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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지혜를 찾아서/인문학 산책

라이너 마리아 릴케 : 말테의 수기

by 굼벵이(조용욱) 2012. 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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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트르에 이어)

사물의 우연성에서 본질적인 면을 발견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예술가란 사물의 우연성에서 본질적인 면을 발견하고 이를 형상화 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대상을 해석하지 않고 무아 상태에서 관조하며 본질을 발견한다.

현대인은 기성품과 같은 삶을 살아간다.

인습과 문화로 길들여진 페르조나의 세계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삶이란 고독하게 지속적으로 죽어가는 과정이다.

고독이란 자기완성에 이르는 길이며 창조적 행위이고 예술의 절대조건이다.

고독한 예술가는 세상과는 다른 방식 즉 스스로에게만 의미 있는 삶을 고집한다.

여러 욕망으로 가득한 세상으로부터 자유로운 침잠상태에 머문다.

갈등과 투쟁의 혼잡한 상태에서 자신의 내면세계만을 추구하는 삶을 산다.

세간의 명성이란 성장해 가는 인간을 파멸시키는 행위이다.

비난과 무시는 자아를 강화시키지만 명성은 고독의 단절을 통해 파멸로 이끌기 때문이다.

대중은 예술가를 인정함으로써 자신도 같은 수준에 올라서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서 세상 사람들은 당신을 마치 자기들 편인 것처럼 대한다.

그러나 우리에 갇힌 맹수는 이미 맹수가 아니다.

베토벤의 음악세계는 신의 음악세계이다.

왜냐하면 신은 그에게 귀머거리라는 축복을 주었기 때문이다.

세상의 다른 잡소리를 듣지 못하는 축복으로 오로지 자신의 내면세계에만 귀 기울이고 몰입함으로써 자연의 음악, 신의 음악을 만들었다.

고독은 자기예술 발전의 전제조건이다.

공동사회 속의 삶은 자아실현에 방해가 될 뿐이다.

삶의 근원은 끊임없는 변화도모(탈피과정)이다.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며 소유하지 않는 삶 즉 상대방을 대상화 하지 않고 사랑하는 마음 그 자체를 존중하는 것이 참다운 사랑이다.

사랑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은 이미 거짓을 내포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언어는 개인의 고유한 체험의 특수성을 담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랑과 같은 내적이고 은밀한 체험은 언어를 벗어나 있다.

따라서 사랑고백은 함부로 할 일이 아니다.

언어화 한다는 것은 이성의 법칙 안으로 끌어들이는 행위이다.

따라서 언어화 하는 순간 본질이 오염된다.

사랑의 대상은 매우 허약한 기반을 가지고 있다.

과거 결혼은 경제적 사회적 인습에 따라 했지만 현대의 결혼은 그 나약한 사랑에 주로 기초하다보니 이혼율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사랑의 대상보다는 사랑하는 마음 자체에 중점을 두어야 되는데 연약한 대상에 중점을 두는 사랑이다 보니 금방 무너지고 오래 가지 못하는 것이다.

사랑의 대상보다는 사랑하는 마음 자체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구체적인 대상 즉 목표의 성취는 가치추구를 끝내는 행위이다.

따라서 과정 자체가 본질이자 목표가 되어야 한다.

 

삶이란 오직 한사람에게만 의미가 있으며 특별한 것으로 가득 차 있고 그것은 표현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부모가 사랑이란 이름으로 간섭하며 자립적 발전을 제약한다.

어른들의 사랑, 공동체의 사랑은 그들의 삶의 방식을 소년에게 요구하고 소년은 타인의 삶을 살아가게 되면서 정체성 혼란을 겪는다.

참된 정체성은 자연 그 자체이고 끊임없는 변화와 생성의 과정, 찾고 발견되어져야 하는 것이지 실존적 대상이 아니다.

타인으로부터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사랑받고 있다는 것은 구속받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에 대한 기나긴 사랑 그 목적 없는 작업,

신은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방향일 뿐이다.

그래서 도달 할 수 없고 오로지 지향만을 허락한다.

참된 실존은 특정한 목적을 추구하지 않는다.

신이란 지속적으로 생성되고 성장하는 존재이고 우리의 삶이란 그 신을 창조해 내는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