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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지혜를 찾아서/인문학 산책

인생의 발견(시어도어 젤딘)

by 굼벵이(조용욱) 2017. 3.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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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세상을 밝고 선명한 색으로만 보지 말고 뜻밖의 공통점으로

경계가 모호한 암갈색으로 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세상에 무지보다 더 큰 장애는 없다.  
아는 만큼 보이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것을 가르치려 드는 것도 지적 교만이다. 
그냥 암갈색으로 살아가면 된다. 
역사는 호기심으로 세상에 저항한 이들의 기록이다.  
사람의 삶이 어떻게 이렇게 극단적일 수 있을까? 
어떤 사람은 이렇게 비열한데 다른 사람은 어찌그리 고결할까? 
사이야흐는 재산과 행선지와 종교는 비밀에 부치라고 하면서  
평범한 사람이 실은 얼마나 비범한지 발견하는 데서 즐거움을 찾았다,  
오늘날 우리는 한분야의 전문가로 훈련을 받는다.  
하지만 이렇게 습득한 기술은 밥 벌어먹으며 깊은 만족감을 줄 수는 있어도 상상력을 제약할 수 있다.  
나는 그저 살아 남은 것일까, 온전히 살아 온 것일까? 
우리 시대 가장 위대한 모험은 지상에 사는 사람을 발견하는 일이다.  
존재의 질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사적인 인간관계로부터 나오는 결론을 탐색하고 싶다.  
세상 만물은 경외로 꽉 채워져 있다.


중국인들이 자애로움(仁)을 두사람을 형상화 해서 표현한 데에는

본질이 관계에 있을을 꿰뚫어 본 선견지명이다.
친밀감은 위계와 가식의 문화에 감춰져 있던 우주를 드러내는 현미경이다.
사실 삶에서 무엇이 가능하고 무엇이 불가능한지를 생각할 때

과거 경험만큼 우리를 제약하는 것도 없다.
역사는 미완의 실험이자 우리가 놓친 갈림길이자 주목받지 못한 발명품이다.
모두가 성공을 원하지만 이제는 일과 재산에서 성공을 이루는 것이 더욱 어려워졌다.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나지 않았다.
낯선 사람과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있는 것이다.
역사는 공포와 굴복의 기록일 뿐만아니라 위험에 도전한 기록이다.
특히 호기심에 이끌려 저항한 기록이다.
권태는 지친 자들의 신음이요 성마른 자들의 비명이며 희망이 사라질 때의 흐느낌이다.

생각이란 타인에게 전해지는 사이 언젠가는 변형되기 마련이고 어차피 소용없는 짓이다.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최선의 방법은 어지러운 삶에서 물러나거나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거나 만족감을 기르는 것이다.

자서전은 가식의 사막에서 돌발적으로 꽃을 피웠다가 금세 지고 마는 희귀한 선인장이다.

부모는 잎이 다 떨어진 나무처럼 그루터기로 남는다.

누구에게나 자기 세계를 창조할 권리가 있으니 누구도 나의 세계를 비난하지 않으면 좋겠다.

헛된 삶은 혼자서만 말하고 자기 의심에 사로잡히는 삶이다.

나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보다 '당신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더 선호한다.

이 질문에서 대화가 시작되고 자화상이 탄생한다.

생각은 혼자 놔두면 외롭고 무력하다.

소통을 통해 수정되어야만 남들에게도 의미있는 생각이 된다.

생각은 사랑을 나누는 행위와 같다.

역사에 기록된 생각은 빙산의 일각이다.

대화를 나누면서 자기가 누구인지를 설명하다가 자화상을 대략적으로 그린 사람들이 더 많다.

오직 사람만 태어날 때 울음을 터뜨린다.

간디는 '맛있는 음식을 탐하는 사람은 일찍 죽는다. 약을 먹듯이 음식을 먹어라'라고 했다.

가장 흔한 형태의 자살은 희망을 잃는 것이다.

시기와 탐욕과 오만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만성질환이지만

그나마 고마워하는 마음이 있기에 억제되었다.

관심이야말로 우리가 타인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찬사다.

이슬람은 차이를 존중하고 인간은 저마다 타고난 능력과 성향에 따라 신을 이해하고 인정한다.

신의 뜻을 다 안다고 믿고 주제 넘게 자기가 이해한 것을 남에게 강요하는 사람은

사실 자기를 신과 동일시하고 자기도 모르게 신성모독을 범하는 것이다.

이슬란 율법은 신이 내린 법이 아니라 예언자 마호메트 이후 수세기에 걸쳐 만들어진 것으로

사회진화에 따라 끊임없이 수전되어야 마땅한 인간의 법이다.

와힛은 "여기 한 인문주의자가 잠들다"라는 비문을 남겼다.

