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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지혜를 찾아서/인문학 산책

사진에 관하여 (수전 손택)

by 굼벵이(조용욱) 2019. 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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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상황에 개입하지 않는 활동이다

​상황에 개입하면 기록할 수 없고 기록하면 상황에 개입할 수 없다

​사진을 찍는 행위는 남을 훔쳐보며 성욕을 느끼는 관음증처럼

때로는 은밀하게 때로는 노골적으로

현재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더욱 부추기는 방법이다

​카메라를 남자들의 발기된 성기에 비유하는 것은

사람들이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 사용할 수밖에 없는

은유를 경박하게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모든 사진은 메멘토 모리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 또는 사물의 죽음 연약함 무상함에 동참하는 것이다

그런 순간을 정확히 베어내 꽁꽁 얼려 놓는 식으로

모든 사진은 속절없이 흘러가 버리는 시간을 증언해 준다

​한국전쟁은 자유 진영이 소련과 중국에 맞서 벌이는 투쟁의 일부로 받아들여졌고

이런 특성을 감안할 때 무제한적으로 화력을 퍼붓는 미군의 잔인함을

사진에 담는 다는 것은 부적절한 행위라고 여겨졌다

​이해라는 것은 세계를 보이는 대로 보지 않을 때 비로소 시작 된다

즉 아니오 라고 말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다

​산업화된 사회는 시민들을 이미지 중독자로 만들어 버린다

이것이야말로 불가항력적인 정신적 오염이다

19세기에 가장 논리적인 유미 주의자였던 말라르메는

이세상의 모든 것들은 결국 책에 쓰여 지기 위해서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오늘날에는 모든 것들이 결국 사진에 찍히기 위해서 존재하게 되어 버렸다

​카메라에는 평범한 사람들을 평범하지 않게 보이도록 만들 수 있는 힘이 있다

​저 사람들도 사진에 찍힌 모습처럼 자신을 바라볼까 

자막이 그지없는 내 결식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버스의 사진에 찍힌 피사체는 불행한 의식이다

​예술가는 자발적으로 타인의 고통을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