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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인생은 선택이다(굼벵이 단양번출기)

by 굼벵이(조용욱) 2006. 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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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9.2(토)

 

제드가 주최한 번출이 있는 날이다. 오선배님이 오전에 다른 약속이 있으니 오후에 함께 가자고 해 오전에는 잠실 테니스장으로 나갔다.

그동안 매주 토요일마다 출조가 있었고 따라서 테니스 회원들과 얼굴 보는 날이 뜸해 질 수밖에 없게 되자 혹자는 골프로 종목을 바꾸었느냐며 내 신상의 변화에 관심을 표명했다.

나이가 들면서 무릎이 시큰거려 테니스도 조심스럽게 쳐야 하므로 간단하게 4게임만 즐긴 후 동료들과 늘 찾는 ‘고향식당’에 가서 시원한 맥주 한 병을 마신 후 열무보리밥을 먹었다. 테니스 후의 시원한 맥주 한 잔은 낚시인이 멍짜를 걸었을 때의 짜릿함만큼이나 기분 좋게 한다.

오후 2시 반에 출발하려던 것이 여러 사정으로 늦어져 3시 20분이 되어서야 오선배님이 모는 차를 타고 단양으로 향했다.

오선배님은 낚시를 할 때보다 떠날 때가 늘 더욱 즐겁다고 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미지의 것에 대한 경이감, 기대감이 마음을 설레게 하고 즐거움을 주는 모양이다. 막상 결과는 힘들고 괴로웠지만 나도 늘 여행을 떠나는 길에서 야릇한 즐거움을 맛보곤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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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막히는 바람에 도착이 조금 늦어져 7시가 넘어서야 늪실 여울에 들어설 수 있었다. 동천님과 식충식물님이 우리를 반갑게 맞으며 소주 한 잔에 산초기름에 구은 두부를 권한다.

세상 태어나 처음 맛보는 산초기름이어서 익숙하지 않았지만 동천님이 귀히 여겨 특별히 준비한 것이어서 맛있게 먹은 후 덕이와 묵이를 챙겨들고 물에 들어섰다.

돌돌이가 곧바로 소식을 보낸다. 날이 어두워 덕이 똥꼬가 잘 보이지 않는다. 하나 둘 물에서 나가고 있다.

그런데 덜커덕 무언가 큰 놈이 걸려들었다. 두어번 감아올렸다. 이어서 휘리릭 하고 끌고 가서는 콱 박혀 작은 움직임만 있을 뿐 도망가지도 끌려오지도 않았다. 낚싯대는 설장 일보직전까지 휘어져 있다. 멀리서 오선배님이 빨리 나오라고 성화다. 놈과 1분 정도는 실랑이를 했을까 ‘탁!’하는 느낌과 함께 맥없는 풀어짐이 멍과 나의 조우를 다음 기회로 미루어 놓고 말았다. 날만 조금 밝았어도, 오선배님 성화만 없었어도 그 자리에서 다시 흘려보고 싶었는데 정말 아쉽게 낚시를 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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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은 진수성찬을 차렸다. 제드는 두부찌게를 준비해 왔고 동천님은 소문난 묵은지에 삼겹살 수육을 가져왔는데 맛에 대한 설명이 어렵다. 가져간 두꺼비 20마리가 순식간에 아작 나고 대구에서 가져온 십팔년(?) 시바스도 나뒹굴 정도였다는 것으로 대신한다. 내가 보기에는 모든 견지인의 마음과 마음이 통해 십시일반 각자가 준비해온 것을 나누는 과정에서 만들어낸 아름다운 조화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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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지인이 술 마시며 나누는 이야기는 대개 두 가지 부류다. 낚싯대 만드는 방법에 대한 토론이 그 하나이고 나머지는 나 같은 초보나 고기 잡는 재미로 견지를 즐기는 부류다.

무슨 전문 용어를 섞어가며 열 띈 토론을 주고받는데 나는 도대체가 관심이 없으니 꾸벅꾸벅 따라주는 술이나 받아먹는다.

하늘구름이 술이 약해 먼저 스르르 무너졌고 나는 까무러칠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나는 점잖게 술을 배워 더 이상 술을 못 마실 정도에 이르면 대체로 그 자리에서 스르르 잠이 든다.(이후 기억을 잃는 게 대부분임)

제드는 하늘구름 뿐만 아니고 내가 편히 잠들 수 있도록 챙겨주었다.  술이 많이 취했을 텐데도 제드는 우리의 편안한 잠자리를 마련해 주는 예쁜 마음을 가지고 있다. 견지를 사랑하는 모든 이가 서로를 배려하는 이런 사랑스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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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새벽 5시 30분에 어제의 도깨비가 나를 부르는 것 같아 다시 여울에 들었다.

돌돌이가 올라오더니 이어서 힘 좀 쓰는 큰 놈이 걸려들었다. 40은 넘어 보인다. 힘들게 끌어올려 얼굴을 보니 40에 못 미치는 것이 눈탱이에 바늘을 맞고 용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돌돌이와 끄리 몇 수를 하고 나서 아점을 먹은 후 가대여울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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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가운 햇살이 머리를 내리 꽂는 가운데 수장대를 꽂고 줄을 흘린다. 나는 거기서 꽝조사의 새로운 기록을 추가한다. 견지에 꽝은 없다는 오 선배님의 이야기가 진실이 아님을 알게 된 하루다.

작열하는 태양과 아름다운 여울의 노래를 뒤로하며 서울로 향한 시간이 2시 반쯤 된 것 같다. 테니스에, 술에, 늪실 여울 강한 물발에 지친 몸을 주체하지 못해 대 선배님이 모는 차 안에서 염치없이 코를 골며 잠에 빠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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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선택이다. 그래서 어떤 이는 행복한 이기주의자가 되라고 말한다. 얄미울 정도로 행복하고 즐거운 일만 선택하는 그런 이기주의자 말이다. 인간의 감정은 선택에 따라 달라진다. 화를 선택하면 온 몸이 독으로 가득 차고 즐거움을 선택하면 온 몸이 행복으로 가득 찬다. 이것이야말로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진리다. 견지를 떠날 때의 마음처럼 행복을 선택하는 일이 우리에게 환상처럼 아름다운 인생을 선사해 준다.




카메라가 술이 취했습니다. 

출처 : 여울과 견지
글쓴이 : 굼벵이(조용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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