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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지혜를 찾아서/인문학 산책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혜민)

by 굼벵이(조용욱) 2016. 9.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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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게 자꾸 서운한 마음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많이 올라온다고 느끼면 스스로를 좀 더 깊이 성찰해 보세요.

 

서운함은 남에게 무언가 기대하는 마음이 작게라도 있을 때 생기는 것 같습니다.

 

왜 나는 자립심 없이 남에게 자꾸 받으려고 하는지, 기대려고 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관계를 원활히 하고 싶으면 계산하는 버릇을 멈추세요.

 

가족 안에서 싸움이 났을 때 절대로 편을 들지 말고 양쪽 말만 잘 들어주세요.

 

누군가 나를 아주 따뜻하게 안아주면 내 생명이 하루 더 연장됩니다.

 

화를 내면 그 화는 메아리가 되어서 반드시 나에게 되돌아옵니다.

그러니 화를 낼 때는 단단히 각오를 하고 화내야 합니다.

 

집이 어지럽고 청소하기가 귀찮으세요?

그러면 친구를 집으로 초대해 보세요.

30분 안에 청소를 다 하고도 남을 힘이 솟아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도울 때 ‘내 맘이 편하자고 하는 거다’라고 마음먹으면 상대가 좀 서운하게 해도 크게 동요하지 않습니다.

 

상대의 이야기 연료가 다 떨어질 때까지 들어주세요.

 

남의 잘못을 지적해 준다고 그 사람의 행동이 변화할 것이라고 기대하지마세요.

상대는 상처만 받고 변화는 없는 경우가 많아요.

차라리 칭찬을 통해 그 사람이 잘하는 부분을 발달시키세요.

타고난 성향은 바꾸고 싶어도 잘 안 됩니다.

 

겨울에 누비승복 입고 맨해튼 돌아다니면 가끔씩 듣게 되는 말 : 이렇게 멋지고 패셔너블한 옷 어디서 구할 수 있어요?

 

우리 삶의 많은 고통은 단절에서 옵니다.

 

그를 미워하지 않는 것이 내 마음의 상처를 남기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언젠가 하겠다고 마음먹은 거 생각났을 때 바로 해보세요.

생각으로 문제를 풀려 하지 말고 쉬세요.

 

지혜는 고요함에서 나옵니다.

삶 속에서 깊은 시련이 몰려왔을 때 그냥 어쩔 줄 몰라 하지 마시고 아주 고요한 곳에서 마음을 고요하게 바라보세요.

마음이 깊은 침묵과 닿으면 알게 됩니다.

이런 시련을 이겨 낼 수 있는 힘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흔든다고 흔들리면 세상이 나를 더 세게 흔들어요.

다른 사람의 칭찬이나 비난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바위를 본받아요.

 

본인이 싫은 것도 해야 좋은 것도 할 수 있습니다.

아주 작은 일이라 해도 내 마음과 영혼을 다해 정성으로 해보세요.

그것이 성공의 비결입니다.

인생의 전환점은 좋았을 때보다 어렵고 힘들었을 때 혹은 궁지에 몰리거나 고생이 심했을 때 옵니다.

 

우리는 어쩌면 ‘당신을 사랑해요’ 라는 말보다 ‘나에게 당신이 필요합니다’ 라는 말을 더 듣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부모의 가장 큰 선물은 부모 스스로가 행복한 것입니다.

부모가 행복하면 아이는 자존감이 높아집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다이어트 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운동을 정기적으로 하는 것이라고 해요.

 

내가 할 만큼 다 했으면 놓으세요.

행복한 마음은 연습이 필요합니다.

 

우리 마음 안에는 분노와 미움, 슬픔과 비통함, 외로움과 공포만 있는 게 아니다.

그 내면의 감정들을 따뜻하게 지켜보고 있는 자비한 마음의 눈이 있다.

그게 본성이다.

 

거칠고 사나운 사람도 그 폭력적인 성품 바로 아래에 공포가 있고요, 그 공포 아래에 어렸을 때 받은 깊은 상처와 연약함이 있습니다.

겉만 보지 말고 그 연약함과 상처까지 봐주세요.

 

아무리 미움받을만한 사람을 미워해도 그 미움은 나를 먼저 불행하게 해요.

 

정말로 미안하면 여러 번 반복해서 사과를 진정성 있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몰라도 되는 자극적인 사건, 사고 뉴스를 인스턴트 식품들처럼 소비하고 바로 버린다.

 

삶 속의 아픔은 치유의 대상이지 극복의 대상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의 고통이 치유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은 내 마음의 고통부터 치유합니다.

 

부처가 자비를 행하는 것이 아니라 자비한 마음이 곧 부처입니다.

