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에 미국 뉴 올리안즈에서 열리는 SHRM 컨퍼런스에 다녀온 적이 있다. 일정보다 하루 먼저 도착해 Dallas Baptist University 에서 짐 언더우드 교수의 특강을 들었다. 그는 ‘백 년 기업을 디자인하라’는 책의 저자로 우리나라에 많이 알려진 경영학 교수이자 컨설턴트이다. 그는 불황으로 어려워진 미국사회를 회생시키기 위한 경영의 키워드를 인본주의로 설정하고 있었다. 조직구성원을 철저하게 인정(Recognition)하고, 조직구성원에게 늘 감사하며 칭찬하고(Appreciation), 조직구성원 자신과 그들이 하는 일에 가치를 부여하고 평가하며 피드백 해 주어야 하고(Valuing), 그들의 뛰어난 점을 발굴하여 충분하게 보상을 해주라고(Excellence) 한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미국 경영의 주류는 어떻게 하면 높은 성과를 내고 보다 많은 이윤을 창출할 수 있을까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다시 말하면 그동안 사람보다는 일이나 성과를 더욱 중시 했었는데 이제는 ‘사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어서 극심한 불황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기업 마리케이(Mary Kay)를 방문했다. 우리가 그 성공의 비결을 물었을 때 담당자는 마리케이의 설립자 애쉬 여사의 기업이념을 소개했다. 마리케이의 기업이념은 ‘기본으로 돌아가기’(Back to the Basics)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기업들은 대차대조표가 가장 중요한 자산이라고 생각하지만 우리(Mary Kay)에게는 사람이 가장 중요한 자산이다.’라고 하는 애쉬 회장의 생각을 설립이후 지금까지 한결 같이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어서 우리를 박물관으로 안내했는데 박물관 한가운데에 명예의 전당을 만들어 놓고 존경받는 세계 각국의 마리케이 사람들 사진을 빼곡히 걸어놓았다. 미국 경제가 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와중에도 이와 같이 인본주의적 리더십으로 무장된 기업은 큰 어려움 없이 성장을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그림 16 마리케이 박물관 내에 위치한 명예의 전당 모습>
사실은 미국보다 동양의 한국사회가 역사적으로 집단주의적, 가족주의적 문화를 바탕으로 사람중심의 사회를 이루어 왔었다. 지나온 과거나 다가올 미래는 고려하지 않고 현재의 성과창출 관점에서만 냉철하게 조직구성원을 관리하려 하기 보다는 조직이 존속하는 한 평생 동안을 함께 할 동반자로 여기며 ‘사람’으로 보살펴 왔었다. 그래서 임금 시스템도 그달의 성과나 그해의 성과를 중심으로 디자인(연봉제)하지 않고 평생의 라이프 사이클에 맞추어서 임금체계를 구성(호봉제)했었다. 젊은 시절에는 일을 좀 더 많이 하더라도 봉급을 많이 주지 못하는 대신 나이 들어 식구가 늘어나며 돈이 많이 필요한 어려운 시기가 오면 좀 더 많은 봉급을 지급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는 것이다.
당장 한 해 동안만 일시키고 그만두게 할 것이 아니라면 평생을 보장해 줄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어 주어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일을 소명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일을 통해 자기를 실현하려는 욕망이 생긴다. 그래야 열정과 몰입으로 창의적 아이디어를 쏟으면서 자신의 평생을 바쳐 영혼까지 일터에 묻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우리나라 사회 어디를 가나 성과가 부진한 사람에 대한 퇴출, 인력감축, 연봉제 이야기로 경영혁신을 설명한다. 미국이 동양사회의 아름다운 자연주의를 찬양하며 경영의 키워드를 ‘사람’으로 바꾸어 가고 있는데 우리는 거꾸로 미국이 버리고 있는 철 지난 유행을 좇아서 ‘사람’을 버리고 눈앞의 ‘성과’만을 강조한다.
사실 성과가 부진한 사람은 내쫓으려 하기 보다는 그 사람이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주거나 잘 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비록 지금은 좀 부족하지만 장기적인 안목에서 보면 언젠가는 조직의 중추적인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사람’이라는 멋진 꽃나무가 아름답게 피어나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존엄하다.
성과가 부진한 사람의 이면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물론 본인의 자질이 부족한 경우가 많겠지만 리더가 잘못된 리더십을 발휘하는 데에서 기인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리더가 상대방이 못 알아듣는 언어로 지시한다거나, 상대방에 대한 지지와 인정을 소홀히 하거나 관심을 가지고 마음을 열어주지 않는 경우 조직을 떠나거나 일을 소홀히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난 2009년도 SHRM 컨퍼런스에서 제시된 자료를 보면 실제로 조직구성원들이 상사에게 무엇을 가장 우선적으로 바라는지 알 수 있다.
