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쓰다 남은 덕이랑 묵이가 너무 많아 버릴 수가 없었기에 다음주를 기약하고 그냥 가져와 냉방이 안 되는 아파트 베란다에 내어 놓았다. 혹시 얼어 죽지는 않았는지, 모두 파리가 되지는 않았는지 술이 만취가 되어 들어온 날에도 슬쩍 베란다에 나가서 덕이의 꿈틀거림을 확인하고야 잠을 청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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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16일) 새벽 4시에 잠에서 깨었는데 더 이상 잠이 올 것 같지 않아 간단히 샤워를 마친 후 주섬주섬 바지장화와 낚시가방, 구명조끼를 챙겨 자동차에 싣고 목계교를 향해 시동을 걸었다.
흐린 아침 길에 간간히 눈비가 추적추적 자동차 앞 유리에 부딪는다. 수차례 다녀온 길이어서 남 같으면 눈 감고도 갈 수 있으련만 워낙 길치인 나이기에 행여나 다른 고속도로로 진입할까 싶어 조심스레 내비게이션 안내에 온 신경을 곤두세운다.
아침 식사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하기엔 여주 휴게소가 가장 적당하다. 김치 꼬치우동으로 아침을 때우고 산뜻하게 커피 한잔을 마신다. 신선하게 갓 내린 커피를 단돈 천원으로 마실 수 있어 난 휴게소 커피를 좋아한다.
중간 중간 아침 안개가 온 시야를 가려 저속으로 달렸다. 안개가 끼거나 흐린 날이 오히려 누치의 입질이 많았던 것 같아 은근히 기대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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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섬 여울에 도착하니 고요 속에 여명이 여울을 휘감고 있다. 수장대를 들고 포인트를 찍었는데 나와 보니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아 조금 더 내려가 다시 박았다. 처음 수장대를 잘 박아야 나중에 온 사람들이 함께 할 수 있기에 좀더 강심으로 들어가서 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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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쯤 흘러서 묵직한 입질이 왔다. 앙탈이 심한 녀석들이라 바늘털이를 당하지 않고 녀석을 끌어내려면 온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내가 녀석을 끌어내는 모습을 옆에서 누가 보았다면 온갖 똥 폼을 다 잡는다고 웃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폼 잡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고 최선을 다해 신중하게 녀석과 줄다리기를 하고 있을 뿐이다.
놈은 물 밖으로 얼굴을 내미는 순간 심한 앙탈을 부린다. 이 때 조심하지 않으면 영락없이 바늘을 털리거나 줄을 끊긴다. 그렇게 몇 차례 앙탈이 이어지는데 마지막 손에 잡는 순간까지 긴장을 풀어서는 안 된다. 손으로 잡았다가 그대로 털린 경우도 몇 차례 되기 때문이다.
녀석은 하얗게 질려 몸을 파르르 떨며 내 손에 안겼고 줄자를 들이대자 지친 듯 늘어져 숨을 할딱거린다. 또 60에서 1센티 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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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두새벽에 집을 나선 탓에 아침 11시 밖에 안 되었는데 그렇게 힘들게 두 마리를 걸어내니 배가 촐촐하다. 낚싯대를 수장대에 걸고 나와 얼른 라면을 끓인다. 오늘은 누가 같이 올 걸 대비해 김치와 계란까지 가지고 왔는데 아무도 없어 혼자 라면에 계란 두개를 넣고 김치도 함께 넣어 김치라면을 그럴듯하게 삶았다.
차가운 뱃속에 뜨거운 라면이 들어가니 속이 풀리는 기분이다. 지난주에 먹다 남은 더덕주를 꺼내 한잔 가득 따라 놓고 홀짝 홀짝 마시면서 라면을 먹는다. 라면과 함께 먹는 김치 맛을 보니 올해 김장은 제대로 담근 것 같다. 역시 우리 어머니 김치가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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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을 먹으면서 걸어둔 견지대를 연신 돌아본다. 식사가 채 끝나기도 전에 걸어둔 견지대가 휘청거린다. 이럴 때 놀라서 다급하게 뛰어가면 안 된다. 집어 된 고기가 도망갈뿐더러 잘못하면 물메기를 잡게 되기 때문이다. 조용 조용 들어가 이 녀석과 실랑이 하는 새에 먹다 남은 라면이 조금 식었다. 식사나 마치고 얼굴을 보여줄 것이지 방정맞게 식사 중에 나를 찾은 녀석도 대멍에서 1센티 부족한 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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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식사 전에 세 마리를 잡고 나서 잠시 쉰 후 다시 막 입수했는데 개울견지님이 나타났다.
