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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책들/마지막 리더(2010)

2. 나는 누구인가?

by 굼벵이(조용욱) 2017. 10.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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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내 마음 나도 몰라’라는 말을 자주 한다. 그만큼 ‘나’를 정의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정신세계(Psyche)를 현실세계로 끌어오는 것이니 잘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 정신세계는 현실세계와 달라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 정신세계는 개인이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역사를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누적된 인류 역사 속의 삶도 함께 담고 있다.
  칼 구스타프 융은 이와 같은 인간의 마음을 구조적으로 풀어보려 하였다. 사람의 마음구조를 그림으로 나타내면 아래와 같다.

<그림 6 마음의 구조>


  사람의 정신세계는 의식(Conscious)과 무의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무의식(Unconscious)은 다시 개인적 무의식(Personal Unconscious)과 집단적 무의식(Collective Unconscious)으로 구분 된다. 이러한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사람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것이다.

  의식은 자아(Ego = 나)에 의하여 인식된다. 즉 나의 생각, 나의 느낌, 나의 이념 등 나(Ego)를 통해 인식되는 모든 정신적 내용이 의식이다. 따라서 자아에 의해서 인식되는 것 이외의 모든 것들은 무의식이다. 의식의 세계는 필요에 따라 자아가 쉽게 수시로 불러올 수 있지만 그림자 밑으로 감추어진 무의식(개인적, 집단적)의 세계는 쉽게 불러올 수 없다.

  의식의 세계든 무의식의 세계든 정신세계 속에는 많은 생각의 덩어리들이 들어있다. 이러한 생각의 덩어리들은 감정과 함께 뭉쳐있는데 이를 콤플렉스(Complex)라고 한다. 만일 이것이 열등한 감정과 복합되어 있으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열등 콤플렉스로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요인이 되는 것이다. 개인의 다양한 인생경험이 다양한 콤플렉스를 만들어 내고 그것이 자아에 의해 인식될 때 희로애락의 모든 감정을 일으키게 된다.

  우리는 태어나 현실 사회에 적응하고 살아가기 위한 역할을 부여받는다. 부모든, 학교든, 개인이 속한 집단이 우리에게 부여한 역할, 의무, 약속 및 행동양식 따위가 있는데 이를 페르조나(Persona)라 한다. 이는 원래 가면을 뜻하는 말로 내면세계의 생각이나 요구와는 상관없이 외적으로 보여 져야 하는 자신의 역할을 말한다. 그래서 페르조나를 다른 말로는 외적인격이라고도 한다. 성격을 영어로는 ‘Personality’라고 하는데 바로 이 페르조나(persona)를 어원으로 한다. 성격은 주로 바깥으로 드러난 그 사람의 생각이나 행동양식을 보고 판단하므로 페르조나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다. 본래적 자기(Self)나 표면적 자아(Ego)와는 달리, 성격은 다른 사람들에게 겉으로 보여 지는 개인의 모습이나 경향성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자아는 외적세계와 관계를 맺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내적 세계 즉 무의식의 세계와도 관계를 맺고 있다.

  개인 무의식은 출생 이후 후천적으로 경험하였으나 의식으로부터 억압되거나 무시된 내용 또는 단순히 망각된 것들로 채워져 있다. 그래서 개인 무의식은 사람이 개인마다 독특한 경향성을 갖게 하는 주 요인이 된다.
  집단 무의식은 인간이기에 이미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났으나 아직 의식선상에 나타나지 못한 채 정신작용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들이다. 따라서 시공을 초월해 모든 인간에게 보편적인 내용과 특성을 지닌다.
  집단 무의식에 존재하는 콤플렉스를 원형(archetype)이라고 하는데 인간으로 하여금 인간답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들이다. 일테면 인류가 죽음에 대하여 또는 사랑과 미움에 대하여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해 온 모든 것들이 이에 속한다.

  인간의 내면 가장 깊숙한 곳에 본연의 자기(Self)가 자리 잡고 있다. 본연의 자기를 만날 수 있어야 자기실현(Self Actualization)을 이룰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다 본연의 자기를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기를 만나기 위해서는 무의식의 의식화 과정이 필요하다.

<그림 7 자기실현 : 무의식의 의식화를 통한 의식의 확대>


  의식의 주체, 즉 내 마음의 주인인 자아가 본연의 자기(Self)를 찾아가기 위해서는 양파껍질을 벗기듯 무의식의 세계를 하나씩 벗겨가야 한다. 이를 무의식의 의식화 과정이라고 하는데 그 과정에서 제일 처음 만나는 것이 그림자이다.

