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하룻밤이지 20여일 만에 읽은 한국사였다.
소시적에 한국사 공부를 게을리 한 데에다 이런 저런 일들이 유난히 많이 겹친 한 달이어서
책 읽을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아 읽는데 시일이 꽤나 걸렸다.
그저 아침에 잠깐 몇 페이지 보고 출근하는 정도였지만
읽으면서 새록새록 과거사의 아픔을 되새길 수가 있었다.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함축되어 있지만 한국사의 핵심은
나의 조상 조광조의 사례에서 보편적 진리를 얻을 수 있었다.
왕(CEO)은 자신의 안위를 위해 항상 견제세력을 유지한다.
공신들로 구성된 훈구세력이 지나치게 확장되자
중종은 사림세력으로 하여금 견제할 필요가 있었다.
성리학적 철인정치 구현을 목표로 조광조가 전면에 나서
유토피아를 건설하려 했지만 역사는 늘 최선을 허락하지 않았다.
때론 최악을 선택했다.
강함은 부드러움만 못하다는 진리를 보여주듯 강도 높은 개혁의지는
중종의 견제와 훈구세력의 음모에 걸려들어 사사의 최후를 마쳐야 했다.
그는 마지막 사약을 마시는 순간에도
임금에 대한 충성과 사랑을 토하는 글을 올렸다.(절명시)
진정한 성리학자임이 증명되는 부분이다.
하지만 그런 그가 죽임을 당해야 하는 것이 역사다.
그렇게 죽어간 이름모를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역사 속에 묻혀있을까?
이후 선조 대에 다시금 정계에 진출한 사림세력들이 그의 사상을 중심으로
다시 역사 속 주인공으로 그를 살려내는 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나는 그것을 후진양성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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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절대선을 지양하지 못한다.
권력투쟁이 꼭 사필귀정으로 귀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은 늘 흩어졌다 모이고 모였다간 흩어지고를 반복한다.
사람들이 모여있는 집단 안에는 반드시 권력투쟁이 벌어지며 이합집산이 이어진다.
분명 후세사가나 내가 바라보는 정답의 관점이 존재하지만
그 관점과는 상관없이 정말 형편 없는 예측불허의 역사가 진행된다.
그것은 아마도 보이지 않는 힘의 작용인지도 모른다.
회사도 국가와 마찬가지로 똑같은 현상들이 벌어진다.
따라서 우리는 두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하나는 권력투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속고 속이며 살아남든가
권력투쟁의 소용돌이를 벗어나 진정한 자기만의 삶을 추구하던가
하는 방식이다.
입궐을 거부하고 사림에 남아 후학에 힘쓰던 사람들의 삶이 대체로 그러하다.
이들에게서 배울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진리는 바로 후진양성이다.
조광조를 부활시킨 것은 바로 조광조의 제자들이다.
그가 양성한 후진이 없었다면 그는 소나 돼지처럼
이름없는 무덤으로 사라졌을 것이다.
초야에 묻혀 그냥 소나 돼지처럼 살다 죽기보다는 후진양성을 위해
전력을 다하는 삶이 가장 중요한 인생의 가치가 아닌가 싶다.
그것은 꼭 누군가를 가르치는 방식일 수도 있지만 홀로 학문에 정진하여
후세에 귀감이 될 글을 남기는 것도 그 방법 중의 하나라 할 것이다.
정약용 등이 대체로 그런 사람들이다.
남들과 싸우기 싫다면 적어도 자기와 치열하게 싸워 그런 글이라도 남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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