반면 하산 알반나는 무슬림형제단을 만들어 와힛과 대척점을 이룬다,

우리를 풍요롭게 만드는 최선의 방법은 남의 생각을 배우는 것이다.

악은 탐욕에서 나온다.

세상이 끝날 때까지 전쟁과 갈등과 빈곤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다.

내가 믿는 종교만이 유일하게 진실한 길이라고 믿는 사람은

사우디아라비아인 79%

한국 기독교 65%

인도 이슬람교도 49%

개종한 미국인 42%

인도 힌두교 37%

이스라엘 유대교도 33%

한국 불교도 31%

페루 카톨릭 교도 25%

러시아 정교도 24%

미국의 주류 개신교도 16%

미국 카톨릭교도 15%이다.

세계의 종교는 혁명에서 출발했다.

현재 세계에는 4200가지 종파가 존재하지만 같은 종파 안에서도 다시 여러 종파로 갈라진다.

지식을 습득하는 것은 스스로에게 반박하는 과정이다.

양립 가능성은 두사람을 평온하게 만들 수 있지만 양립불가는성은 두사람을 빛나게 만들어줄 수 있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화합하지 못하는 생각의 충돌을 막는 방편으로 예의가 발전했다.

라빈드라나드 타고르는 모든 인간의 내면에 신성한 존재를 담고 있지만

이기심과 자기애로 인해 타인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깨닫지못할 뿐이라고 말했다.

남여가 아이를 낳는 것은 두 사람의 성격을 예측 불가능한 방식으로 혼합해서

누구도 동의하지 못할 인간을 세상에 내보내는 것이다.

생각도 마찬가지이다.

혼합되고 미지의 혈통에서 나온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 중 하나는 아이를 낳는 일이고

그러려면 배우자와 영감과 적어도 타인과의 만남이 필요하다.

인간은 지식을 습득하는 한 살아있다.

지식을 습득하는 것은 스스로에게 반박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을 사랑하려는 야망을 뛰어넘기 위한 준비과정이자 대다수 사람과 충돌하는 문제다.

의견차이를 개인적인 모독으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문명과 문명이 만나 예상했던 결과가 나온 적이 없다.

아인쉬타인은 방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가정부나 아내가 청소하지 못하게 했다.

그는 자신이 한번도 국가나 주나 가족에 진심으로 소속된 적이없다고 했다.

원칙적인 채식주의자로서 죄책감을 느끼며 고기를 먹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구분은 그저 오래된 착각일 뿐이다.

기억은 사건을 온전한 실체로 소환하는 과정이 아니라

무수히 흩어진 파편을 재구성하는 과정으로서 어쩔 수 없이

현재의 감정이나 믿음이 섞여들어가는 것으로 밝혀졌다.

우리는 끊임없이 과거를 재창조한다.

자연이 쓸모있어서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즐거움을 주고 아름다워서 연구하는 것이다.(푸앵카레)

모든 확실한 것은 거짓이라고 생각했다.

과학자에게 최상의 교육은 인문학이다.

가난하면 자연히 세상을 탓하게 되고 고집이 세면 감정에 따라 섣불리 남을 재단하게 된다.

인간의 기쁨은 다른 인간이다.

친구를 찾으면 진실로 믿어주고

행운을 빌어주고

생각을 나누고

선물을 주고받고

집에 자주 찾아가라.

키에르케고르는

'여자는 자만의 화신이다,

여자아이를 남자아이처럼 키운다면 인류에 작별을 고해야 할 것이다,

개인의 행복을 외부에서 구할 수 있다는 생각은 미신이다.

불안해야 자유로울 수 있다.

누구든 올바른 방식으로 불안해 하는 법을 배웠다면 궁극의 것을 배운 것이다.'라고 했다.

얀테의 법 첫번째는 네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라이고

마지막 계명은 남에게 무언가를 가르쳐줄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수많은 문명이 먼지만 남기고 사라졌다.

막강한 제국도 존재하지 않는다.

국가도 불멸의 존재가 아닐 수 있다.

우선 사람이되고 그다음에 기독교인이 되라.

개인은 우선 타인과 유익한 관계를 맺어야 하는데

이런 능력은 교회를 다닌다고 해서 저절로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교회를 이루는 것은 설교나 예배가 아니라 신자들의 유대관계다.

중국의 서원은 과거시험이나 벼슬길에 뜻이 없는 평범한 농부들의 기간제 계절학교였다.

하지만 본래 목적을 잃고 과거시험 대비 기관으로 전락했다.