<표 5 이런 상사가 되어주세요>
순위
상사에게 바라는 내용
비중(%)
1 의사소통을 더 잘 해 주세요 77
2 우리를 좀 더 인정해 주세요 70
3 성과에 대한 보상을 잘 해 주세요 57
4 우리에게 모범을 보여 주세요 55
5 진솔한 관심을 보여 주세요 50
6 업무상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해 주세요 42
7 내 생각 좀 경청해 주세요 37
8 새로운 일에 도전해 보고 싶어요 32
9 좀더 재미있고 진지한 모습을 보여 주세요 26
10 작고 하찮은 일에 목숨 걸지 마세요 26
이 통계는 미국 컨설턴트가 미국기업에서 조사한 것이지만 조직구성원들이 리더에게 바라는 바는 우리와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오히려 우리나라의 경우는 이와 같은 것들에 더욱 굶주려 있을 것이다. 미국과 우리나라 사이에는 여러 경로를 통해서 상당부분 인식의 통합이 이루어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람’이기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기본정서가 같기 때문이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리더가 자신들을 ‘사람’으로 존중해 주기를 바란다.
역사는 진화한다. 그러나 언젠가는 더 이상 진화할 수 없는 마지막 역사의 종말에 다다르는 시기가 올 것이다. 프란시스 후꾸야마는 이와 같은 역사의 종말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완벽한 정치․경제적 시스템의 출현으로 이미 우리 앞에 와 있다고 했지만 인간의 정신적 진화는 앞으로도 계속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진화의 움직임은 ‘생각의 지도’가 변화하는 추이를 보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생각의 지도는 종교의 경전을 통해 많이 접할 수 있다. 종교의 경전들은 대부분 수 천 년의 삶 속에서 만들어진 삶의 지혜를 대를 이어가며 아로새겨 놓았다. 예전에는 변변한 교육기관이 없었으므로 대부분 종교를 통해 이런 생각들이 교습되고 전수되었다. 그런데 종교의 교리는 일반적으로 삶의 방식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고 삶의 방식은 그 시대의 현실적인 시대상과 연결되어 있다. 때로는 정치가 종교를 이용하면서 종교의 교리를 정치적 목적에 맞도록 바꾸어 나가기도 했다. 어쨌거나 종교의 교리는 대부분 수 천 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그 중에는 물론 자연법칙과 같은 불변의 진리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도 많다. 그러므로 종교적 근본주의자들은 사실상 몸은 현대를 살고 있지만 자신들의 ‘생각지도’는 수 천 년 전에 머물고 있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동안 지구촌 곳곳에서 끊이지 않고 전쟁이 있어 왔는데 그 원인 가운데에는 이 종교적 근본주의와 관련이 있는 것들이 많다.
그렇지만 현대는 초고속 지식사회이고 지혜의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이런 속도라면 머잖아 종교적 근본주의도 서서히 종언을 고할 것이다. 새로운 아이들이 태어나고 세대를 거듭하면서 생각의 지도가 종교적 근본주의에 고착되기 전에 범세계적 관점의 새로운 이념이나 지식, 지혜를 접하게 될 것이고 따라서 종교의 교리는 상당부분 수정이 불가피하게 될 것이다. 아마도 보편적 진리만 남고 시대적 요구에 따라 가미되거나 수정되었던 부분들은 시대가 변함에 따라 상당부분 사라질 것이다. 그렇게 될 경우 세계 곳곳에서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서로 유사한 내용의 교리로 지구, 국가, 사회, 작은 집단 또는 가정 내에서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으로서의 보편적 진리들을 전달해 줄 것이다.
아울러 그동안 종교가 그 역할을 수행해 왔던 각종 삶의 지혜에 대한 교습을 교육기관의 발달과 더불어 상당부분 교육이 대체하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교육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고 본다. 아프리카나 중동에서 일어나고 있는 각종 전쟁이나 혼란 상황은 대부분 잘못된 신념에 기인하거나 무지로 인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앞으로 새로운 세대에 대한 올바른 교육에 치중해야 한다. 중동이나 아프리카의 분쟁문제도 근본적으로는 새로운 세대 어린이에 대한 올바른 교육으로 풀어가야 한다. 생각지도가 고착되기 전에 올바른 지도를 그려 넣어 주어야 한다. 이미 고착된 어른들은 바꾸기가 쉽지 않지만 고착되지 않은 어린이는 쉽게 지도를 그려 넣을 수 있다. 세대를 거듭하면서 온 세상에 올바른 생각지도를 그려 넣어야 세상이 올바르게 바뀌는 것이다. 사람의 정신세계가 올바르기 전에는 절대로 올바른 세상을 기대할 수 없다.
올바른 생각지도로 세대를 거듭하다가 진화의 마지막에 서면 아마도 온 세계인이 서로 유사한 생각지도를 가지게 될 것이다. 생각이 유사하다면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시스템도 유사해 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 시기에 도달했을 때 나타나는 마지막 리더는 어떤 특질을 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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