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경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경험에 부여한 의미에 따라 자신을 결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과거의 원인에 영향을 받아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정한 목적에 따라 움직인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주어졌느냐가 아니라 나에게 주어진 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이다.
결국 인생의 목적과 변화의지 그리고 실천행동이 중요하다고 본다.
나의 불행은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주어진 것이 아니고 고쳐나가는 것이다.
인간은 대략 열 살 전후해서 사람의 성격이 형성된다.
그리고 그 이후 끊임없이 변하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인간이 변하지 않는 것은 스스로 변하지 않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인생은 지금 여기에서 결정된다.
지금의 생활양식을 버릴 것인가 고수할 것인가에 따라 결정된다.
인생을 결정하는 것은 지금 여기를 사는 나다.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
인간관계 속에서 상처 받는 것을 지나치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사라진다면 온갖 고민도 사라진다.
개인의 내면의 고민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종류의 고민이든 거기에는 반드시 타인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열등감도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 주관적 해석이다.
인간은 무기력한 상태로 태어났으므로 이를 벗어나려는 욕구를 갖고 있다.
그것이 우월성 추구다.
자랑하는 사람은 열등감을 느끼는 사람이다.
정말로 자신 있는 사람은 자랑하지 않는다.
열등감이 심하니까 자랑하는 거다.
자신이 우월하다는 것을 일부러 과시하려고.
건전한 열등감은 타인과 비교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고 이상적인 자신과 비교해서 생기는 것이다.
사적인 분노는 타인을 굴복시키려는 도구에 불과하다.
장난은 자신에게 주목하게 하려는 심산이다.
마치 강아지가 살살 깨물 듯.
인간관계에서 나는 옳다고 확신하는 순간 권력투쟁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나는 옳다는 확신이 상대방은 틀렸다고 생각하고 궁극적으로는 내가 이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권력투쟁이다.
어떤 사람이 미워지는 것은 상대가 변한 것이 나이라 자신의 목적이 변했을 뿐이다.
인정욕구를 부정하라.
대개의 경우 그것은 상벌교육의 영향이다
자신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자신 밖에 없다.
아들러 심리학에는 상식에 대한 안티테제라는 측면이 있다.
원인론과 트라우마를 부정하고 목적론을 추구하는 것, 인간의 고민은 전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는 것, 인정받기를 바라지 않는 것, 나아가 과제의 분리까지 모두 상식에 대한 안티테제이다.
자유란 타인에게 미움을 받는 것이다.
행복해지려면 미움 받을 용기도 필요하다.
인간관계라면 보통 다수와의 관계를 떠올리는데 자기 자신이 먼저다.
인정받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있으면 인간관계의 카드는 항상 남이 가질 수밖에 없다.
내가 이 사람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를 생각해야 한다.
그게 공동체 공헌이다.
사회의 최소단위는 나와 너이다.
인간관계의 목표는 공동체감각을 갖는 것이고 공동체 감각은 자기에 대한 집착을 타인에 대한 관심으로 바꾸는 것이다.
인간은 칭찬을 받을수록 나는 능력이 없다는 신념을 갖게 된다.
타인을 평가하지 마라. 그것은 수평적 관계다.
인간은 감사의 말을 들었을 때 스스로 타인에게 공헌했음을 깨닫는다.
인간은 자신이 가치 있다고 느낄 때에만 용기를 얻는다.
당신부터 시작하세요. 다른 사람이 협력하든 안하든 상관하지 말고.
자기긍정이 아닌 자기 수용을 하라.
자기에 대한 집착을 타인에 대한 관심으로 돌리고 공동체 감각을 기르는 것, 이에 필요한 것이 자기수용, 타자공헌, 타자신뢰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주어졌느냐가 아니라 주어진 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이다.(현재를 살아야 하는 이유)
우리는 나라는 내용물이 담긴 그릇을 버릴 수도 교환할 수도 없다.
자기긍정은 할수 없으면서 할 수 있다고 주문을 거는 거기에 자칫 우월콤플렉스에 빠질 수 있다.
반면 자기수용이란 하지 못하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할 수 있을 때까지 앞으로 나아가는 거다.
진정한 나는 100점짜리인데 이번에 운이 나빠 60점을 받은 거라고 생각하면 자기긍정이고 60점짜리니까 열심히 해서 100점짜리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는 게 자기수용이다.
자신의 과제를 바꿀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 구분하고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가 자기수용이다.
커트 보네거트는 “신이시여 바라옵건대 제게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차분함과 바꿀 수 있는 일을 바꿀 수 있는 용기와 그 차이를 구분하는 지혜를 주소서”라고 했다.
우리는 능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그저 용기가 부족한 것이다.
모든 것은 용기의 문제다.
조건 없는 신뢰가 인간관계를 잘 맺기 위한 제1 수단이다.
일의 본질은 타인에게 공헌하는 것이다.
사회에 나가 일하는 것, 집안일을 하는 것, 노동 따위는 돈을 버는 수단이라기보다는 노동을 통해 타인에게 공헌하고 공동체에 헌신하며 내가 누구에겐가 도움이 된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나아가 자신의 존재가치를 받아들이게 된다.
유대교 교리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열 명의 사람 중에 한사람은 당신을 싫어하고 비판한다. 두 사람은 당신과 서로 모든 것을 받아주고 더없는 벗이 된다. 나머지는 그도 저도 아니다.”
인간에게 있어 최대의 불행은 자기를 좋아하지 않는 거다.
아들러는 나는 공동체에 유익하다. 누구에겐가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통해서만 자신이 가치 있음을 절감한다고 했다.
결국 행복이란 공헌감이다. 이게 행복의 정의다.
공헌감을 얻는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남들로부터 인정을 받으려고 한다.
건전한 노력은 외면한 채 주목만 받으려고 하는 것을 안이한 우월성 추구라고 한다.
지금 여기에 강렬한 스포트라이트를 보내면 과거나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인생은 언제나 단순하지 심각한 게 아니다.
각각의 찰나를 진지하게 살면 심각해질 필요가 없다.
인생 최대의 거짓은 지금 여기에 살지 않는 것이다.
인생의 의미는 내가 나 자신에게 주는 것이다.
길잡이 별 그것은 타자공헌이고 사랑이다.
그것만 놓치지 않는다면 길을 잃을 염려가 없다.
당신부터 시작하세요. 다른 사람은 상관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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