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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모임,취미생활/조행기

[스크랩] Promise is a promise! (굼벵이의 대전권역 번출기)

by 굼벵이(조용욱) 2006. 7.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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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서울에서 가졌던 입견지에서 대전 견지모임 이야기가 나왔다. 그날 입견지는 15명이 넘는 대 성황을 이루었는데 일 순배 쯤 돌고 얼굴에 취기가 올라올 즈음하여 자연스럽게 주말 견지모임 이야기가 나왔다. 3일 연휴도 있고 하니 15일 출발해서 1박 2일로 하는 방안이 제기됐고 사이버준님의 대전 아파트가 현재 비어있으므로 거기를 거처로 내어주겠다고 해 여러 사람이 동참의사를 밝혔다.

그런데 막상 약속된 날자가 다가오는데도 누구 하나 나서서 모임을 주선하는 사람이 없어 엊그제 회원자격을 얻은 내가 어찌된 일인지 알아볼 겸 여울과 견지에 글을 올린 게 발단이 돼서 이번 대전권 번출이 이루어졌다.

우리의 번출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구체적인 견지터 상보를 안내해 주신 양반 권영대 선배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보조댐을 둘러보시고 일부러 지수리 까지 다녀오셔서 현지 상황을 상세하게 안내해 주셔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모집과정에 학생회원이 같이 가기를 간절히 원했지만 사고의 위험도 있고 주로 어른들이 모이는 장소여서 정중히 거절했다. 나도 철모르는 고삼짜리 아들이 있는 입장에서 부모와 동행하는 경우도 아닌데 미성년자를 그런 자리에 함께 데리고 가기에는 부담이 너무 컸기 때문이니 많이 상심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거시기님은 댁에서 곧바로 출발하셨고 벽오동님과 하늘구름님은 나와 함께 우리 집에서 만나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대전으로 향했다. 연휴의 시작이어서 15일 도로는 조금 막히는 편이었지만 10시 조금 넘어 출발했는데 오후 한시 반경에 대전에 도착했다.

대전 톨게이트에는 최프로님이 우리의 길안내를 위하여 일부러 나와 주셨다. 모두들 보통 정성이 아니다. 아무리 삭막한 인터넷 세상이라지만 시골 사랑방에서 농익어가는 막걸리마냥 걸쭉한 인정미가 마음 깊이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최프로님의 안내를 받아 거처문제(아파트 키 수령)를 해결한 후 보조댐으로 향했다. 보조댐은 모든 수문을 개방하여 물이 불어나 우리가 들어설 곳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도를 해 보았지만 도저히 낚시를 드리울 수가 없었다. 거기다가 보우트 타는 사람들의 시끄러운 소음과 물살로 더 이상 머무를 수가 없었다. 거시기님이 다른 포인트를 찾아가자며 일어섰고 우리는 모두 따라 나섰지만 평상시 눈불개 밭이라던 장소는 물이 넘쳐 도저히 낚시를 드리울 형편이 못되었다. 어디에고 우리가 들어설만한 곳은 없었다.

보조댐으로 흘러드는 도랑 저만치 눈불개가 유유자적하자 그걸 잡는다며 하늘구름과 벽오동이 씨름을 벌이는 사이 나는 다리 밑에서 피라미라도 건질 요량으로 낚싯줄을 드리웠지만 물 흐름이 전혀 없다보니 바늘을 흘릴 수 없다. 장마 속에 쏟아진 햇살은 우리를 땀범벅이 되도록 만들었다.

저녁에 대전 식구들도 온다는데 매운탕을 제대로 끓이려면 피라미 몇 수라도 해야 했으므로 우리는 발길을 돌려 보조댐 아래로 흘러드는 작은 개천에 가기로 했다. 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이어서 비교적 물도 깨끗했다.

낚시를 드리우자 곧바로 갈견이가 올랐다. 이어서 한 마리 더 올렸는데 내 밑에서 낚시를 드리운 하늘구름과 벽오동 덕인지 이후에는 아예 입질이 없다. 하지만 벽오동과 하늘구름이 잡아 올린 피라미가 30수 가까이 되어 매운탕 거리로 삼을 만 했다. 벌써 날이 어둑해 와 시간을 보니 저녁 8시다.

둔산동 아파트에 도착해 매운탕을 끓이는데 대전 식구가 많이 올 것을 예상해 냄비에 물을 너무 많이 부었더니 피라미가 동동동 헤엄을 치는 수준이다. 마눌이 정성스레 준비해 준 매운탕 양념과 라면을 넣고 함께 삶아 내었다. 매운탕 맛이 영 불안했지만 남자가 하는 음식솜씨가 다 그런 것 아니냐며 소주잔과 더불어 허기진 배를 채우기 시작했다.

속속 대전 식구들이 들어서시는데 최프로님이 한 손에는 음료수를 들고 다른 한 손은 귀여운 아들 손을 잡은 채 들어섰다. 조나단님과 덕이님이 시원한 수박을 한 통씩 들고 들어섰고 양반 선배님은 중국 명주를, 개털선배님은 와인을 한 병 들고 오셔서 축복의 장을 만들었다.