둘이 함께 줄을 흘렸는데 이후 둘이 각각 한 마리밖에 낚지 못했다. 오후 늦은 시간에 윤근짱님도 나타나 한 수를 걸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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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망을 추스르기 위해 수장대 앞으로 가다가 움푹 파인 곳에서 미끄러져 중심을 잃고 허우적거리다 얼른 수장대를 잡았다. 수장대를 꼬옥 움켜쥐고 잠시 물에 떠있는 동안 .개울견지님이 옆에서 내가 떠내려가지 않도록 붙잡아 주었다. 잠시 후 발이 바닥에 닿아 황천길을 모면했다. 그래서 수장대와 개울견지는 내 생명의 은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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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넘어가면 심한 추위가 올 것 같아 얼른 줄을 거두었다. 개울견지님이 집에서 고구마를 가져와 모닥불에 구웠다. 쪼그리고 앉아 새카만 고구마를 까먹다보니 옛날 어릴 적 생각이 새록새록 올라온다. 손이 숯검정으로 새카맣다. 보이지는 않지만 아마 입가에도 숯검정을 예쁘게 바르고 있었을 것이다. 정말 마음이 푸근하고 즐겁다.
윤근짱은 온 김에 아예 야간견지를 시도하겠다면서 우동을 끓여 햇반을 말아 후루룩거리며 정말 입 맛나게 먹었다. 내가 보기에는 물고기도 좋지만 이 추위에 혼자서 야간견지를 한다는 것은 정상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는 견지에 미쳐도 단단히 미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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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차를 몰아 서울로 오는 길은 정말 노곤했다. 추위에 떨다가 차 안의 훈기에 풀어진 몸은 점점점 늘어지더니 급기야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용인 휴게소에서 잠시 잠을 청하자며 허벅지를 꼬집고 두드려댔지만 어느새 2차선을 가던 내 차가 슬금슬금 차선을 밟더니 1차선으로 기어들어갔고 이에 놀란 1차선 차량이 빵빵거리는 소리를 듣고 화들짝 놀라서는 얼른 제자리로 돌아와 미안하다고 깜빡이를 켜주었다. 길이 막혔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여기서 또 한번 갈 뻔했다. 내가 아무리 보고 싶다고 하느님을 찾아도 하느님은 아직 내가 보고 싶지 않으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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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치를 매개로 두 번의 황천길을 경험했다.
우리는 종종 착각하며 세상을 산다. 내가 누치를 잡는 게 아니고 누치가 나를 잡는 거다. 내가 죽는 게 아니고 하느님이 나를 보고 싶어서 데려가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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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지는 혼자 가는 것 보다는 여럿이 함께 가는 게 바람직하다. 그래야 기쁨이 배가되고 서로 도우며 봉변을 면할 수 있다.
견지도 좋지만 필수장비는 꼭 챙겨야 한다. 자신이 의지할 수 있을 정도로 반드시 수장대를 안전하게 깊숙이 박아야 한다.
아울러 구명조끼는 제대로 입어야 한다. 불편해도 구명조끼에 달린 두개의 줄은 반드시 바지가랑이에 채워야 한다. 물에 빠지면 수압에 구명조끼가 훌러덩 위로 벗겨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일단 물에 빠지면 당황해서 허우적거리지 말고 차분하게 온 몸에 힘을 뺀 채 물의 흐름에 맡겨야 한다. 그러면 자연스레 구명조끼의 부력에 의해 상체가 물에 떠 안전하게 물가로 나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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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 또 안전!
하나님이 아무리 보고 싶다고 발버둥쳐도 하나님이 보기 싫으면 절대로 안 데려갑니다.
안전에 유의하세요!
내 생명의 은인인 개울견지님 정말 고맙습니다! 언제든 내가 빚을 갚도록 하겠습니다.
이놈이 나를 잡기 위해 계속 나를 부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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