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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는 강자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보는 사람이 많다.
사실 역사도 승자의 역사이지 올바르거나 정의로운 사람들의 역사는 아닌 것 같다.
그런 면으로 보면 강자의 이익이 정의라는 명제가 더욱 설득력이 있다.
더군다나 부정축재의 예를 보면 올바르지 못함이 올바름보다 더 이익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올바르게 사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더 이익이라고 플라톤은 역설한다.
부정한 짓은 육체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영혼에는 불이익이 되기 때문이란다.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영혼의 세계에서 이익 불이익을 논한들 별 의미가 없다면서
차라리 올바른 척 살아가는 게 더 낫다는 사람도 있다.
올바르게 보일 때 얻는 이익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진실로 올바르게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뭘까?
플라톤은 국가론적 입장에서 이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는 것 같다(? 나도 확신이 안감)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일)이 있다.
국가 구성원 모두가 자신의 소명을 다하면서 살아가려면 각자가 올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국가 구성원 중 누군가가 올바르지 못하게 살아가면
다른 사람의 소명을 다하는 삶에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국가는 모든 국민이 올바르게 살아가도록 법이나 제도를 통해 규제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바르지 못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자신의 눈 앞에 보이는 당장의 이익이 앞서기 때문 아닐까?
예나 지금이나 올바르게 살아가기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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