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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모임,취미생활/조행기

[스크랩] 견지학당 졸업기(굼벵이의 색다른 이야기)

by 굼벵이(조용욱) 2006. 9.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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낼 모레면 나이가 50이 되는데도 여행 전야는 꼭 밤잠을 설친다. 한두 번 나간 것도 아닌데 출조를 나갈 때 마다 꼭 그렇게 잠을 설치는 이유는 ‘희망이’ 때문인 게 분명하다.


이번에는 혼자 다니는 견지여행을 연습하기로 하고 9월 9일 새벽 5시 반에 일어나 집사람이 깨지 않도록 조심조심 준비물을 챙겼다. 냉장고에서 캔 맥주 4개와 소주 3병 그리고 매운탕거리를 아이스 팩에 넣고 냄비까지 챙긴 후 집을 나섰다. 우선 견지낚시의 메카라고 불리는 광미낚시를 들러보기로 했다.


어제 그렇게 도상훈련을 했건만 못 말리는 길치를 또다시 확인이라도 하는 듯 헤매기 시작한다. 광미낚시에 갈 때 까지는 한 번 밖에 길을 잘못 들지 않았는데 덕이와 묵이를 사가지고 6번 국도를 탈거라며 출발한 길이 춘천으로 향하는 46번 국도를 달리고 있다. 한참을 가다가 아니다 싶어 아침이나 먹고 가자며 돌솥 설렁탕 집 앞에 차를 세웠다.


한 켠에서 연인들끼리 키득거리며 오순도순 즐거운 아침을 먹는데 길 잃고 여행길 허기를 메운다고 한 쪽 구석에서 혼자 먹는 아침은 허전하기만 하다. 화장실 앞에서 순서를 기다리던 내 또래 중늙은이에게 길을 물으니 그냥 되돌아가다 보면 양평 가는 길 이정표가 나온단다. 그래서 결국 출발한지 세 시간이 지난 9시가 다 되어서야 목적지 왕박골에 도착할 수 있었다.


비가 흩뿌리는 우중충한 날이어서 그런지 아직 견지를 즐기는 사람이 없다. 이번에는 그님을 한번 만나볼 거라며 지난번 대적비를 낚았던 자리에 입수하여 줄을 흘린다. 피라미 한 마리 올라오지 않는다. 잠시 후 수원민박 사장님이 우루루 한 떼의 여행객을 몰고 내 옆자리에 들어선다. 계속 줄을 흘려보지만 피라미 한 마리 소식이 없다. 견지의 정석대로 과감하게 자리를 옮겼다.


피라미와 돌고기가 가끔씩 물어준다. 젊은 친구가 내 낚싯줄 앞에다 계속 루어낚시를 던지기에 한마디 했다. 우리는 살면서 자신의 이로움이 남의 해로움과 마주하는 순간을 경험하는데 이럴 땐 win-win 의 길을 찾는 게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누군가가 수장대를 끌며 내 옆에 들어서 같이 하잔다. 함께 줄을 흘리며 어떻게 오셨는가 물으니 견지학당에 입학했다고 한다.


이번에는 제대로 매운탕을 끓여먹을 거라며 내가 잡은 20여수의 파라미와 그 분(나중에 명함교환 결과 존함이 이종근님으로 밝혀짐)이 잡은 피라미 10여수를 합하니 매운탕거리로 충분하다.


매운탕이 끓는 동안 허기를 달래며 우선 맥주 한 캔씩 나누었다. 웨이더를 입지 않고 입수한 이종근님은 입술에 파랗게 한기가 돌고 있다. 매운탕이 끓자 이슬이를 꺼내들었다. 학당 모임시간이 다가오므로 지체할 시간이 없어 둘이서 순식간에 이슬이 셋을 눕혀버렸다.


여울과 견지 가입 이후 낯선 사람과의 조우에 많이 익숙해진 나이기에 견지학당도 낯설지 않은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학장님 이하 모든 관계자분들이 우선 생김새부터 정말 후덕하고 여유 있어 보여 친근감이 묻어났다. 가족단위로 온 식구들의 화기애애하고 단란한 표정은 정말 부러움을 자아낸다. 나는 그동안 우리 집사람과 아이들에게 무엇을 주었는가를 생각하니 미안한 생각에 마음 한 구석이 아프다. 그런 면에서 늘그막에 시작한 견지가 나에게 정말 많은 변화를 가져오게 한다.


청우공방 염광호 사장님의 지도를 받으며 견지 채를 만드는데 급하게 마신 이슬이가 자꾸만 방해를 해 결국 카본 살 두개를 부러뜨렸다. 그래도 원래 어릴 때부터 손재주가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나이기에 예쁜 자작 견지대를 한 개 만들 수 있었다. 무언가를 내 손으로 직접 만들어 사용한다는 것은 좋고 나쁨을 떠나 그 자체만으로 즐거움을 준다.


이하상 박사 대타로 대한민국 견지사를 강의하신 (이름을 까먹었음) 나의 갑장 선생님은 멋진 마스크에 걸맞게 인품도 후덕하고 낚싯줄을 매는 방법부터 낙싯대를 관리하는 방법까지 다양하게 대단한 실력을 가지고 계셨다. 내가 다가서기에 한 가지 흠(?)이라면 술을 즐기지 않는 거였다.