이슬람에서는 '살람 알라이쿰'이라고 인사하고
히브리어는 '살롬'
영어는 'Peace'
중국은 '화평' 또는 '평안'으로 인사합니다.
평등해서 서로 지배나 공격을 시도하지 않을 때
평화가 깃들기 때문입니다.
'안'은 지붕 아래 여자가 있는 모양으로
어머니의 사랑이 집안 가득함을 나타냅니다.
'화'는 함께 밥을 먹는 모습을 뜻합니다
힌두교의 '나마스테'는 '당신앞에 절합니다'
라는 말로 상대방에 대한 존중을 뜻합니다.
이렇듯 인사는 공동체 생활의 기본원리를
주문처럼 주고받음으로써
조화롭게 살아가려는 의도에서 생겼습니다.
극단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요.
모두 회색지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끼리
서로 인사 나누면서 행복하게 살아요!
나마스테!

디오게네스는 최초로 세계시민을 자처한 인물이다.

대낮에 등물을 들고 다니면서 정직한 사람을 찾는다고 말하고

남이 보는 앞에서 자위하면서 배고픔을 잊기 위해 배를 문지르는 거라고 했다.

그는 자신의 철학은 개의 철학이라고 하면서

개는 불안해하지 않고 쉽게 친구와 적을 알아보고 수치심이 없어서

아무데서나 꺼리낌 없이 사랑을 나누므로 진정한 철학자라고 주장했다.

루소는

세계시민을 경계하라.

그들은 아무도 사랑하지 않을 권리를 얻기 위해 모두를 사랑한다고 했다.

여행은 도착이 중요하지 않다.

마키아벨리는 무자비한 군주를 원한 것이 아니라

무자비해야만 왕좌를 지킬 수 있는 현상을 관찰했을 뿐이다.

일은 온전히 살아있는 삶으로 들어가는 입장권이다.

미국 언어에 maverick이라는 단어가 낙인이 없는 한 살짜리 새끼동물이라는 뜻으로 등장했다.

다음으로 이 단어는 정당 꼬리표를 달지 않은 정치인을 가리키는 뜻이 되었다.

당파성에 물들지 않은 사람을 뜻한다.

매버릭은 독립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을 뜻한다.

우리는 모두 돌연변이다.

암을 일으키는 돌연변이는 환자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남자의 명예는 스스로 독립할 수 있는 능력에서 나온다.

이케아의 캄프라드는 리더십을 사랑으로 정의했다.

낭비는 가장 심각한 질병이다.

로마제국이 몰락한 이후의 서고트족이었다면

예순 다섯살이 넘으면 나의 가치는 금화 백냥으로 열살 미만의 아이와 동일하다.

14세 청소년은 140냥이고 그 이상에서 쉰살까지 성인 남자는 300냥이며

14세에서 40세 사이의 가임기 여성은 250냥이고

50살이 넘는 여자는 거의 가치가 없다.

연금은 19세기 말 프로이센 지주들이 고안한 개념이다.

소작농들이 사회주의 혁명에 물들지 않도록 일종의 뇌물로 준 것이다.

우리 뇌는 골동품 점이다.

수세기 동안 교육은 사실상 인간의 모든 병을 치료하는 만병통치약이었지만

그간의 놀라운 성과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가장 어리석은 행동은

교육수준이 가장 높은 개인과 국가에서 자행되었다.

과도한 지식으로 비만이 되면 오히려 정신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

자연은 삶이 중단되지 않도록 어떤 수고도 아끼지 않는다.

여자는 200만개의 난자를 가지고 태어난다.

남자는 한번 사정할 때마다 4000만개의 정자를 만든다.

징기즈칸은 적의 아내와 딸들을 품어서 자식을 많이 낳는 것을 사명으로 여겼으며

현재 그의 후손은 1600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자식을 낳지 않고 정신적인 자식만 낳기로 선택한 사람들은

예수, 레오나르도다빈치, 베이컨, 데카르트, 뉴턴, 로크, 버클리, 흄, 칸트, 케인즈, 헨델, 베토벤, 차이코프스키, 루이암스트롱, 마리아 칼라스, 조르주 브라상, 제인 오스틴, 윌리암브레이크, 러스킨....

내 몸에서 매일 세포가 죽지만 단지 노화로 인해서만 죽는게 아니다.

대다수 세포는 자살한다.

다른 주변세포들과 신호를 주고받지 못할 때 세포는 자살한다.

다른 세포들과 결합해서 자기보다 큰 무언가를 만들 때 살아남는다.

침묵에 대한 벌로 죽는 것이다.

우리의 정신도 마찬가지다.

삶의 선물에는 무한히 다채로운 자연세계와 타인의 상상력이나 독창성과 연결하라는 자극이 들어오고

이런 선물에 감사하는 마음이 사랑으로 발전할 수 있다.

그 사랑의 반경이 넓어지면 더 활기차게 살 수 있다.

두사람이 피상적인 만남에 머물지 않고

만날 때마다 발견과 창조를 보태면 그 만남을 발전시킬 수 있다.

모두의 경험, 시행착오가 삶을 이해하는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