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이에 이런류의 글을 읽는 것은 주책이다.
하지만 내가 18세이던 시절엔 이런 소설이 드물었고 내 성향도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어둠의 자식들’ 류의 어둠침침한 소설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나’ 나 ‘어린 왕자’ 류의 맑고 순수한 이야기이기에 간결하면서도 울림을 주는 글이다.
글을 읽는 모든 독자에게 깊은 공감을 자아내는데 이는 터부시하는 원초적 욕망을 눈곱만큼도 부끄러워하는 기색 없이 아주 과감하면서도 적나라하게 풀어내 그 자연스러움에 깊은 공감을 불러 일으키기 때문이다.
나도 그러고 싶지만 내 치부를 보이는 것 같아 소설로라도 그런 글을 써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얼핏 보면 일종의 포르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남녀 간의 정사가 자주 전개되지만 너무 리얼해서 내 마음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 같아 차라리 아름답다.
전형적인 성장소설이다.
사랑을 막 시작하는 18세에서 20대 초반 아이들이 겪는 사랑앓이를 담아냈다.
내용도 엄청 단순하다.
고교시절 아주 친했던 친구 세 사람 남A(기즈키), B(와타나베:주인공), 여C(나오코) 중 남A와 여C는 연인사이다.
하지만 남A는 자살하여 죽고 따라서 남B와 여C는 연인관계로 발전한다.
여C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정신질환으로 요양소에 가고 그 새 남 B는 대학에서 같은 과목을 수강하던 여D(미도리)와 엮여 삼각의 사랑에 빠져든다.
삼각 갈등의 시련 속에서 여C가 자살을 선택한다.
자살의 이유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다.
그러고는 소설이 끝을 맺는데 남B는 그 후 17년 만에 독일 어느 공항에서 여C가 즐겨듣던 노래 ‘노르웨이 숲’을 듣다가 과거를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독자로 하여금 남B는 여D랑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을 거란 추론을 하게 만든다.
이렇게 간단한 스토리로 이렇게 많은 공감과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데에서 내게 소설쓰기를 강권하는 책이다.
(밑줄 쫙)
나는 무슨 일이건 문장으로 만들어 보지 않으면 사물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타입이다
그에게는 자리의 분위기를 순간순간 정확히 파악하고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또한 거기에 더해 별것도 아닌 상대의 이야기 가운데서 재밌는 부분을 찾아내는 참으로 보기 드문 재능이 있었다
그래서 그와 이야기 하다 보면 나 자신이 아주 재미있는 인간이고 아주 재미있는 인생을 사는 듯하다고 느끼게 되었다
죽음은 삶의 대극이 아니라 그 일부로 존재한다
죽음은 나라는 존재 속에 이미 갖춰져 있고 그런 사실은 아무리 애를 써도 잊어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마도 내 마음 속에 딱딱한 껍질 같은 것이 있어서 그것을 뚫고 그 속까지 파고들 존재는 거의 없다고 그래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없는 게 아닐까 하고
도대체 나는 무엇을 원하는 걸까 도대체 사람들은 나에게 무엇을 원하는 걸까
나는 시간의 세례를 받지 않은 것을 읽는 데 귀중한 시간을 소모 하고 싶지 않아 인생은 짧으니까
느티나무가 수많은 이파리들을 어둠 속에서 비벼댔다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아니라 해야 할 일을 하는 게 신사지
이들의 진정한 적은 국가 권력이 아니라 상상력의 결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시간이 남아돌아?”
“내 시간을 조금 떼어 내어 그 속에서 널 재워 주고 싶을 정도니까”
그는 우리가 여기에서 생활하는 것은 뒤틀림을 교정 하려는 게 아니라 그 뒤틀림에 익숙해지기 위한거라고 했어
우리의 문제점 가운데 하나는 그 뒤틀림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데 있다고
신문 잉크를 끓인 듯한 커피를 마셨다
“그럼 나는 혁명 같은 거 안 믿을래. 난 사랑만 믿을래”
“피스”
“저기 말이야.
섹스 장면이 나오면 주위 사람들이 한꺼번에 꼴깍 침 넘기는 소리를 내.
그 꼴깍 소리가 정말 좋아 아주 귀여워”
그것은 충족 되지 못한 앞으로도 영원히 충족 될 수 없는 소년 시절의 동경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그런 장면이 나오면 여기 있는 사람들 그게 모두 발딱 서는 거잖아. 서른 개 마흔 개가 일제히 발딱.
그거 상상하면 좀 이상한 느낌 안 들어?”
“네가 정말로 좋아 미도리”
“얼마나 좋아?”
“봄날의 곰만큼 좋아”
“봄날의 곰?” 미도리가 고개를 들었다
“그게 뭔데 봄날의 곰이”
“네가 봄날의 들판을 혼자 걸어가는데 저편에서 벨벳 같은 털을 가진 눈이 부리부리한 귀여운 새끼 곰이 다가와
그리고 네게 이렇게 말해
오늘은 아가씨 나랑 같이 뒹굴지 않을래요
그리고 너랑 새끼 곰은 서로를 끌어안고 토끼풀이 무성한 언덕 비탈에서 데굴데굴 구르며 하루 종일 놀아
그런 거 멋지잖아“
“정말로 멋져”
“그 정도로 네가 좋아”
“내 헤어스타일 좋아?”
“정말 좋아”
“얼마나 좋아?
“온 세상 숲의 나무가 다 쓰러질 만큼 멋져”
“정말 그렇게 생각해?”
“나 말이야 좀 더 잘 생긴 남자를 좋아하고 싶었어.
그렇지만 어쩔 수 없어
네가 좋아져 버렸으니까”
“네가 입는 거라면 뭐든 좋고 네가 말하는 거 걸음걸이 취한 모습 뭐든 다 좋아
정말 이대로 좋아
어떻게 바꾸는 게 좋은지 모르니까 그대로 좋아“
“나를 얼마나 좋아해?”
“온 세상 정글의 호랑이가 모두 녹아 버터가 되어 버릴 만큼 좋아”
“사랑에 빠지면 거기에 몸을 내 맡기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죠
난 그렇게 생각해요
그것도 성실의 또 다른 형태가 아닐까요”
“고뇌하지 마요
가만 내버려둬도 흘러 가야 할 곳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갈 것이고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사람에게 상처를 주어야 할 때는 상처를 주게 되는 법이니”
우리는 그 슬픔을 다 슬퍼한 다음 거기에서 뭔가를 배우는 것이고 또 그렇게 배운 무엇도 또다시 다가올 예기치 못한 슬픔에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처음 잤던 여자친구가 생각났다
그리고 내가 그녀에게 얼마나 심한 짓을 했는지 생각하며 가슴이 서늘해지는 기분에 사로 잡혔다
나는 그녀가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느끼고 어떻게 상처 입을지에 대해 거의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녀에 대해 제대로 떠올리지도 않았다
정말 상냥한 여자애였다
그렇지만 그 즈음 나는 그런 상냥함을 아주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거의 되새겨 보지도 않았다
그녀는 지금 뭘 하며 지낼까 그리고 나를 용서 했을까
“그런 건 굶어 죽어 가는 말도 먹다 남길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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