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키우는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 중의 하나가 말이다.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힘 즉 타나토스의 반대는 에로스다.
에로스는 ‘삶을 사랑하는 증상’이다.
우리로 하여금 삶을 사랑하게 하는 기본 에너지다.
바로 건강한 나르시시즘이다.
빅터 프랭클은 인간의 잠재성이 최고점이 있는 것처럼 최저점도 있다고 말했다.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할 수 없을 때 우린 쉽게 그 최저점에 가 닿을 수 있다.
나르시시즘이란 자기애를 말한다.
사람은 누구나 일차적으로 세상보다 자신에 더욱 관심이 있다.
그런 뜻에서 매우 자기중심적이며 중요한 존재로서 자신이 존중받기를 바란다.
사람은 누구나 이기적이다.
우리가 지니고 있는 속성 중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이 사실은 이기심이다.
이기심은 영어로 ego-centricity다.
내 자아가 중심이라는 뜻이다.
좀더 거창하게 말하면 내가 세상의 중심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건 부처가 이야기한 천상천하 유아독존과도 의미가 통하는 말이다.
인간이란 원래 자기중심적인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고 거기서부터 남에 대한 이해와 공감과 배려를 넓혀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늘 내 속에 긍정적이고 따뜻하며 건강한 나르시시즘이 자리 잡도록 애써야 한다.
우리가 내 뱉는 말은 누구가가 이해할 수 없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영화 ‘클로저’의 결론 : 우리가 상대방에게서 알아내려는 진실조차도 다 바람과 같은 것이고 결국은 자기 욕망을 위해 서로 속이는 것에 불과하다.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사실은 사랑으로 위장한 저마다의 나르시스틱한 욕망일 뿐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치열하고 한심하고 속수무책인 관계가 둘 있다.
가족관계와 남여관계이다.
위 두 관계에서만큼 인간의 심층적인 심리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경우도 없다.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힘을 빼고 가능한 한 모든 일에 온유함과 사랑을 덧입히기로 이미 오래전에 결심했다.
리더는 애정의 결과물이다.
그가 얼마나 관용과 애정을 가진 사람이냐에 따라 리더로서의 모습이 달라진다는 뜻이다.
성공한 리더들의 특성을 연구한 결과에 의하면 그들의 공통점은 단 하나, 애정이었다는 사실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따라서 리더는 언제나 관용과 온화함, 그리고 애정을 잃어서는 안 된다.
긍정적인 사람이 성공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그 중 하나가 눈을 들어 먼 곳을 바라볼 줄 안다는 것이다.
인생의 성공에 그것처럼 중요한 것이 없다.
삶의 자세 자체를 교정해 주기 때문이다.
“인간은 더 높은 열망을 품고 더 높은 곳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가 도달할 수 있는 지점보다 낮은 곳에서 끝나고 만다.”
내가 좋아하는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의 말이다.
부디 자신에게 상냥하고 친절 하라.
그리고 친구에게 하듯이 자신에게 도움을 청하라.
자신을 가장 좋은 파트너이자 리더이자 후원자로 만들라.
도대체 내가 아니면 누구에게서 그것을 기대하겠는가!
자기 속에서 내면의 힘을 인식하는 사람만이 자기를 긍정하고 자기를 믿을 수 있다.
내부의 천적을 경계하라.
부디 자신의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도록 애쓰라.
좋은 친구는 내가 잘 나가고 있을 때나 보잘 것 없을 때나 한결같은 마음으로 나를 이해하고 받아준다.
부디, 내부의 비평가를 자처하는 또 하나의 나, 내부의 천적을 경계하라.
우린 누구나 자신의 이중적인 면을 이해받지 못할까봐 불안해한다.
그럴 때 상대방이 나의 그런 면을 이해하고 받아주면 당연히 그에게 신뢰와 지지를 보이게 마련이다.
인간관계에서 성공하고 창의적인 잠재력을 발휘하고 싶은가?