<그림 8 자기실현 - 무의식의 의식화 과정>


  그림자란 자아가 인식하지 못한, 즉 의식의 표면에 나타나지 않은 자아의 세계 즉 개인 무의식을 말한다. 그래서 그림자는 자신의 필요에 따라 의식세계에 나타났다 사라지고를 반복한다. 어찌 보면 자아로부터 배척되어 억압된 성격측면이 많다.

<그림 9 자아와 그림자와의 관계>


  그 예로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그림자를 다른 사람에게 투사하여 그 사람에 대한 미움의 감정에 집착하는 경우도 있고, 꿈속에 나타나 자신의 존재감을 보여주기도 한다.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도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기대나 관심으로 인하여 일의 능률이 오르거나 결과가 좋아지는 현상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이러한 것들 중에는 그림자의 투사에 의한 것들이 많다.

  그림자 다음으로 만나는 무의식이 아니마(anima) 또는 아니무스(animus)이다. 아니마는 남성의 집단무의식에 내재된 무의식적 여성성을, 아니무스는 여성의 집단무의식에 내재된 무의식적 남성성을 말한다. 이는 인류가 조상 대대로 이성에 관해서 경험한 모든 것의 침전물이다. 따라서 보편적, 원초적인 특성을 가진다. 일반적으로 남성은 사고, 판단, 이념, 사상, 철학 같은 추상적인 것을 추구하며 동적이고, 강한 이미지의 아버지상을 가지고 있는 반면 여성은 섬세하고, 구체적, 가정적, 개인적, 감성적이며 부드러운 이미지의 어머니상을 갖는다.
  남자는 페르조나에 의해 남성성을 요구받고 그 요구대로 살아가지만 심층적인 내면에는 여성성(아니마)이 도사리고 있다. 물론 여성의 경우는 그 반대이다. 독일 여성의 집단적 지지를 받은 히틀러는 여성 내면에 감추어진 아니무스를 집단적으로 투사하여 강한 남자의 이미지로 표출된 예라고 한다.

  이와 같은 집단 무의식의 세계를 지나면 본래적 자기(Self)와 만나게 된다. 심층에 존재하는 본연의 자기는 자아가 자신을 찾아주기를 바라며 무의식의 세계 속에서 끊임없는 신호를 보낸다. 우리가 사람은 누구나 자기실현 경향성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경향성으로 인하여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를 찾아 떠나는 긴 여행길에 오른다.
  그 과정 속에서 무의식이라고 하는 암흑의 세계를 경험하게 되는데 자아로부터 배척되거나 억압된 무의식의 내용까지 이해하고 경험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본연의 자기와 만나는 순간 사람들은 원만하고 온전한 사람이 된다. 나이가 들수록 원만한 품성을 지니게 된다거나 임종의 순간에 평온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기실현을 위한 무의식의 의식화 과정이 진행되면 결국 무의식성이란 없어지고 완전히 깨달은 상태가 되어 완전한 인간이 된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무의식은 너무나 광범위하고 끝없이 깊은 세계이므로 아무리 의식화 한다 하더라도 부분적으로만 경험할 뿐 엄청난 미지의 세계는 계속 남아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융은 자기실현이 완전해 지는 것이라기보다는 비교적 온전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자기실현(Self Actualization)은 다른 말로 개성화라고도 한다. 진정한 자신의 개성을 실현한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리더는 남을 리드하기에 앞서 자신의 내면을 성찰할 필요가 있다. 자신의 내면세계에 어떤 그림자가 감추어져 있는지, 아니마나 아니무스의 어떤 측면이 자신도 모르게 자신을 지배하고 있는지 따위를 살펴보는 것이 좋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살아가는 조직생활을 하다보면 인간적 갈등을 겪는 여러 가지 상황들이 연출된다. 그중에 많은 부분은 자신도 모르는 새에 자신의 어두운 그림자를 상대방에게 투사하여 미움의 감정을 갖게 되면서 발생한다. 자신의 내면세계에 대한 성찰의 과정을 거치면서 자신의 어두운 부분까지 이해할 수 있어야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다.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람이 남을 이끌어주는 리더의 지위에 서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않다. 다른 사람은 물론 자신에게도 해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훌륭한 리더가 되고 싶다면 먼저 자신의 내면세계를 통찰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통합적인 입장에서 여러 가지 현상들을 두루 온전하게 이해하고 행동하며 조직 내 갈등을 슬기롭게 조정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긍정적 에너지를 집단적으로 투사하여 피그말리온 효과를 유도함으로써 높은 성과를 창출할 수도 있다. 나아가 리더는 조직구성원이 스스로 자신의 내면세계를 통찰하여 진정한 자기를 만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