 

나의 반복적인 생각이 내 느낌이나 감정을 좌지우지합니다.

우울한 생각이 떠오르면 첫째, 그저 하늘마음에 잠시 우울한 생각구름이 하나 일어났을 뿐 내 인생 전체가 그런 것은 아니라는 것을 기억했으면 해요.

많은 정신적 문제는 생각과 나를 동일 시 했을 때 생겨나요.

둘째, 나를 모르는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는데서 생긴 우울이라면 실제로는 나를 빗대어 자기 본인의 심리상태를 이야기하는 것 뿐 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투사)

셋째, 생각의 대부분은 극히 제한적인 내 경험의 관점에서 본 사건들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해요.

 

현재로 오면 생각이 없어요.

그래서 숨을 느끼라는 겁니다.

 

마음에 고민이 많아 우울하고 힘들 때 머리를 들고 앞에 있는 사물을 아주 자세하게 관찰해 보세요.

사물을 보는 순간 생각의 진행이 멈추면서 조금 전 고민이 그냥 생각 덩어리였구나 하는 깨달음이 옵니다.

 

우울증의 최초 원인을 보면 놀랍게도 슬픔보다 분노인 경우가 많습니다.

혹시 우울증으로 고생하신다면 내가 어떤 분노를 표현하지 못하고 있는지 들여다봐요.

이런 분노, 우울, 짜증을 극복하는 방법 중 하나는 내가 남에게 베푸는 친절입니다.

 

우울하시다면,

1.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배워본다.

2. 일주일에 한번정도 3시간 몸을 쓰는 봉사활동을 해본다.

3. 최근에 못 봤던 친구들을 불러 한 끼 식사를 대접한다.

4. 인생무상의 진리를 깨닫는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나면 변해서 사라지기에 내 의지처로 삼을만한 것이 원래부터 없었다는 사실을 통찰해 냅니다.

 

대통령님께 꼭 물어보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혜민스님이 말한 다음 이야기가 진실인지...

 

동네에 새로 생긴 카페에 가보았다.

녹차 크레이프 케이크라고 맛있어 보이는 것을 골랐는데 한 조각에 7천원이라는 말에 차만 마셨다.

그런데 하루 종일 그 케이크가 눈앞에 어른거렸다.

이틀 내내 어른거려 다시 그 카페로 가서 먹고 싶었던 케이크를 사서 먹었다.

맛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아주아주 맛있지는 않았다.

아마 노벨상을 받거나 대통령이 되어도 이런 기분이 들겠지?

 

걷다보면 괜찮아져요. 잊혀 져요.

고통은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는 문입니다.

(새가 알을 깨고 나오는 거죠)

 

안 것을 행동으로 옮겨 생활 속에 녹였을 때 비로소 변화가 일어납니다.

(공자님의 학이시습과 같은 맥락입니다.

내가 아침 기도와 108배를 올리고 50번 이상 씹는 식사습관도 아마 그럴 겁니다)

 

우리의 본성은 하늘같아서 생각이란 구름, 감정이란 천둥, 기억이라는 노을이 지지만 하늘의 본성은 그것들을 허락하고 변화함을 지켜볼 뿐입니다.

생각, 감정, 기억의 날씨들은 일어났다 사라지지만 하늘의 마음공간은 변함없이 여여합니다.

 

틱낫한 스님의 플럼빌리지 사람들은 아주 천천히 걷는다.

밥도 아주 천천히 먹는다.

차 한 모금도 마음이 온전히 깨어 그 맛을 느끼도록 천천히 마신다.

바로 지금 여기에서 온전히 깨어있으라는 스님의 가르침 때문이다.

 

숨은 우리 몸과 마음을 연결해 주는 아주 중요한 다리이다.

 

그 어떤 위대한 생각도 평화로운 침묵에 비할 것이 아니다.

내 마음 속에서 느끼는 평화로운 침묵이 내 몸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몸 밖에도 가득하다.

왜냐면 내 몸을 포함한 온 우주에 가득한 침묵이 어디에서 시작되고 어디에서 끝나는지 도무지 그 경계선을 찾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즉 몸 안팎의 분별, 나와 세상으로 나누던 차별이 침묵 속으로 사라져 움직이지 않은 하나의 마음만이 온 우주를 가득 메우고 있음을 경험하게 된다.

(우주만물이 전체로서 하나의 마음이다.

그게 우주마음이다.

그게 나의 본성과 접한다.)

 

식사할 때 음식을 입 안에 넣고 씹으며 눈을 감아보세요.