인간의 이중성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도록 하라.
인간은 자기가 불행하다고 느끼면 그 책임을 투사할 대상을 찾기 마련이다.
그 때 약점은 투사대상으로 가장 만만하다.
약점도 드러내 놓고 하면 더 이상 약점이라고 할 수 없다.
우리가 남을 비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다른 사람에게 흠집을 냄으로써 그 순간이나마 자기가 그렇지 않은 괜찮은 사람이라고 여겨지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내가 되고 싶어 하는 그 사람과 비교할 때마다 내 가치는 추락한다.
당장 중요한 것처럼 보여도 한 발 물러서서 보면 선택의 문제 외엔 아무것도 아닌 거야.
그러니 넌 선택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남들은 나 자신의 표정이나 비언어적인 표현에 대해 대부분 나보다 더 잘 알고 있다.
그리고 훨씬 민감하다.
그러니 자주 거울을 보면서 자신의 표정이 어떤지 알아두는 게 좋다.
그 의존성은 어디서 오는가?
바로 나르시시즘이다.
인간은 혼자서 살 수 없다.
나를 지켜봐주고 내 모습을 투사하고 그런 나를 인정해 줄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의존이다.
그리고 서로가 그 의존을 채울 수 있을 때 사랑도 생겨나는 것이다.
아무튼 관심이란 그런 것이다.
누군가가 나를 알아주고 주목해 주고 중요한 사람이라고 여겨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인간이 지닌 가장 보편적인 나르시시즘이라고 생각한다.
정신적 허기 중에서 가장 보편적인 것은 자신이 중요한 존재라고 느끼고 싶은 데서 오는 배고픔이다.
프랑수아즈 돌토는 “다른 사람에게 투사해 버린 것들을 자신의 내면에서 다시 찾는 순간 성장한다.”고 했다.
따라서 우리는 내가 모르는 생의 이면에 대해 열린 시각을 가져야 한다.
자신이나 남에 대해 이런 저런 단정은 하지 말자.
예상치 못한 면이 튀어나와도 아, 이제껏 몰랐던 면이 있었구나 하고 이해하고 수용하라.
충고란 열심히 듣고 무시하는 것
상대방에게 면죄부를 줄 수 있는 기회는 놓치지 마라.
서로가 똑같은 그림자를 가지고 있을 때는 그 그림자에 대해 먼저 털어놓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리고 상대방이 먼저 얘기를 꺼냈을 때는 그렇게 해 주어서 얼마나 고맙고 위로가 되었는지 말해주라.
그 이유 또한 나르시시즘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나한테 가장 중요한 사람이 누구인가?
나 자신이다.
나한테 가장 중요한 얘기가 무엇인가?
나 자신에 관한 이야기다.
그러니 서로 나를 중요하게 생각해주고 내 얘기에 귀 기울여 주고 나한테 공감해 주는 사람이 좋을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도 자기한테 그렇게 해 주는 사람에게 호감을 갖게 마련이다.
상대방의 단점에는 눈을 감으라.
그 대신 장점만을 크게 보도록 하라.
사람 사이에서 좋은 관계를 이어가고 싶다면 상대방을 변화시키려 해서는 안 된다.
백만번 죽었다 깨어나도 우리는 자신의 힘으로 누구를 변화시킬 수는 없다.
상대방이 스스로 변해야겠다고 결심하기 전에는.
따라서 인간관계를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싶지 않다면 아무에게도 변화를 강요하지 마라.
그도 그냥 그 자신이 될 수 있는 자유를 주어라.
그가 지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이해하고 받아들여라.
인간관계에도 비타민이 필요하다면 바로 그와같은 ‘수용(Acceptance)이 가장 좋은 비타민이다.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남이 알아주기를 기대하며 실망하기 보다는 내가 남에게 줄 수 있는 것을 끊임없이 발굴하는 것이 성취감도 높이고 행복으로 가는 첩경이라고 생각해 왔다.
-유한킴벌리 문국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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