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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책들/마지막 리더(2010)

7. 살아있는 일본 경영

by 굼벵이(조용욱) 2017. 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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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이 잃어버린 20년을 이야기하며 흔들리고 있다. 변화의 물결에 합류하여 리스크를 감수하지 못하고 자신만의 외길을 고집한데서 나타난 부작용이다. 초고속 IT시대가 돌입하리라는 것을 예상하고 이에 걸 맞는 대비와 도전을 제대로 못한 탓이라고 하기도 한다.
  일본은 넓은 국내시장에 만족하여 독자적으로 진화하는 갈라파고스화가 이루어졌다는 분석도 있다. 남미에서 약 900Km 떨어진 갈라파고스 섬에는 독자적으로 진화하는 생물이 수십 종이나 된다고 한다. 육지와 멀리 떨어져 있어 육지 환경변화의 영향을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진화한 결과이다.
  그러나 일본은 오타쿠로 설명되는 강한 집중력과 장인정신을 가지고 있다. 오타쿠란 용어는 상대라는 2인칭의 높임말인 ‘댁’의 일본어 발음으로 흔히 한 분야에 열중하되 마니아보다 더 심취한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최고의 기술국가 독일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전통을 중시하고 강한 집중력으로 아직도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하고 있다. 만일 이런 일본이 변화의 방향성만 제대로 읽고 선도해 나갔더라면 경제 판도는 매우 달라졌을 것이다. 그래서 리더는 항상 변화의 방향성을 제대로 읽고 리스크를 감수하며 미래를 대비해야 하는 것이다.

  최근 일본은 오너 경영자들이 대거 추방당하고 젊은 내부 경영자들이 발탁되었다. 미국의 CEO들은 주주(Stock holder)의 이익 극대화를 경영의 최대 목표로 하지만 일본 경영자들은 이해관계자(Stake holder)의 이익을 중시하는 경영을 하기 때문에 미국기업과는 조금 다르다.
 그래서 CEO 발탁 조건도
  - 현재 또는 전임 사장, 회장과 잘 통하는 사람
  - 동료나 부하로부터 평판이 좋은 사람
  - 거래선, 주거래 은행, 노조, 감독관청, 매스컴 등 이해관계자들 사이에서 평판이 좋은 사람 등이다.
  만일 주주의 이익만을 우선시 하는 경영을 한다면 리더의 경영방침은 단기적인 성과 중심으로 흐를 것이고 단기적인 성과 중심의 경영은 장기적으로 기업을 어렵게 만들 가능성이 많다.
  내부고객을 포함한 이해관계인 중심의 경영은 장기적인 안목에서 경영이 이루어지므로 보다 바람직한 제도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은 지나치게 관계 중심적이어서 문제를 야기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일본경영을 대표적으로 설명해 주는 집단주의적 기업문화, 종신고용제, 연공서열 등의 고용관행이 현재 오늘의 일본을 어렵게 만든 주요인이라는 설도 있다.
  그러나 호세이 대학의 고이케 가즈오 교수는 그의 저서 ‘일본 산업사회의 신화’에서 일본적 경영으로 알려진 이와 같은 특질들이 사실은 신화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사실이 아닌데 사실인 것처럼 믿는다는 것이다.

  우선, 일본이 집단주의적 기업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사실은 서구보다 더 개인적이라는 것이다.
  일본의 전통 스포츠인 검도, 유도, 스모 전부 개인 경기이고 집단 스포츠는 거의 없다. 집단 내에서도 치열한 개인별 경쟁이 이루어진다. 기업에서 직원을 평가할 때에도  A,B,C,D,E의 다섯 단계로 분류하고 각각 10%, 20%, 40%, 20%, 10%의 안배를 하는 것을 보면 미국에 비해 지나치게 개인주의적이라는 것이다. 미국기업은 상위 10% 이외에는 90%가 B, C이다. 사실상 상위 10% 만을 가리는 시스템이다.

  종신고용제만 하더라도 일본보다 미국이 오히려 더 종신고용제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통계를 보면 구미기업보다 일본 기업의 40~50대 종업원 이직률이 더 높다. 정년까지 직장에 남아있는 비율도 더 낮다. 미국은 블루칼러의 경우 선임자의 권리가 강해 해고 우선순위도 나중에 입사한 사람을 먼저 내보낸다.

  연공서열형 임금도 일본의 전통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임금이 비교적 평등하고 연공서열적이지만 직무의 폭이 넓어서 그에 따른 차이가 매우 심하다는 것이다. 인사고과에 의한 임금차별도 미국기업보다 일본이 훨씬 심하다고 한다. 이 전통은 에도시대까지 올라가는데 그 시대에도 직책에 따라 녹봉에 상당한 차이가 있었으며 유능한 공무원은 승진도 빠르고 보수도 많았다고 한다. 일본 샐러리맨들은 출세의 지름길은 본류 포스트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할 수밖에 없는데 이 또한 연공서열과는 거리가 먼 전통이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분석하면서 우리는 리더에게 반드시 요구되는 자질이 무엇인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리더는 먼저 국제사회의 변화의 흐름을 제대로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일본은 바다로 둘러싸인 섬 사회에서 내수시장만 믿고 닫힌 사고를 할 것이 아니라 국제사회의 조류를 읽고 미래를 예측하며 선도해 나갔어야 했다.
  아울러 위험감수(Risk Taking) 능력이 중요하다. 일본이 세계적 조류를 읽지 못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 그 흐름을 읽었다 하더라도 위험을 감수하고 과감하게 도전하는 정신이 부족했던 것 같다. 아직도 일본을 걱정하는 사람들 중에는 자동차도 사지 않고, 술도 마시지 않으며, 옷도 사지 않고, 데이트도 자택에서 하는 젊은이들의 폐쇄적 성향을 지적하는 사람들이 많다.
  만일 일본이 재기하지 못한다면 이는 새로운 세대의 학습시스템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경제적 풍요가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면 문화적 성숙이 잇따른다. 하지만 갑작스런 경제적 풍요가 찾아오면 가치관의 혼란이 생기고 문화적 충돌이 일어난다. 정신과 물질은 늘 균형을 이루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 정신은 아직 살아있고 기술력도 살아있다. 삼성 휴대폰이 세계 최고를 자랑하지만 그 휴대폰의 부품을 만드는 기계는 모두 일본제품이란다. 일본의 경영시스템도 사실은 동양 문화에 가장 적합한 형태로 만들어져 있다. 그래서 사실은 우리가 가장 많이 배워야할 나라가 일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