의 인사에 대한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면서 멋지게 한번 꿈을 펼쳐보고 싶다고 말할 마음이 생기지 않고 온갖 변명거리만 생각났던 것도 그런 사소한 것들이 쌓여있었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마음속으로는 정처장과 헤어질 날만 계산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어쨌든 내가 말을 참은 것은 장전무에게나 나에게나 결과적으로 좋은 일이었다.

장전무는 자신이 인사를 위해서 내게 멋진 조언을 했다는 마음에 뿌듯했을 것이고 나는 구차한 변명이나 늘어놓는 쪼잔한 인간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관계에서 때론 침묵이나 적극적 경청이 오히려 더 많은 도움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