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17~21
외교안보연구원에서 부산과 포항으로 산업시찰을 다녀왔다.
말이 산업시찰이지 마지막 졸업여행(senior trip)에 다름 아니다.
먼저 경남 창원을 들러 창원시청 사람들과 점심식사를 같이 했다.
창원은 정말 따뜻하고 아늑했다.
‘내 고향 남쪽나라’의 노래 가사가 바로 이곳을 배경으로 작사된 것이란다.
먼저 두산중공업에 들렀다.
젊은 여인이 안내를 맡았는데 두산 중공업은 모두가 세계 최고, 동양 최대 또는 국내 제일이란다.
내가 보기에는 공장이 그리 깨끗한 편이 아닌데 이 또한 가장 깨끗한 공장이란다.
어쨌거나 프라이드가 있어야 최고를 지향할 수 있다.
이어서 부산으로 달렸다.
마침 퇴근시간 러시아워에 걸려 조금 늦게 도착했다.
해운대구 부구청장이 우리를 영접했다.
싱싱한 횟거리를 안주 삼아 술 한 잔 거나하게 하고 한화리조트 숙소로 들었다.
그냥 잠자리에 들기도 무엇해 몇몇 사람들을 데리고 지하 1층 생맥주집에 가 치킨 안주에 생맥주 한 잔 더했다.
이어 스크린 골프를 하러 갔다.
우리 조에서는 김병부 국장이 일등을 해서 그가 게임 값을 내었다.
다른 조에서는 양진영 국장이 1등을 했다.
다음 날 오전에 한수원 고리원자력본부로 향했다.
나이가 지긋한 아줌마가 안내를 맡았는데 차분하고 조리있게 잘 해 대부분 만족해 했다.
점심식사는 복집에서 복국(blowfish soup)을 먹었다.
당초 횟집을 예약했었는데 계속 회를 먹게 되니 점심 메뉴는 바꾸는게 좋지 않겠느냐는 행정실 김영호사무관의 제언으로 내가 메뉴를 바꾸어달라고 본부 담당자에게 부탁했다.
점심식사 장소에 박규호 본부장이 총무과장과 미리 나와 있었다.
박본부장은 엄청나게 주도적인 성향을 가졌다.
차가 도착하자마자 일일이 사람들을 영접하고 점심식사장소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지루해 할 정도로 나서서 이야기를 주도했다.
그래도 난 그가 우리회사에서 가장 잘 나가는 최고 엘리트라며 주변사람들에게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해 주었다.
그는 바로 우리 전기인 외교안보연구원 글로벌리더십 2기 출신이다.
이어서 울산 반구대 암각화를 구경했다.
난생 처음 보는 암각화여서 내겐 경이롭고 특별한 경험이었다(worth seeing)
돌아가는 도중 버스가 갑자기 길에 서는 불상사가 있었다.
30여분 넘게 차 안과 밖에서 불안한 마음으로 대기했는데 기사가 정비기술자랑 전화통화를 하더니 작은 퓨즈 하나를 갈았다.
그러고 나니 언제 그랬냐는 듯 차가 움직였다.
저녁은 양동마을에서 먹었다.
양동마을은 안동 하회마을을 본뜬 것으로 유네스코 문화재로 지정되어있단다.
여기 저기 지나칠 정도로 개보수한 흔적이 보기 흉하게 남아있고 거기서 지금까지 생활하며 사는 사람도 몇 안 되는 것 같아 조금 더 신경을 써야 할 것 같다.
이어 포항으로 들어가 잠자리를 정하고 짐을 푼 후 술을 마시러 나갔다.
내가 또 촐랑대고 너무 많은 술을 마셨다.
폭탄 몇 잔 급하게 말아먹고는 곧바로 맛이 간 모양이다.
놀았던 기억은 있는데 어떻게 숙소로 들어왔는지 기억에 없다.
옷을 제대로 벗고 잔 것으로 보아서는 큰 실수는 없었던 듯하다.
그날 저녁 평상시 늘 조용하던 이해평 국장이 제대로 한판 노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술의 힘을 빌어 평상시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노는 그를 보면서 해병대가 우리나라 사회에 정말 기여를 많이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해병대 출신이다.
그들에게 강한 훈련을 시키면서 강한 정신을 불어넣어 준 것 같다.
다음날 아침식사는 곰치탕을 먹었다.
식사 후 포스코에 들러 쇠 철판이 만들어지는 모습을 견학을 하고 서울로 향했다.
대전에 사는 이해평 국장과 유병덕 국장 두 분을 내려주러 잠깐 고속도로에서 나와 대전을 들른 사이 차가 또 멈춰 섰다.