이어서 학장님이 견지 실무에 관한 강의를 해 주셨는데 김진성 학장님은 함께 한 경험이 없어도 강렬하게 친근감이 가는 그런 분이다. 그분을 처음 본 순간 어느 연 에선가 나랑 무척이나 가까웠었던 것 같은 강한 데자부를 느꼈다. 그동안 무대뽀로 다녀본 견지경험과 협회 홈페이지에 실린 글을 틈틈이 읽은 덕에 강의가 쉽게 이해되었다.


이어진 가든파티는 수원민박 사장님이 구워주시는 돌판구이 삽겹살에 소주가 곁들였다. 그런 걸 유난히 즐기는 걸 보면 나도 영락없는 촌놈이다.


파티가 끝나고 모두들 잠자리에 들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학장님과 내가 한 방에서 잠을 잤다. 나는 술 마시고 피곤하면 심하게 코를 골기에 매우 조심스러워 발 끝 한쪽 구석에 처박혀 코를 벽 쪽에 대고 잠을 자는데 갑자기 탱크 지나가는 소리가 났다. 아니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였는지도 모른다.


이종근님은 하늘이 무너져라 탱크 지나가는 소리를 내며 편안한 잠을 즐기고 있었다. 아마도 그 방에 계신 모든 분들이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느라 긴장에 긴장을 거듭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나는 도저히 잠을 청할 수 없어 밖으로 나왔다.


새벽 3시 50분,

달이 청명하게 하늘 중앙에 떠있다. 차를 끌고 물가로 내려갔다. 내가 만든 자작 견지대를 가지고 더듬더듬 덕이 똥고를 찾아 바늘에 꿰맨다. 그게 똥꼬인지 주둥인지 잘 알 수가 없다. 그렇게 20여분을 흘렸는데 도대체가 줄도 안 보이고 대물이 올라올 기색이 안 보인다.


물소리가 갑자기 무서움을 자극하며 박지연의 ‘물’을 떠올린다. 그 강물 속에서 엄청난 괴물이 나타나 내 다리를 물고 들어갈 것 같기도 하고, 가끔씩 이상한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는데 점점 가슴을 압박하는 느낌이다. 얼른 채비를 접고 차에 올라 제자리로 돌아왔다.


잠시 눈을 붙인 후 다시 처녀가 엉덩이를 까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는 왕박골 앞으로 차를 몰았다. 무언가 대물을 잡을 것 같았는데 시간이 너무 없어 허탕치고 아침 식사를 한 후 본격적인 실습에 들어갔다. 나는 학장님과 한 조가 되어 노일리를 찾았다. 이하상 박사 사이트에서 자주 거론되었던 곳이어서 꼭 한번 찾아보고 싶었는데 자연스럽게 좋은 기회를 맞게 되었다.


학장님은 정말 견지계의 프로 거성답게 연신 피라미를 걸어내신다. 나도 가끔씩 피라미가 올라오다가 돌돌이도 따라 붙었다. 결국 적비 한 마리 돌돌이 한 마리 그리고 피라미 10여수 정도가 오늘의 조과다. 학장님이 잡은 적비와 피라미들까지 몽땅 내 살림망에 넣어 가지고 수원민박으로 돌아왔다.


마침 어머님 뵈러 내 고향 평택을 다녀와야 하기에 가는 길에 물고기를 유별나게 좋아하시는 작은아버님 내외분을 생각해 물고기 배를 따고 아이스박스에 넣었다. 수원민박 사장님이 얼음 통을 주셔서 오랜 시간의 여행에도 상하지 않은 물고기를 가져올 수 있었다. (이 자리를 빌어 사장님께 정말 감사)


작은 어머님은 물고기요리의 대가이시다. 그분이 만드신 물고기 조림을 가운데 두고 온 식구가 얼마나 맛있는 저녁식사를 했는지 모른다. 요리는 어종보다는 실력임을 증명하는 순간이었다.


삶은 끝없는 만남으로 이어진다. 어제와 전혀 다른 새로운 오늘과의 만남, 지하철 안에서 유난히 화사한 웃음을 보내는 젊은 여인과의 만남, 나를 사랑해 주는 직장 선후배들과의 만남, 견지학당 선생님들과 입교생들과의 만남........끝없이 이어지는 만남이 있다. 그


런 삶 속에서 내가 꼭 만나고 싶은 님이 있다. 그님은 멋진 자태를 살포시 감추고 나와의 만남을 위해 수줍은 듯 몸단장을 하고 있다. 그님은 나를 만난다는 희망에, 나는 그님을 만난다는 희망에 삶에 여유를 가지고 즐기며 매번 여울을 찾는다.

 

이종근 님이 피라미를 손질하고 있지요


냄비에 담을 준비가 다 되어가는구요


자 이제 매운탕 냄비에 물고기를 넣을 차례입니다. 다음부터는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화제의 왕박골입니다. 정망 예쁜 엉덩이죠?


여명에 출조를 나갑니다. 제 차가 보이죠?


왕박골의 아침입니다. 너무 예뻤습니다. 카메라가 별로 안좋아서 그렇지....



출처 : 여울과 견지
글쓴이 : 굼벵이(조용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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