사실 낯모르는 사람들이 처음 만나 무슨 할말이 그리 많겠는가! 그런데 견지인이 모이는 자리에는 견지 이야기가 밤을 새워도 모자란다. 군대이야기 보다도 길어지는 것 같다. 나는 사실 엊그제 회원가입 한데다가 견지에 대해 전혀 아는 바도 없으므로 귀동냥만 하는 입장이지만 그런 이야기들 속에서 다양한 삶을 만나 즐겁다. 새벽 두 시 반경에 술잔을 내려놓고 간단하게 샤워를 한 후 각자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부지런한 하늘구름의 기상나팔을 시발로 대충 짐을 정리한 후 제 2 라운드 견지 여정에 올랐다. 서울에는 폭우가 내려 난리가 난 모양이지만 대전은 아직 구름만 있을 뿐이다. 보조댐 상황은 어제와 같이 오늘 아침도 엉망이다. 그냥 서울로 올라가려니 어제 저녁에 나눈 이야기가 생각난다.

덕이님 왈 대전 사람들은 견지 가는 것을 무슨 산보 나가듯 한다고 했다. 조나단님은 한 술 더 떠 직장, 집, 차 안에 늘 덕이를 상비하고 있다가 길가다가도 가끔 물에 들어선다고 했다. 그런데 서울에서 직장생활 하는 우리는 벼르고 별러서야 마련하는 자리니만큼 보조댐 상황이 어렵다고 그냥 돌아설 수 없는 것 아닌가! 어제 양반 선배님 제안도 있고 해서 우리는 지수리로 발길을 돌렸다.

지수리에 도착하니 9시 가까이 되었다. 몇 사람이 먼저 와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서울과는 영 딴판으로 비는 오지 않고 구름은 있으되 해가 오락가락하는 것이 오히려 견지하기에는 딱 좋다. 아침으로 라면이라도 끓여먹고 입수하자는 제안에 하늘구름이 고개를 젓는다. 한마디로 밥보다는 견지가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벽오동은 어제의 과음으로 오로지 잠이 필요한 것 같았다.

하늘구름과 둘이 나란히 서서 낚싯줄을 흘렸다. 넣자마다 끄리 새끼가 올라온다. 이어서 피라미 갈견이 따위가 올라오는데 수를 헤아릴 수 없다. 피라미에 지친 하늘구름이 큰 놈을 한번 건져볼 요량으로 자리를 옮기며 시도를 해 보았지만 큰 놈들은 영리해 장마철 큰물에 대피하고 있는지 영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작으나마 끄리가 걸려들면서 손맛의 무게를 더했다. 아홉시에 입수해서 그렇게 피라미를 잡으며 오후 3시까지 무려 6시간을 아침, 점심 모두 굶은 채 그러고 있었던 것이다.

시간이 지나매 따라 여울물이 점점 불어오는 느낌을 받았다. 강물은 갑자기 불어난다는 이야기가 생각 나 우선 차부터 빼는 게 좋겠다 싶어 차를 강둑으로 올려놓고 매운탕 거리를 다듬었다. 거의 마무리가 되는 시점에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얼른 차에 올라 그 때부터 마치 영화의 한 장면과 같은 치고 빠지기 식 탈출이 시작되었다.

비가 억수같이 몰아치고 있었으므로 잘못하면 고속도로 진입을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부지런히 차를 몰았다. 워낙 심한 폭우이다 보니 벌써 도로 곳곳에 물이 차 있다. 옥천 IC에 올라 우선 마눌에게 전화를 걸어 저녁 7시경이면 도착될 것 같으니 매운탕 끓일 준비를 해 달라고 했다.

폭우도 쏟아지고 길도 막히고 했지만 7시 10분경에 서울에 도착해 짐을 정리한 후 하늘구름, 벽오동과 함께 우리 집에 들어가 저녁을 같이 먹었다. 따끈한 매운탕에 시원한 맥주 한잔 마시니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온다. 그 사람들 저녁 먹고 가다가 졸지는 않았는지 걱정이 되었지만 워낙 심한 피로감으로 깊은 잠에 빠져버렸다.

비 오는 이틀 동안 다른 이들은 무엇을 하며 어떻게 지냈는지 모르지만 나는 견지를 즐기면서 정말 행복한 연휴를 보낸 것 같다.

아직 난 대물을 향한 커다란 욕심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비록 피라미를 낚아도 산과 강과 더불어 한데 어우러져 한 시름 흘려보내는 그 순간이 정말 좋다. 회사에서 내가 해결해야할 골치 아픈 과제들을 흘려보낸 자리가 시퍼렇다. 모든 견지인의 가슴에 담긴 힘들고 아픈 마음을 쓸어내리느라 그렇게 강물은 시퍼렇게 멍이 들었나 보다.

출처 : 여울과 견지
글쓴이 : 굼벵이(조용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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