운전기사는 그 버스가 새로 뽑은 지 20일 밖에 안 된 차라고 했다.
어쨌거나 차는 계속 두 번이나 가다가 길에서 멈춰 섰다.
방재청 전영옥 국장은 이런 경우를 이렇게 설명했다.
새 차는 쇳조각 따위의 이물질이 부품 안에 남아있을 수 있어 장거리 고속주행을 한 번 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금감원의 정갑재 국장은 본인은 우스개 소리 삼아 이야기를 하는 듯한데 그게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가 많다.
이번 자동차 고장에 대해서도 지나치리만치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이야기를 했다.
내게도 자존감을 상하게 하는 행태를 보여 내가 너무 심한 이야기라고 지적한 적도 있다.
어디가나 말과 행동을 돌아보고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혼자 살면 몰라도 같이 사는 사회 안에선 자기보다는 타인을 존중해야 한다.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어쨌거나 서울에는 저녁 6시 반경에 도착했다.
차신희 국장이 준비한 단감과 부산 본부장의 미역, 다시마, 김 선물세트 등이 혼자 들고 가기에는 너무 부담이 되어 집사람에게 차를 가져오라고 전화를 했다.
나는 덕분에 어려움 없이 집에 올 수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걸 들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가느라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다.
다음날 아침에는 테니스를 하러 잠실 코트로 갔다.
거기서 정하황 처장을 만났다.
정처장과 박부사장이 있는 자리에서 내 신분전환 이야기를 했다.
내 이야기를 듣고 박부사장이 흥분해서는 자신이 다음 주에 이전무를 만나니 그 때 이야기를 하겠다고 한다.
정처장도 ‘알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의 ‘알았어!’는 남다른 의미가 있다.
난 그들의 도움을 기대하고 있다.
내 스스로 풀기에는 남들에게 비열하게 비추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직접 나서지 못한다.
이번 주말에 다시 한번 재확인 해봐야 할 것 같다.
어쨌거나 그날은 박부사장의 권유로 술을 많이 마셨다.
노무처 허봉일이 대리기사를 불러주었다.
다음날도 테니스를 하러갔다.
월요일 아침 출근 길에 이번 여행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박 본부장에게 편지를 썼다.
박규호 본부장님께
본부장님 정말 고맙습니다.
부산에 가면서 사실 연락을 드릴까말까 고민을 많이 했었습니다.
본부장님 성격으로 보아 연락을 안 드렸다가는 나중에 된통 혼날 것 같기도 하고 연락을 드리자니 가뜩이나 어려운 사업소 실정에 공연스레 부담만 드릴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어쨌거나 폐를 너무 많이 끼쳐 죄송합니다.
외교안보연구원에서 선배님이 쌓아놓으신 업적이 너무 빛나기에 제가 설 자리가 없더군요.
그래도 굼벵이 구르는 재주라도 찾아 선배님 명성을 뒤쫓으려 애를 썼습니다.
선배님이 코치해 주신대로 발표든/ 봉사든/ 보고서 작성이든 적극적으로 나서서 열심히 했고 특히 회사에 대해 잘못 각인된 이미지를 바꾸어주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덕분에 많은 국장님들을 Anti 에서 Pro 한전인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생 동안 가질 수 없는 교육기회를 가진 저로서는 금년 한 해가 너무 아까웠어요.
그래서 입교할 때 세 가지 목표를 설정했답니다.
하나는 이번 기회에 두 번째 책을 출간해 보자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골프실력을 키우자는 것이었으며
세 번째는 영어실력을 제대로 갖춰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첫 번째 목표는 그럭저럭 달성을 했답니다.
2008년도에 ‘영혼까지 일터에 묻게 하라’를 출간한 이후 리더십에 관심을 가지고 심리학적 기반의 이론들을 정립하여 이번에 두 번째 책 ‘진화의 끝에 선 마지막 리더’를 출간할 예정입니다.
외교안보연구원장에게 추천사를 써달라고 했는데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두 번째 목표는 70% 수준 정도 달성했습니다.
조금 모자라지만 남들과 어울려 스크린골프장에 갈 수 있는 수준까지는 올랐습니다.
세 번째 목표는 50% 수준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유로운 프리토킹을 기대했습니다만 그러기에는 나이를 너무 많이 먹었고 집중해 전념할 수 있는 시간 확보가 어려웠습니다.
때로는 다른 목표들과 경합되어 시간이 많이 희생되기도 했구요.
마지막 남은 기간은 영어공부를 좀 신경 써볼까 하는데 어차피 회사로 돌아가 계속 해야 할 과제로 남겨야 할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이 자리를 빌어 선배님께 정말 고맙다는 인사를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조용욱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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