눈을 감고 천천히 음미해보면 또 다른 세상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생각에 사로잡혀 있으면 내 눈앞의 사람이나 풍경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반대로 지금 눈앞에 있는 것들을 관심 있게 바라보면 생각에 붙잡혀 있던 마음이 생각으로부터 빠져나와요.

생각을 없애려 하지 말고 눈앞에 있는 것을 세심히 관찰하세요.

망상이 없는 현재에 마음이 옵니다.

숨이 편안해지면 마음도 따라서 편안해져요.

 

인생이나 수행도 처음엔 대단한 무언가를 찾아 떠나지만 무수한 성공과 실패의 경험 후에는 처음 떠났던 그 자리의 소중함을 깨닫고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내가 그토록 찾던 것이 항상 내 손 안에 있었던 것일 수 있습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들보다 지금 내 마음의 온전함과 평화로움이 더욱 소중합니다.

 

진리는 찾는 것이 아니고 마음이 고요해지면 드러나는 것입니다.

 

내 안의 생각이나 감정들이 들고 나지만 그것들을 바라보는 조용한 관조자가 있습니다.

그 관조자가 바로 우리의 본성입니다.

잠시 거울 위로 보여 지는 영상들을 붙잡고 나라고 착각하지 마세요.

텅 비어야 하늘의 깊이를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도 생각이 쉬어 텅 빌 때 창공과 같은 본성이 드러납니다.

생각과 나를 동일시하지 마세요.

지나가는 생각에 붙잡히지 마세요.

진리나 본성이라고 하는 것은 한 순간이라도 잃어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해탈이란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불안함이 없는 것을 뜻한다.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는 것)

 

과거를 그냥 가만히 내버려두세요.

자기가 알아서 강처럼 흐르도록.

 

진정한 나는 기억의 강이 아니라 그 흐름을 강 밖에서 고요히 보는 자입니다.

우주 가득한 무형상의 깨어있는 마음이 부처다.

그 마음은 모든 살아있는 생명들의 본성이다.

본성을 굳이 말로 표현한다면 텅 빈 채로 깨어있는 마음이 참으로 묘하게도 죽어있는 것이 아니고 살아서 이 우주 전체 가득히 자기 홀로 있다.

모양을 가진 우주만물들이 바로 이 텅 빈 채로 살아서 홀로 깨어있는 마음에서 나왔다는 것을 안다.

마치 구름과 천둥, 비를 수용하는 하늘공간처럼, 음악소리의 배경으로 있는 고요처럼, 세상의 여러 모습을 비추는 거울처럼, 노는 아이의 모습을 지켜보는 엄마의 시선처럼 항상 현존한다.

우주가 이 하나 마음 안에 다 들어와 있을 뿐 이 마음을 벗어나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것이 자신이 아는 바를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고 또 자기가 한 말과 행동이 다르지 않는 것이다.

 

내 마음그릇 안에 우주가 들어와 있는 것이지 내 마음보다 더 큰 우주가 별도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는 마음과 우주공간이 사실은 하나입니다.

 

싫은 사람만큼 수행하는데 좋은 스승은 없습니다.

가장 큰 공부는 남의 허물을 뒤집어쓰는 것입니다.

 

문득 깨달아요.

이미 세상 전체가 성불해 있다는 것을.

 

처음엔 내가 열심히 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얻으려 해요.

하지만 하나님은 잠시도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요.

 

가장 큰 신비는 내 마음 본성을 깨달으면 전 우주가 일시에 깨닫는다는 점입니다.

 

아래는 동일한 하나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현재, 침묵, 무념, 평화, 空, 마음, 깨어있음, 수용, 자유, 온전함, 사랑, 자비, 생명, 무경계, 오직 모를 뿐

 

깨달은 후에도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인격을 닦아나가야 합니다.

깨달음은 그래서 완성이 아니고 시작입니다.

엄밀한 의미로 깨달은 자는 없습니다.

깨달은 순간만 존재합니다.

 

내려놓는다는 말은 사실은 받아들인다는 말의 다른 말입니다.

 

어떤 사람이 크게 뜨고 나면 두 박자 후에는 그 사람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한 가지를 얻으면 반드시 한 가지를 잃게 되어있습니다.

성공보다는 주위사람들과의 관계, 영적인 수행이나 함께 하는 행복에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사실 비움 안에 온전함의 지혜가 있습니다.

 

내가 예전에 도움을 주었거나 크게 기대한 사람이 나를 심하게 해치더라도 그를 최고의 스승으로 여기게 하소서-달라이 라마

 

사람은 가까이서보면 누구나 모순되고 악한 존재들입니다.

성숙은 이런 불완전하고 앞뒤 안 맞는 모습을 스스로 돌아보면서 성찰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