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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모임,취미생활/일기

갈라파고스의 도마뱀

by 굼벵이(조용욱) 2012. 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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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 뒤편 유리창 너머로는 봉은사 부처님이 정면으로 나를 응시하고 계시다.

그 너머로 서울 타워가 부처님과 나를 함께 응원하고 있다.

누군가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맷집이 상당히 좋으시네요.”

세상에 때려서 멍들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자존심이 누구 못지않게 강했던 나였다.

그걸 다루는 하나님 솜씨는 정말 정교하고 치밀하다.

얻어맞은 상처들이 뼈 속으로 파고들며 엄청난 아픔이 밀려오지만

겉으로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입가에 미소를 머금는다.

자존심이 사라져야 편안한 죽음을 맞을 수 있다.

상갓집 개도 꼬리치며 살아간다.

갈라파고스의 도마뱀은 울긋불긋 정말 화려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놈이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이슬만 먹고 사는 줄 안다.

고고한 듯 바위 꼭대기에 홀로 앉아 주위를 내려다보는 도마뱀의 눈가가 촉촉하다.

타는 정열로 나는 내가 아니었다.

나는 세상 그 자체였다.

그런 나를 미친놈이라며 비웃던 사람이 있었다.

나는 오히려 그를 미친놈이라고 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내가 미친놈이었다.

나는 나일뿐이다.

공자는 말년을 방랑과 좌절로 끝맺는다.

그의 사상은 2500년을 넘어서며 아직도 동양사회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어떻게든 세상과 타협해보려고 각종 의식을 만들어 냈지만

그것들은 고스란히 왕과 그 주변 권력의 울타리를 높이는 역할만 했을 뿐이다.

나는 세상이 보는 나일뿐이다.

갈라파고스의 도마뱀은 늦은 밤 깊은 숨을 몰아쉬며 하늘의 별을 센다.

별이 반짝이는 것은 신의 뜻이다.

나는 오늘 밤 깊은 잠을 자야 한다.

나의 길을 간절히 구하오니 바른 길로 인도하소서.....

나는 지금 어디를 방황하고 있을까?

그렇게 한밤을 보낸 도마뱀은 어스름 새벽에 잠깐 잠이 들었다가 아침 햇살에 화들짝 깨어난다.

정신이 몽롱하다.

그렇지만 내가 몽롱한 상태라는 걸 아무도 모른다.

오늘도 풀잎에 맺힌 이슬에 하나 가득 아침햇살이 영롱하다.

도마뱀은 어제처럼 그 바위 위에 앉아있다.

그의 눈가에 이슬인지 모를 물방울이 주르르 흘러내린다.

울긋불긋 화려한 그의 자태에 세상은 온갖 찬사를 보낸다.

도마뱀은 그것이 찬사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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