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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의 역사(용욱이의 내면세계)/2002

20020810 쿠데타를 꿈꾸는 사람들

by 굼벵이(조용욱) 2021. 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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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8. 10() : YSH 그리고 사업가 JMR사장

 

Y부장이 사업부제 등과 연계하여 1직급 파견자 중 정년퇴직 예정자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에 대한 대책을 지시했다.

곧 인사발령을 내야 하기에 긴급을 요한다.

그동안 바빠서 사업부제 관련 교육에도 참석하지 못해 마땅한 참고자료가 없어 YSH 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와 통화하는 과정에서 두려움을 느꼈다.

그의 생각이 지나치게 급진적이고 독선적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말끝에는 사업부제라는 명목하에 완전히 다른 형태의 회사로 뒤집어엎겠다는 사명감이 비어져 나왔다.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회사를 갈갈이 찢어내는 무지막지한 쿠데타를 그는 꿈꾸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의 요구에 동조할 수 없었다.

전략이나 기획을 담당하는 사람들은 가끔씩 편집적 환상에 사로잡혀 과거나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과거나 현실적 배경이 부족한 환상으로 쿠데타에 실패한 사람들을 그동안 나는 수없이 경험했었다.

현실을 벗어난 그의 그런 망상에 나는 동조할 수 없었다.

30% 이상의 변화를 수반하는 혁신은 더 이상 혁신일 수 없다고 그에게 잘라 말했다.

일정 수준을 넘어서는 변화는 오히려 기존의 모든 질서를 무너뜨릴 수 있다.

그래서 혁신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쿠데타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그는 이미 혁명가의 범위를 초월하여 쿠데타를 꿈꾸는 야심가로 변해 있었다.

그는 사장의 숨은 의도까지 알아야 한다고 내게 말했다.

그리고 모든 것은 그 숨은 의도에만 맞추어져야 한다는 식으로 주장했다.

물론 경영에서 사장의 생각은 중요하고 절대적이다.

하지만 사장의 생각대로 할 수 없는 영역도 존재한다고 나는 굳게 믿는다.

회사, 나아가 나라의 미래와 직결된 중장기 경영정책은 2~3년의 짧은 기간 스쳐 지나가는 사장에 의해 함부로 무너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나는 그가 사장의 생각이란 미명하에 검증되지 않은 자신의 추론으로 회사를 더 이상 농락하는 것을 방관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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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협의회 안건 작성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너무 많은 안건을 한꺼번에 무더기로 쏟아놓는 것을 좋아하는 노조의 잘못된 관행으로 많은 시간을 거기에 허비해야만 했다.

노조가 이번에는 무려 12건이나 요청했는데 대부분 지난 수년 동안 해결되지 않은 채 지속적으로 다투어왔던 난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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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JMR사장과 저녁 약속을 했었다.

오늘이 그날이어서 퇴근을 서둘러 7시 경에 그의 회사로 향했다.

그는 내가 도착한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직원과 업무 이야기를 계속 이어갔다.

모든 것을 간섭하고 챙기며 천방지축 열심히 살아가야 하는 중소기업 사장 역할을 직접 접하는 순간이었다.

그와 함께 아래층 안경 매장으로 내려갔다.

전무라고 불리우는 5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사람에게 안구검사를 받고 특수 고굴절 렌즈를 주문했다.

MR이는 지금까지 힘들게 살아온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전통적 방식의 일방적 지시, 감독, 통제중심의 경영 스타일로 가끔 젊은 세대들과 트러블을 일으키는 모양이었다.

나는 주제넘게 그에게 새로운 것도 좋지만 과거의 것이라고 무조건 폐기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며 항상 과거와의 조화를 중시하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어쩌면 과거는 새로운 것보다 오히려 더 중요한 요소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과거에 바탕을 두지 않은 미래는 뿌리 없는 식물과 같아 곧 말라 비틀어진다.

하지만 작은 중소기업의 경험이 없는 내가 시다바리로 시작해 거기서 잔뼈가 굵은 J사장에게 아는 체를 하는 것은 일종의 교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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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MR이는 돼지곱창과 껍질을 볶아서 파는 소주집으로 나를 안내해 거기서 둘이 잔뜩 취할만큼 마셨다.

나는 2차를 내기로 하고 WAX로 안내했다.

김도성 사장은 바쁜 와중에도 가끔씩 우리 자리로 돌아와 함께 맥주를 마셔주었다.

오늘따라 술이 무척 많이 취하는 느낌을 받았다.

아마도 그동안 너무 피곤하기도 했을 뿐만 아니라 급하게 마신 탓도 있는 것 같았다.

우리는 WAX 술집 옆에 위치한 노래방까지 함께 갔다.

우리를 위해 김 사장은 부루스에 몸을 실어 주었다.

어떻게 얼마나 놀았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인사불성이 되어 집에 돌아온 시간은 대략 새벽 두 시가 넘어서였다.