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스 요나손의 창문 넘어 도망친 백세노인은 세상을 운명론적으로 바라본다.
모든 불평불만이나 고통은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데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그는 인간을 큰 강물에 떠가는 하나의 낙엽처럼 정의한다.
흘러가는 강물에 낙엽이 불평을 늘어놓거나 떠내려가지 않으려고 발버둥 쳐봤자
고단하고 상처만 입으니 그냥 큰 강물에 몸을 맡긴 채
지금 흘러가는 주변의 산도 보고, 들도 보고, 꽃도 보면서
현재를 즐기고 아름다움을 찾으라고 한다.
그런 아름다움, 행복 따위는 알량한 잔머리에서 해방될 때 생겨난다.
그러기에 그는 종교든 정치든 모두 현재중심의 삶에는 도움이 안된다고 본다.
******************
어차피 일어날 일은 일어날 터 미리부터 골머리를 썩일 필요는 없다.
복수는 좋지 않은 거야.
복수는 정치와도 같은 것이라서 하나는 다른 하나를 낳고 악
은 개악을 낳고 결국 최악에 이르게 되거든.
하나의 혁명은 역방향으로 또 다른 혁명을 낳을 뿐이다.
알란에게는 의견이라는 것 자체가 없었다.
인생을 조금 더 연장해 보기로 결정한 다음부터 사는 게 왜 이리도 고단한지.
세상사는 그 자체일 뿐이고 앞으로도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 자체일 뿐이다.
이 말에 내포된 의미 중 하나는 절대로 불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적어도 타당한 이유 없이는
알란이 연극을 너무도 잘했다고 칭찬하자 헤르베르트는 얼굴이 빨개지며 손 사레를 쳤다.
진짜 바보가 바보 모습을 보이는 것은 조금도 어려운 일이 아니라면서...
그러나 알란의 생각은 달랐다.
그가 살아오면서 만난 바보들은 모두가 똑똑한 척 하려 애쓰지 않았던가!
그래.
생각하면 할수록 만사는 그 자체로 놔둬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일들이 일어나는 대로 흘러가는 대로 놔둬야 하지.
왜냐하면 만사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는 것이니까.
거의 항상 그래.
'삶의 지혜를 찾아서 > 인문학 산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하성 교수의 한국 자본주의 (0) | 2015.05.07 |
---|---|
묵자 (0) | 2015.02.22 |
내가 공부하는 이유(사이토 다카시) (0) | 2015.01.19 |
미움 받을 용기(기사미 이치로, 고가 후미타케) (0) | 2015.01.11 |
착각하는 CEO(유정식) (0) | 2015.01.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